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는 거대한 데이터의 바다다.
우리가 쏘아 올린 전파, 소리, 그리고 의념은 우주 공간을 떠돌다 누군가의 안테나에 잡히기 마련이다.
문제는 그 신호를 수신한 존재가 '지성체'가 아니라, 단순히 '식욕'만 남은 고칼로리 데이터 덩어리일 때 발생한다. 그들에게 지구는 '푸른 행성'이 아니라, '거대한 튀김기'로 보일 테니까.
- 영적 균형 학회 4대 석학, 김경훈.
「조율과 축출에 관한 소고 - 개정판 서문」 (자가 출판, 2025년) 35쪽 (미지와의 조우 편).
에피소드 34. 안드로메다발 고칼로리 데이터의 습격
1.
[황 보 부동산 컨설팅] 사무실.
GBI 사태가 해결된 지 일주일 후, 사무실은 그야말로 평화와 자본의 향기로 가득 차 있었다.
황 소장은 자신의 책상 위에 다리를 올리고 있었다. 그녀가 신고 있는 크리스찬 루부탱 힐의 붉은 밑창이 천장 조명을 받아 번쩍였다. 그녀의 손에는 계산기 대신, GBI 본사에서 보내온 배당금 입금 내역서가 들려 있었다.
"어머, 환율이 올라서 가만히 앉아서 5억을 더 벌었네? 조 실장, 이거 세금 처리는 어떻게 되는 거야?"
조 실장은 자신의 자리에서 최고사양으로 업그레이드된 에일리언웨어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녀의 책상 주변에는 GBI에서 뜯어낸 최첨단 서버 장비들이 요새처럼 쌓여 있었다.
"해외 배당 소득세 15.4% 제외하고 들어온 거라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이사님. 그보다 팀장님, 저쪽 데이터가 좀 이상한데요?"
김경훈은 소파에 앉아, GBI 제임스 박이 사죄의 의미로 상납한 영국제 탄노이 스피커의 소리를 감상하고 있었다. 클래식 음악이 사무실의 공기를 우아한 C 장조로 채우고 있었다. 그는 로로 피아나 실내 가운을 걸치고, 바카라 잔에 든 탄산수를 흔들었다.
"데이터라뇨. 이 탄노이의 울림통은 완벽합니다. 나무의 결이 살아있는 아날로그 감성이죠. 마크 레빈슨 앰프와의 매칭도 훌륭하고요."
"아니요, 스피커 말고요."
조 실장이 모니터를 가리켰다. 그녀의 화면에는 붉은색 경고등이 픽셀 단위로 깨지며 점멸하고 있었다.
"대기권 밖에서 뭔가 접근하고 있어요. 속도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수치예요. 이건 비행체가 아니라, 일종의 데이터 전송에 가까워요."
"데이터 전송?"
그때였다.
김경훈의 귀에 꽂혀 있던(음악 감상이 아니라 분석을 위해) JH 오디오 인이어 모니터에서 기이한 소리가 들려왔다.
... 치이이이익... 보글보글...
그것은 영혼의 울음소리(Fm)도, 악귀의 비명(G#)도 아니었다.
마치 거대한 기름 솥에 반죽을 던져 넣는 소리, 혹은 탄산음료 뚜껑을 땄을 때 나는 청량한 파열음이 수천 배 증폭된 소리였다.
"이 파동은..."
김경훈이 미간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영적인 게 아닙니다. 이건... '물질(Matter)' 그 자체의 과부하 신호입니다."
[킁킁... 킁킁!]
책상 밑에서 자고 있던 탱고가 벌떡 일어났다. 에르메스 하네스를 찬 그가 사무실 천장을 향해 코를 벌름거렸다.
[팀장님! 맛있는 냄새가 나요! 엄청 고소하고... 톡 쏘는 냄새!]
"맛있는 냄새?"
황 소장이 의아해하는 순간, 사무실 한복판의 공간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마치 아스팔트 위의 아지랑이처럼, 혹은 뜨거운 기름 위로 피어오르는 열기처럼.
쿠-웅!
굉음과 함께 사무실 바닥이 울렸다. 황 소장의 델보 가방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먼지가 가라앉자, 그곳에는 지구의 생명체라고는 도저히 볼 수 없는, 기괴하고도 먹음직스러운(?) 두 형체가 서 있었다.
