신이 된 발명가의 추악한 살인 기계

에디슨, 전기의자를 만들다

by 김경훈


1. 서론: 녹색 길(Green Mile) 끝에 놓인 낡은 의자


영화 <그린 마일>을 기억하는가? 사형수들이 감방을 나서 형장으로 향하는 복도, 그 바닥에 깔린 칙칙한 녹색 리놀륨 때문에 '그린 마일'이라 불리는 그 길의 끝에는 낡고 거친 나무 의자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사형수의 머리와 다리에 소금물을 적신 축축한 스펀지를 대고, 굵은 가죽 끈으로 사지를 결박한다. 입에는 비명을 삼킬 가죽 재갈을 물린다. 교도소장이 신호를 보내고, 집행관이 무거운 레버를 내리면, "지-지-직" 하는 소름 끼치는 파열음과 함께 한 인간의 삶은 강제로 종료된다.


우리는 이것을 '전기의자(Electric Chair)'라고 부른다.

단추 하나로 생명을 앗아가는 이 기계는 겉보기엔 목을 매다는 교수형이나 피를 보는 참수형보다 훨씬 '문명적'이고 '과학적'인 것처럼 보인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깔끔하게 끝나니까.


하지만 역사의 데이터를 복원해 현미경을 들이대면, 이 의자의 나뭇결 하나하나에는 끔찍한 탐욕과 질투, 그리고 비열한 음모가 스며들어 있다. 이 살인 기계를 만든 장본인이 우리가 어릴 적 위인전에서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만들어진다"며 인자하게 웃던 토마스 에디슨이라면 믿겠는가?


지금부터 시계를 1880년대로 돌린다. 뉴욕의 화려한 가스등이 하나둘 꺼지고, 그 자리를 전구의 빛이 채우던 격동의 시대. 빛을 둘러싼 두 천재의 전쟁, 그 피비린내 나는 현장으로 들어간다. 코를 막으시라. 살 타는 냄새가 날지도 모른다.



2. 멘로파크의 제왕: "직류(DC)만이 나의 구원, 나의 돈줄"


1880년대, 뉴욕.

토마스 에디슨은 단순한 발명가가 아니었다. 그는 '멘로파크의 마법사'이자, 어둠을 정복한 신(神)이었다. 그가 백열전구를 발명하고 맨해튼 펄 스트리트 발전소를 가동했을 때, 사람들은 그를 프로메테우스의 재림이라 칭송했다.


에디슨의 집무실은 언제나 시가 연기와 땀 냄새, 그리고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기계 소음으로 가득했다. 그는 거대한 지도를 펼쳐 놓고, 그 위에 붉은 선을 그으며 열변을 토했다.


"보게, 이 선들이 보이나? 이게 바로 돈맥(Money vein)이야! 전기는 미래의 석유고, 미래의 금광이라고. 사람들은 이제 내가 깐 전선 없이는 밥도 못 먹고, 책도 못 읽게 될 거야."


에디슨이 선택한 방식은 직류(Direct Current, DC)였다. 전기가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이 방식은 안정적이었다. 에디슨은 직류 시스템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다. 발전소, 전구, 소켓, 퓨즈, 계량기까지 모든 특허가 그의 손안에 있었다. 전기가 흐를 때마다 그의 금고에는 달러가 쌓여갔다.


하지만 '태양왕' 에디슨에게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사장님, 또 민원이 들어왔습니다. 발전소에서 1마일(약 1.6km)만 떨어져도 전구가 반딧불이처럼 희미해진답니다. 구리 전선을 더 두껍게 깔아야 하는데, 그러면 비용이 감당이 안 됩니다."


직류는 전압이 낮아 멀리 보내기가 힘들었다. 전선 속을 흐르며 힘을 다 잃어버리는 탓이었다. 에디슨은 신경질적으로 시가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그럼 발전소를 더 지어! 동네마다 하나씩, 아니 블록마다 하나씩 지으면 될 거 아냐! 시끄럽게 떠들지 말고 땅이나 알아보러 다녀!"


