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위 방지를 위한 최후의 비밀 병기

호랑이 기운이 솟아나요? 아니, 제발 그 짓 좀 하지 말라는 겁니다

by 김경훈

"아침에 우유에 말아먹으면 호랑이 기운이 솟아나요!"


TV만 틀면 나오는 시리얼 광고다. 바삭바삭하고 달콤한 콘플레이크 한 그릇이면 세상 부러울 게 없는 아이들의 표정. 그런데 이 장면을 저승에서 보고 있다면 피를 토하고 무덤을 박차고 나올 양반이 한 명 있다. 바로 콘플레이크를 만든 장본인, 존 하비 켈로그 박사다.


"이놈들아! 내가 그걸 왜 만들었는데! 호랑이 기운을 쓰라고 만든 게 아니라, 그 기운을 빼라고 만든 거라고! 제발 그 힘으로 엄한 짓 좀 하지 말란 말이야!"


그렇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씹어 먹는 이 국민 간식 콘플레이크는 원래 인류의 은밀한 취미생활, 즉 '자위행위'를 원천 봉쇄하기 위해 개발된 '성욕 억제용 환자식'이었다.


믿기지 않는가? 달콤한 설탕 코팅 뒤에 숨겨진, 그 찝찝하고도 골 때리는 사연 속으로 들어가 보자.



1. 공포의 시대: "너 자꾸 만지작거리면 바보 된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콘플레이크가 나오기 전, 18~19세기 서양 사회는 그야말로 '자위 공포증'에 걸려 있었다. 학창 시절, 친구들끼리 낄낄대며 주고받던 괴담 기억나는가?


"야, 너 그거 많이 하면 키 안 큰데."

"나중엔 뼈가 삭아서 늙어 고생한대."


우린 이걸 그냥 애들 장난 같은 소리로 치부했지만, 옛날 서양 의사들은 이걸 진지하게, 아주 심각하게 믿었다. 당시 의학계의 베스트셀러였던 티소(Tissot)의 <오나니즘>이라는 책을 보면 기가 막힌다.


‘자위행위는 만병의 근원이다. 정액 1온스를 배출하는 건 피 40온스를 쏟는 것과 같다. 이걸 계속하면 척추가 휘고, 뇌가 쪼그라들며, 눈이 멀고, 결국엔 미쳐서 죽는다.’


상황이 이러니 부모들은 자식들이 이불속에서 조금만 꼼지락거려도 기겁을 했다. 의사들이 내놓은 처방전은 엽기 그 자체였다.


"애 손을 침대 기둥에 묶으세요."

"잘 때 성기에 가시 박힌 링을 채우면 아파서라도 못 만질 겁니다."

"정 안 되면... 그곳을 산으로 지져버립시다."


광기였다. 쾌락은 곧 죽음이라는 등식이 성립된 시대. 사람들은 자신의 몸을 저주했고, 밤마다 이불속에서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그리고 이 광기의 한복판에, '금욕 식단'의 원조가 등장한다.



2. 금욕의 끝판왕 1: 그레이엄 목사와 맛없는 과자


콘플레이크 이전에 이 남자를 빼놓을 수 없다. 1830년대 미국, 자위 퇴치에 목숨을 건 열혈남아 실베스터 그레이엄(Sylvester Graham) 목사다. 그는 강단에서 침을 튀기며 설교했다.


"여러분! 왜 인간이 타락합니까? 왜 젊은것들이 밤마다 음란한 짓을 합니까? 다 '음식' 때문입니다!"

"음식이요?"

"그래요! 기름진 고기를 처먹으니까 피가 뜨거워지고, 흰 빵에 향신료를 쳐서 먹으니까 신경이 자극받아서 욕정을 못 참는 겁니다! 위장이 흥분하면 아랫도리도 흥분하는 법이라고요!"


그레이엄 목사의 논리는 단순 무식했다. '자극적인 음식 = 성욕 폭발 = 자위행위 = 지옥행'. 해결책은? 간단했다. 맛대가리 없는 걸 먹이면 된다.


"거친 통밀을 드세요! 도정하지 않은 거친 밀가루로 만든, 아무 간도 하지 않은 빵을 먹어야 욕망이 잠재워집니다."


그는 직접 통밀가루를 개발했는데, 이게 바로 '그레이엄 밀가루'다. 그리고 이걸로 아주 딱딱하고 밍밍한 과자를 구웠으니,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먹는 '그레이엄 크래커'의 조상님 되시겠다.


당시 이 크래커는 간식이 아니라 '치료제'였다. 맛? 톱밥 뭉쳐 놓은 맛이었다. 하지만 신도들은 성욕을 없애기 위해 이 맛없는 과자를 꾸역꾸역 씹어 삼켰다.


"목사님, 이걸 먹으니까 입안이 까끌까끌한 게... 정말로 아무 생각이 안 납니다."