2.
"으악! 뭐야 저거!"
황 소장이 크리스찬 루부탱 힐을 벗어 손에 쥐고 방어 자세를 취했다.
왼쪽에 서 있는 존재는 거대했다.
대략 2미터가 넘는 키. 온몸이 노르스름한 튀김옷으로 덮여 있었고, 표면에서는 윤기가 흐르는 기름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머리 부분에서는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고, 등 뒤에는 거대한 나무 막대기가 꽂혀 있었다.
그것은 걸어 다니는 거대한 핫바였다.
오른쪽에 있는 존재는 불안정했다.
짙은 갈색의 반투명한 액체 괴물 같았지만, 전체적인 실루엣은 잘록한 곡선을 그리며 유리병 콜라를 연상시켰다. 몸속에서는 끊임없이 기포가 보글보글 올라와 터지며 '톡, 톡' 하는 소리를 냈다.
"......"
김경훈은 선글라스를 고쳐 쓰며, 이 황당한 데이터를 분석하려 애썼다.
"분석 불가. 영적 코드가 없습니다. 이건 순수한... '칼로리(Calorie)' 데이터 덩어리군요."
"칼로리?"
황 소장이 비명을 질렀다.
"야! 저 핫바 놈! 내 페르시아산 실크 카펫에 기름 떨어지잖아! 저게 얼마짜린 줄 알아? 세탁비 청구할 거야!"
황 소장의 고함 소리에 '핫바 외계인(이하 핫바 군)'이 반응했다.
그는(혹은 그것은) 몸을 부르르 떨더니, 몸 표면의 기름을 사방으로 튀기기 시작했다.
치이익! 타닥!
뜨거운 기름 방울이 사방으로 비산 했다. 조 실장이 급하게 노트북을 껴안고 책상 밑으로 숨었다.
[우와... 튀김 냄새...!]
탱고만이 유일하게 공포가 아닌 식욕을 느끼며 입맛을 다셨다.
"조 실장. 해석 가능합니까?"
김경훈이 로로 피아나 가운으로 기름을 막으며 물었다.
[잠시만요! GBI 데이터베이스 접속... 검색 결과 없음... 아니, 유사 패턴 발견! 안드로메다 은하계 '튀김 성단'과 탄산가스 성운 '코카 행성'의 생명체로 추정돼요!]
"튀김 성단...?"
김경훈은 17살 충주 기숙사 시절, 배고픔에 시달리며 상상했던 핫바의 맛을 떠올렸다. 하지만 저건 상상이 아니라, 물리적인 위협이었다.
옆에 있던 '콜라 외계인(이하 톡톡이)'이 몸을 부풀렸다. 그의 몸속 기포가 급격히 팽창하며, 뚜껑이 따지기 직전의 캔음료처럼 위험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보글보글... 콰아아...
"위험합니다! 탄산 압력이 임계점을 넘었어요!"
조 실장이 외쳤다.
3.
김경훈은 JH 오디오 이어폰의 감도를 조절했다.
이들의 언어는 지구의 언어가 아니었다. 기름 끓는 소리와 탄산 터지는 소리의 조합. 김경훈은 자신의 '디지털 공감각'을 이용해 그 소리를 데이터로 변환(번역)했다.
[수신 데이터 분석 중...]
[핫바 군]: "여기인가... 그 '거대한 공명(Ep.33의 블레이드 파동)'이 울려 퍼진 곳이..."
[톡톡이]: "배고파... 에너지가 필요해... 그 파동은 분명 '맛집'의 신호였어..."
김경훈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아이고. 지난번 차승목 때려잡을 때 썼던 제 파동을... 우주적 규모의 '배달 앱 알림'으로 착각하고 오셨군요."
"뭐? 배달?" 황 소장이 기가 막혀했다. "우리가 밥집이야? 밥 달라고 지구까지 온 거야?"
"그런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금 매우... '공복(Empty)' 상태인 것 같군요."
그때, 핫바 군이 황 소장의 에르메스 버킨 백을 보더니, 그것을 음식으로 착각했는지 끈적한 손을 뻗었다.
"안 돼! 내 가방!"