그것은 억지였다. 도시 전체에 전기를 공급하려면 수백, 수천 개의 발전소가 필요했다. 하지만 에디슨은 자신의 실패를 인정할 수 없었다. 이미 직류 제국에 너무 많은 돈을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3. 위험한 이방인들: 웨스팅하우스와 테슬라의 등장


그 무렵, 에디슨의 신경을 긁는 낯선 이름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철도 에어브레이크를 발명해 떼돈을 번 사업가 조지 웨스팅하우스, 그리고 에디슨의 연구소에서 "보너스 5만 달러는 농담이었다"는 말에 격분해 뛰쳐나간 크로아티아 출신의 천재 니콜라 테슬라.


이 두 사람이 손을 잡았다. 그들이 들고 나온 무기는 에디슨이 가장 혐오하는 교류(Alternating Current, AC)였다.


웨스팅하우스의 연구실, 테슬라는 우아한 손짓으로 도면을 가리켰다.


"사장님, 에디슨의 직류는 마치 양동이로 물을 퍼 나르는 것과 같습니다. 멀리 가면 물이 다 쏟아지죠. 하지만 저의 교류는 파도와 같습니다. 전압을 수십만 볼트로 높여서 쏘아 보내면, 수백 킬로미터 밖에서도 손실 없이 전기를 받을 수 있습니다. 변압기 하나면 가정용 전압으로 낮추는 것도 식은 죽 먹기죠."


웨스팅하우스는 무릎을 쳤다.

"이거요! 구리 전선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겠소. 에디슨이 발전소 100개를 지을 때 우리는 하나만 지으면 된다는 얘기군."


1886년, 웨스팅하우스 일렉트릭은 매사추세츠주 그레이트 베링턴에 최초의 교류 조명 시스템을 설치했다. 전구는 멀리서도 눈부시게 빛났고, 에디슨의 전구보다 훨씬 밝았다. 소문은 바람을 타고 뉴욕까지 흘러들어 갔다. 에디슨의 직류 제국에 거대한 균열이 생긴 순간이었다.



4. 멘로파크의 도살장: "교류는 악마의 전기다"


위기감을 느낀 에디슨은 점차 이성을 잃어갔다. 기술로 승부하기엔 교류의 효율성이 너무나 압도적이었다. 논리로 이길 수 없다면? 에디슨은 장사꾼 특유의 비열한 본능을 깨웠다. 바로 '공포(Fear)'였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공식을 심어야 해. '직류=안전, 교류=죽음'이라는 공식을!"


에디슨은 충직한 부하이자 로비스트인 해럴드 브라운을 불렀다.


"자네, 동네 꼬마들에게 용돈을 좀 쥐여주게. 유기견이든, 도둑고양이든, 병든 말이든 닥치는 대로 잡아 오라고 해. 아, 웨스팅하우스의 교류 발전기도 하나 몰래 구해오고."


그날부터 뉴저지 멘로파크의 에디슨 연구소 뒷마당은 밤마다 지옥으로 변했다. 에디슨과 브라운은 철판 위에 겁에 질린 개와 고양이를 올려놓았다.


"기자 양반들, 잘 보세요. 이게 바로 웨스팅하우스가 여러분의 안방에 끌어들이려는 전기입니다."


에디슨의 신호와 함께 브라운이 스위치를 올렸다. 1,000 볼트의 교류 전기가 흐르자, 철판 위의 동물들은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튀어 올랐다. 털이 타는 노린내, 살이 익는 역한 냄새, 그리고 '탁, 탁' 하며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연구소의 밤공기를 찢었다.


파지직-


순식간에 숯덩이가 된 동물의 사체 앞에서 에디슨은 태연하게 기자들을 향해 말했다.


"보셨습니까? 직류였다면 기껏해야 따끔했을 겁니다. 하지만 교류는 닿는 순간 즉사입니다. 이런 살인 전기를 집에 들이시겠습니까? 아이들이 실수로 전선을 만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에디슨은 이 잔혹한 실험을 멈추지 않았다. 수십 마리의 개와 고양이 심지어 말까지 희생되었다. 그는 이 행위를 "웨스팅하우스하다(Westinghousing)"라고 불렀다. 즉, "감전되어 죽다"라는 뜻의 신조어를 만들어 퍼뜨린 것이다.


"어제 우리 집 개가 전선을 물어뜯다가 웨스팅하우스 당했어."