"그렇죠! 그게 바로 구원의 맛입니다. 혀가 즐거우면 영혼이 병드는 법!"


이 그레이엄 목사의 사상을 뼈에 새긴 수제자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훗날 시리얼 제국을 건설하게 될 존 하비 켈로그였다.



3. 금욕의 끝판왕 2: 배틀크릭의 독재자 켈로그


1876년, 미국 미시간 주 배틀크릭. 이곳에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에서 운영하는 거대한 요양원, '배틀크릭 새너토리엄'이 있었다. 원장은 존 하비 켈로그 박사. 그는 스승인 그레이엄 목사보다 한술 더 뜨는 양반이었다.


하얀 양복을 빼입고 근엄하게 회진을 도는 켈로그 박사의 눈에 환자들은 죄다 음란마귀가 씌인 죄인들이었다.


"저놈 눈 풀린 거 봐라. 어제 또 했구만."

"환자들 상태가 왜 저래?"

"원장님, 그게... 젊은 친구들이 혈기 왕성해서 통제가 안 됩니다."

"내가 뭐라 그랬어! 저것들에게 고기를 주지 말라니까! 짐승 고기를 먹으니까 짐승 짓을 하는 거 아냐!"


켈로그 박사는 환자들의 식탁을 싹 갈아엎었다. 스테이크, 소시지, 매운 소스? 다 압수. 식탁에는 풀죽, 밍밍한 그레이엄 빵, 그리고 맹물만 올라왔다.


"이거 먹고 도를 닦으라는 거야?"


환자들은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에디슨 같은 유명 인사나 대통령도 건강 좀 챙겨보겠다고 비싼 돈 내고 들어왔는데, 밥상이 무슨 토끼 사료 수준이니 원.


"야, 못 해 먹겠다. 오늘 밤에 담 넘어서 스테이크 썰러 가자."


환자들은 밤마다 요양원을 탈출해 고기를 사 먹고 들어왔고, 켈로그 박사는 격분했다.


"이 어리석은 중생들! 육신의 쾌락을 좇다가 영혼이 썩는 줄도 모르고!"


그는 결단을 내렸다. 고기를 대체할 수 있으면서도 소화가 잘되고, 결정적으로 '성욕을 감퇴시킬 만큼 더럽게 맛이 없는' 완벽한 아침 식사를 개발하기로. 그는 동생 윌 켈로그를 주방으로 호출했다. 동생 윌은 형의 병원에서 온갖 잡일을 도맡아 하던 '현실 담당'이었다.


"윌, 주방으로 튀어와. 지금부터 우린 인류를 구원할 새로운 음식을 만든다."



4. 주방의 기적: 실수가 낳은 옥수수 칩


형제는 주방에 틀어박혀 밀가루 반죽과 씨름을 했다. 목표는 '소화 잘되는 빵'. 하지만 결과물은 늘 떡이 되거나 돌덩이가 됐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이었다. 밀을 삶아 반죽을 만들어 놨는데, 갑자기 급한 환자가 생겨서 자리를 비우게 됐다. 돌아와 보니 반죽은 차갑게 식어서 굳어버린 상태.


"아이고, 형한테 또 깨지겠네. 재료 다 버렸잖아."

윌이 한숨을 푹 쉬는데, 켈로그 박사가 들어왔다.


"야, 버리기 아까우니까 롤러 기계에 한번 밀어봐. 뭐라도 나오겠지."

"이 딱딱한 걸요?"

"시키면 해!"


윌은 투덜거리며 굳은 반죽을 롤러 사이에 밀어 넣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넓은 빵 반죽이 나오는 게 아니라, 얇고 바삭한 조각들이 우수수 떨어지는 게 아니겠습니까.


"어? 이거 뭐야? 톱밥이야?"


형제는 호기심에 이 조각들을 오븐에 살짝 구워봤다.

바사삭-

노릇하게 구워진 조각들은 가볍고 바삭했다. 입에 넣자 사르르 녹아내렸다.


"이거다! 윌, 이걸 봐라. 기름기도 없고, 고기도 아니지만, 씹는 맛이 있어!"


켈로그 박사는 유레카를 외쳤다. 그는 즉시 재료를 옥수수로 바꿔서 실험을 계속했다. 옥수수 반죽은 더 고소하고 바삭했다. 역사적인 '콘플레이크'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5. 엇갈린 동상이몽: 치료제냐 상품이냐


켈로그 박사는 의기양양하게 이 새로운 음식을 환자들에게 배급했다.

"자, 이걸 먹어라. 너희의 음란한 마음을 씻어줄 것이다."


그런데 반응이 박사의 예상과는 딴판으로 흘러갔다.

"오? 원장님, 이거 맛있는데요?"

"우유에 말아먹으니까 술술 넘어가네. 더 없어요?"

"퇴원할 때 좀 싸주시면 안 됩니까?"