황 소장이 크리스찬 루부탱 힐을 벗어던져 핫바 군의 손을 맞췄다.
퍽! 미끄덩!
구두 굽이 핫바 군의 기름진 몸에 맞고 미끄러져 나갔다. 핫바 군은 공격당했다고 생각했는지, 몸에서 고열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화아아악-
사무실 온도가 급격히 올라갔다. 탄노이 스피커의 무늬목이 열기에 비틀리기 시작했다.
"이런. '과열(Overheat)'입니다. 저러다 사무실 전체가 튀겨지겠습니다."
옆에 있던 톡톡이도 흥분했다. 그가 몸을 흔들자, 내부의 탄산이 폭발적으로 분출되었다.
푸슈슈슈슉!!
갈색의 끈적한 액체(콜라)가 고압 호스처럼 뿜어져 나왔다. 액체는 천장과 벽, 그리고 김경훈의 소중한 마크 레빈슨 앰프를 덮쳤다.
"내 앰프!"
김경훈의 평정심이 흔들렸다. 저 앰프는 물도 아니고 콜라 같은 당분 덩어리에 닿으면 즉시 사망이다.
[으아앙! 털이 끈적거려요!]
탱고가 콜라를 뒤집어쓰고 뒹굴었다.
황 소장은 기름과 콜라 범벅이 된 사무실을 보며 절규했다.
"청소비! 인테리어 복구비! 세탁비! 이거 다 합치면 5억은 나와! 야 이 외계인 놈들아! 니네 별 화폐 환율이 어떻게 돼!"
4.
상황은 통제 불능이었다.
핫바 군은 열기를 뿜으며 사무실을 사우나로 만들고 있었고, 톡톡이는 탄산음료를 난사하며 모든 것을 끈적하게 만들었다. 물리적 타격(골프채)도, 영적 조율(소리굽쇠)도 통하지 않는 상대였다. 귀신이 아니라 '물질'이었기 때문이다.
조 실장이 책상 밑에서 소리쳤다.
"팀장님! 놈들의 데이터를 해킹할 수가 없어요! 방화벽이... 너무 '바삭'해요!"
"바삭하다니, 그게 무슨..."
김경훈은 선글라스에 튄 콜라 방울을 닦아내며 생각했다.
이들은 '적의'를 가진 침입자가 아니다. 그저 '배가 고프고', '말이 안 통하고', '당황한' 손님일 뿐이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퇴치'가 아니라 '접대'다.
하지만 무엇으로?
김경훈의 시선이 사무실 구석에 놓인 냉장고로 향했다. 탱고를 위해 사다 놓은 식재료들이 있었다.
"탱고! 냉장고 열어!"
[네? 저기 핫바 아저씨가 막고 있는데...]
"소고기 줄게! 빨리!"
'소고기'라는 단어에 탱고가 빛의 속도로 움직였다. 핫바 군의 다리 사이를 뚫고 지나가 냉장고 문을 활짝 열었다.
냉장고 안에는 시원한 생수와, 탱고용 최고급 육포, 그리고...
황 소장이 당 떨어질 때 먹으려고 숨겨둔 멘토스(박하사탕)가 있었다.
"안 돼! 멘토스는 안 돼!"
조 실장이 비명을 질렀다.
"탄산 성운 외계인에게 멘토스는... '핵폭탄' 기폭제예요!"
하지만 이미 늦었다.
냉장고 문이 열리자 굴러 떨어진 멘토스 한 알이, 바닥에 흥건한 콜라 웅덩이(톡톡이의 발치)로 굴러갔다.
퐁당.
순간, 사무실의 시간이 멈춘 듯했다.
톡톡이의 몸속 기포가 일시에 멈췄다. 그리고...
쿠우우우우웅....
그의 몸이 급격하게 팽창하기 시작했다.
5.
"모두 엎드려!"
김경훈이 외쳤다. 이대로라면 사무실이 콜라 폭발로 날아갈 판이었다.
그는 아스텔 앤 컨 플레이어를 집어 들었다.
이 폭발을 막으려면, 탄산의 화학반응 속도를 늦춰야 한다. 소리로 분자의 움직임을 제어하는 '초정밀 조율'이 필요했다.