이 말이 유행어처럼 번지길 바랐던 에디슨의 광기는 단순한 네거티브 마케팅을 넘어 '살인 기계'의 제작으로 이어진다.



5. 죽음의 의자: 인도주의를 가장한 살의


때마침 뉴욕 주지사는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교수형은 종종 밧줄 길이가 안 맞아 죄수의 목이 뜯겨 나가거나, 반대로 목이 졸린 채 20분 넘게 고통스럽게 발버둥 치는 사고가 빈번했기 때문이다.


"좀 더 인도적이고, 과학적이며, 현대적인 사형 방법은 없는가?"


이 소식을 들은 에디슨의 눈이 번뜩였다. 그는 비밀리에 주지사에게 접근했다. 물론 자신의 이름이 아닌, 꼭두각시 해럴드 브라운을 앞세워서 말이다.


"주지사님, 전기가 있습니다. 특히 '교류' 전기를 사용하면 죄수는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1,000분의 1초 만에 뇌가 정지하여 사망합니다. 가장 자비로운 죽음이죠."


주지사는 솔깃했다.

"오, 그런가? 그렇다면 그 기계를 만들어 줄 수 있겠나?"


에디슨은 뒤에서 은밀하게 기술을 지원했다. 그는 웨스팅하우스의 중고 교류 발전기를 구해와 의자에 연결했다. 나무로 된 투박한 의자, 머리를 고정할 가죽 끈, 그리고 척추와 머리에 닿을 전극. 역사상 최초의 전기의자는 그렇게 탄생했다.


에디슨의 속셈은 명확했다.

'법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공식 도구가 교류 전기를 쓴다면? 사람들은 교류를 사형수나 죽이는 끔찍한 기술로 인식할 것이다. 그러면 웨스팅하우스는 끝장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웨스팅하우스는 격분했다. 그는 거액을 들여 최고의 변호사들을 고용했다.

"이건 말도 안 돼! 잔인하고 비정상적인 형벌(Cruel and Unusual Punishment)을 금지하는 헌법 위반이야! 내 전기로 사람을 죽이게 놔둘 순 없어!"


하지만 법원은 에디슨(브라운)의 손을 들어주었다.

"과학자들의 소견에 따르면, 전기의자는 가장 인도적인 처형 방식임이 인정된다."


이제 필요한 것은 실험 대상, 즉 인간 마루타였다.



6. 오번 교도소의 지옥도: 윌리엄 케믈러의 최후


1890년 8월 6일 아침. 뉴욕 오번 교도소의 지하 처형장.

습한 곰팡이 냄새와 소독약 냄새가 섞인 차가운 공기 속에, 역사상 최초의 전기의자 사형수 윌리엄 케믈러가 걸어 들어왔다. 그는 청과물 상인으로, 술에 취해 애인을 도끼로 살해한 흉악범이었다.


하지만 이날만큼은 그가 가해자가 아닌, 거대한 과학 실험의 피해자처럼 보였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교도관들에게 말했다.

"천천히 해주시오. 그리고 일을 확실하게 처리해 주시오."


참관실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기자들, 의사들, 법조인들이 숨을 죽이고 유리창 너머를 응시했다. 에디슨은 오지 않았지만, 그의 대리인들은 구석에서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웨스팅하우스는 사무실에서 초조하게 전보를 기다리고 있었다.


케믈러가 의자에 앉았다. 굵은 가죽 끈이 그의 가슴과 팔다리를 조였다. 머리에는 전극이 닿을 부분이 삭발되어 있었고, 그 위에 소금물에 적신 축축한 스펀지와 금속 헬멧이 씌워졌다.


"준비 완료."


교도소장의 신호와 함께 집행관이 벽에 붙은 거대한 레버를 힘껏 내렸다.


웅- 웅-

발전기가 돌아가는 낮은 진동음이 바닥을 울렸다. 그리고 1,000 볼트의 교류 전기가 케믈러의 몸을 관통했다.


"으윽!"

케믈러의 몸이 활처럼 휘어졌다. 가죽 끈이 끊어질 듯 팽팽하게 당겨졌고, 그의 주먹은 하얗게 질렸다. 17초. 영원 같은 시간이 흐른 뒤 전기가 차단되었다. 케믈러의 몸이 축 늘어졌다.