환자들은 켈로그 박사의 숭고한 의도 따위는 알 바 아니었다. 그저 맨날 풀만 뜯다가 바삭바삭한 게 들어오니까 환장한 것이다. 성욕 억제제여야 할 음식이 '먹는 즐거움'을 주는 간식이 되어버린 셈이다.


이 꼴을 지켜보던 동생 윌 켈로그의 머릿속에 계산기가 돌아갔다.


"형님, 이거 됩니다. 병원에서만 쓸 게 아니라 전 국민한테 팝시다. 아침마다 밥 차리기 귀찮은 주부들한테 대박 날 겁니다."

"무슨 헛소리야! 이건 신성한 치료제다. 장사치들처럼 돈 벌 생각 하지 마!"

"형님, 고집 좀 그만 부리세요. 여기다가 설탕을 살짝 입히면 애들도 환장할 텐데..."

"뭐? 설탕?!"


켈로그 박사는 뒷목을 잡았다.


"이 악마 같은 놈! 설탕은 인간을 흥분시키고 타락시키는 하얀 독약이야! 내 거룩한 발명품에 독을 타겠다고? 절대 안 돼! 맛없게 만들어야 해. 그래야 사람들이 죄를 안 짓지!"



6. 배신과 전쟁: 숟가락 얹은 놈과 뛰쳐나간 놈


형제가 지지고 볶고 싸우는 사이 배틀크릭 요양원에는 눈치 빠른 환자가 하나 있었다. C.W. 포스트였다. 사업 말아먹고 우울증 걸려서 입원했던 그는 식당에서 나온 콘플레이크를 먹어보고 무릎을 쳤다.


"이거... 돈 냄새가 나는데?"


포스트는 퇴원하자마자 켈로그 박사의 레시피를 훔쳐서(혹은 참고해서) 요양원 근처에 공장을 차렸다. 그리고 '그레이프 너츠'라는 시리얼을 출시했다. 광고 문구부터가 켈로그 박사를 엿먹이는 수준이었다.


"먹으면 힘이 솟는 아침 식사! 뇌가 번뜩입니다! 에너지가 콸콸!"


켈로그 박사가 성욕 뺀다고 만든 걸 가지고 에너지가 솟는다고 광고를 때리니, 물건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포스트는 순식간에 백만장자가 됐다.


이걸 본 동생 윌 켈로그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형! 남들은 저걸로 떼돈을 버는데 우리는 손가락만 빨고 있어? 나 나갈 거야!"


결국 1906년, 윌은 형과 의절하고 독립해서 '켈로그' 회사를 차렸다. 그리고 형이 그토록 혐오하던 설탕을 콘플레이크에 듬뿍 발랐다.

"맛있는 콘플레이크 드세요! 윙크하는 아가씨에게 공짜로 드립니다!"


결과는? 초대박이었다. 미국 전역의 식탁이 켈로그의 콘플레이크로 뒤덮였다. 사람들은 금욕이고 나발이고, 달콤하고 바삭한 아침 식사에 환장했다.



에필로그: 욕망은 억누를수록 달콤하다


켈로그 박사는 어떻게 됐냐고? 그는 죽을 때까지 동생을 비난했다.

"타락한 놈... 내 이름을 도용해서 사탄의 음식을 팔다니."


그는 자신의 요양원에서 끝까지 무설탕, 무맛의 '순수 콘플레이크'를 고집했지만, 역사의 승자는 설탕을 뿌린 동생 윌이었다.

그레이엄 목사가 만든 크래커도 마찬가지다. 원래는 톱밥처럼 거칠고 맛없던 그 과자는 훗날 꿀과 설탕, 초콜릿이 더해져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간식(스모어 알지? 마시멜로 끼워 먹는 거)이 됐다.


오늘날 전 세계 마트 진열대를 점령한 호랑이 기운의 시리얼들을 보라. 그 어디에도 "이것을 먹고 자위를 멈추시오"라는 문구는 없다. 오히려 아이들의 식욕을 자극하는 달콤한 유혹만이 가득하다.

켈로그 박사와 그레이엄 목사의 원대한 꿈, 즉 '식단을 통한 인류의 성욕 거세'는 처참하게 실패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맛있는 것을 찾아냈고, 금기시되던 음식에 설탕을 뿌려 더 큰 쾌락으로 승화시켰으니까.


내일 아침, 우유에 젖어 눅눅해지는 콘플레이크를 씹으며 한 번쯤 떠올려 보시라. 이 얇은 옥수수 조각 하나에 100년 전 의사의 엄숙한 광기와, 그것을 비웃듯 피어난 자본주의의 달콤한 욕망이 뒤섞여 있다는 사실을.


역사는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욕망을 끄기 위해 만든 음식이 결국 가장 욕망을 자극하는 상품이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뭐, 어쨌든 맛있으면 된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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