그는 JH 오디오 이어폰을 빼버리고, 플레이어를 사무실 방송 시스템(마크 레빈슨)에 직결했다.
그리고 재생 목록에서 가장 차분하고, 가장 느린 템포의 곡을 골랐다.
[Track 01: 스승의 정적 (Remix Ver.)]
"음악 큐."
웅-------.
스피커에서 초저주파의 진동이 울려 퍼졌다. 귀로 들리는 소리가 아닌, 피부로 느껴지는 묵직한 압력이었다.
그 파동은 팽창하던 톡톡이의 몸을 감싸 안았다.
탄산가스의 분자 운동이 김경훈이 보낸 '정적'의 파동과 충돌하며 속도가 느려졌다.
부풀어 오르던 톡톡이의 몸이, 마치 슬로 모션처럼 천천히... 다시 줄어들기 시작했다.
"지금입니다! 황 보! 핫바 군의 열기를 식혀야 합니다!"
"뭐? 어떻게?"
"창문! 창문을 여세요!"
황 소장이 루부탱 힐을 신고 뛰어가 통유리창을 활짝 열었다.
겨울의 찬 바람이 사무실로 들이닥쳤다.
차가운 공기가 뜨거운 핫바 군을 덮쳤다.
기름이 식으면서 핫바 군의 몸이 딱딱하게 굳기 시작했다.
김이 사라지고, 윤기 흐르던 튀김옷이 하얗게 변하며 동작이 멈췄다.
톡톡이는 '정적' 파동에 진정되었고, 핫바 군은 '냉기'에 굳어버렸다.
"후우..."
김경훈이 플레이어를 정지시켰다.
사무실은 엉망이었지만, 폭발은 막았다.
6.
상황이 종료되자, 두 외계인은 얌전해졌다.
그들은 자신들을 진정시켜 준(사실은 얼리고 굳혀버린) 김경훈에게 감사를 표하는 듯, 꾸벅꾸벅 인사를 했다.
[핫바 군]: (기름 끓는 소리) "고맙다... 지구인... 과열된 심장을 식혀주어서..."
[톡톡이]: (탄산 빠지는 소리) "위험했다... 하마터면 자폭할 뻔했어..."
김경훈이 통역했다.
"배고파서 예민했답니다. 그리고 폭발을 막아줘서 고맙다는군요."
황 소장이 엉망이 된 사무실을 보며 이를 갈았다.
"고마우면 돈을 내! 돈을! 청소비 내놔!"
핫바 군이 자신의 등 뒤에 꽂혀 있던 나무 막대기(꼬치)를 뽑았다. 그리고 톡톡이는 자신의 몸속에서 반짝이는 무언가를 뱉어냈다.
그것들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두 외계인은 다시 텔레포트 광선을 타고 하늘로 사라졌다.
"이게 뭐야? 쓰레기만 주고 간 거야?"
황 소장이 꼬치 막대기와 축축한 돌멩이를 보며 화를 냈다.
하지만 조 실장이 장비를 들고 달려와 그것들을 스캔했다.
"이... 이사님! 이거 버리시면 안 돼요!"
"왜? 꼬치 막대기가 돈이라도 돼?"
"이 막대기... 지구상에 없는 초고밀도 탄소 섬유예요! 이거 하나면 우주선도 만들 수 있어요! 그리고 이 돌멩이는... 다이아몬드 원석이에요! 탄산 압력으로 압축된 순도 100% 다이아몬드!"
"뭐?!"
황 소장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녀는 꼬치와 돌멩이를 에르메스 스카프로 고이 감싸 델보 가방에 넣었다.
"김 팀장. 오늘 회식은 핫바랑 콜라다. 아니, 소고기 먹으러 가자!"
김경훈은 기름 범벅이 된 로로 피아나 코트를 벗어던지며 씁쓸하게 웃었다.
"전 그냥... 사우나나 가겠습니다. 기름기를 좀 빼야겠어요."
[팀장님! 저 핫바 아저씨가 꼬리 하나 떨어뜨리고 갔어요! 먹어도 돼요?]
탱고가 바닥에 떨어진 튀김 부스러기를 보며 군침을 흘렸다.
헬프 데스크의 하루는, 우주적인 난장판과 뜻밖의 횡재로 저물어갔다.
(에피소드 34.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