의사가 다가가 청진기를 댔다.

"사망했습니다."


참관실에서는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역시 에디슨의 말대로 인도적이군." "깔끔해." 기자들이 수첩에 속기를 시작하려던 찰나였다.


"으... 으어..."


시체라고 판명된 케믈러의 입에서 짐승 같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가슴이 크게 들썩이더니 거친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입가에는 보랏빛 거품이 부글거렸다.


"살아있다! 젠장, 아직 살아있어!"


처형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의사들은 비명을 질렀고, 교도소장은 패닉에 빠져 소리쳤다.

"다시! 다시 올려! 전압을 최대로 올려!"


집행관은 당황한 손길로 전압을 2,000 볼트까지 올리고 다시 레버를 내렸다. 이번에는 17초가 아니었다. 확실히 죽이기 위해, 무려 70초 동안이나 전기를 흘려보냈다.


그것은 처형이 아니라 요리였다.

케믈러의 머리카락이 순식간에 불타올랐다. 전극이 닿은 정수리와 척추 부위의 살이 터지며 시커먼 연기가 피어올랐다. 혈관이 터져 피가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밀폐된 지하 처형장은 금세 매캐한 연기로 가득 찼다. 고기 굽는 냄새, 아니, 인간의 살과 머리카락, 배설물이 타는 역겹고 끔찍한 악취가 진동했다.


"우웩!"

참관하던 기자들은 바닥에 구토를 했고, 몇몇은 기절하여 실려 나갔다. 한 의사는 훗날 이렇게 기록했다.

"그는 숯덩이가 되었다. 차라리 도끼로 찍어 죽이는 게 더 자비로웠을 것이다."



7. 빛은 그림자를 이긴다: 에디슨의 패배


다음 날, 신문 1면은 케믈러의 끔찍한 죽음으로 도배되었다. 에디슨은 기대했을 것이다. '사람을 숯으로 만드는 악마의 전기'라는 타이틀을.


하지만 여론의 화살은 전기가 아닌, 에디슨을 향했다.

"어떻게 인간이 이런 끔찍한 기계를 만들 수 있는가?"

"가장 잔인한 살인 도구를 만든 발명가."


대중은 교류 전기의 위험성보다는 경쟁자를 죽이기 위해 이런 끔찍한 짓을 벌인 에디슨의 비도덕성에 치를 떨었다. 공포 마케팅의 역풍이었다.


결국 기술의 흐름을 거스를 순 없었다.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의 밤을 밝히는 거대한 프로젝트 입찰에서 에디슨의 제너럴 일렉트릭(GE)은 웨스팅하우스에게 패배했다. 웨스팅하우스와 테슬라는 25만 개의 전구를 교류 전기로 화려하게 밝혔고, 이어 나이아가라 폭포 수력 발전소 공사마저 따냈다.


에디슨의 직류는 도시의 중심에서 밀려났다. 오늘날 우리가 콘센트에 플러그를 꽂아 쓰는 모든 전기는 테슬라가 만든 교류다. 에디슨은 '전류 전쟁'에서 완패했다.



에필로그: 남겨진 유산


그렇다면 에디슨이 만든 그 의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비록 에디슨은 패배했지만, 그가 만든 '괴물'은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미국 사법부는 "첫 시도의 실수일 뿐, 익숙해지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며 전기의자를 고수했다.


이후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천 명의 사형수가 그 의자에 앉아 연기 속으로 사라졌다. 1990년대가 되어서야 약물 주사형이 보편화되면서 전기의자는 박물관으로, 혹은 창고 구석으로 밀려났다.


우리가 위인전에서 만나는 에디슨은 백열전구를 들고 온화하게 웃고 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명언과 함께 말이다. 하지만 그 눈부신 전구의 빛 뒤편에는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살아있는 생명을 태워 죽이고, 경쟁자를 파멸시키려 했던 한 사업가의 검은 욕망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마트에서 건전지를 살 때, 혹은 벽의 콘센트를 볼 때 한 번쯤 떠올려 보라. 1890년 8월, 오번 교도소의 지하에서 피어오르던 그 매캐한 연기를. 그리고 기억하라. 역사의 빛은 언제나 가장 짙은 어둠을 태우고 나서야 비로소 밝게 빛난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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