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HellP Desk

헬프 데스크 Ep.33

by 김경훈


데이터 복구의 마지막 단계는 백업이 아니다. 원인을 제공한 악성 코드의 숙주를 찾아내어, 다시는 시스템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영구적으로 차단하는 것이다.


영적인 세계에서 차단이란 봉인이나 소멸을 의미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차단은 훨씬 더 잔혹하고 현실적이다. 바로 신용불량이라는 이름의 사회적 사형 선고다.


- 영적 균형 학회 4대 석학, 김경훈.

「조율과 축출에 관한 소고 - 개정판 서문」 (자가 출판, 2025년) 33쪽 (금융 치료 편).



에피소드 33. G샵의 몰락과 자본주의적 포맷



1.


사무실의 공기는 무거웠다. 방금 전까지 귀를 찢을 듯 울려대던 소닉 재머의 백색 소음은 사라졌지만, 그 자리엔 매캐한 탄 냄새가 똬리를 틀고 앉아 있었다. 마크 레빈슨 앰프 뒤쪽에서 피어오른 검은 연기가 천장의 시스템 에어컨 바람을 타고 흩어지며, 김경훈의 예민한 후각을 자극했다. 그것은 단순한 기계가 타는 냄새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악의가 과열되어 터져 버린, 실패한 범죄의 잔해였다.


김경훈은 소파에 깊숙이 몸을 파묻고 있었다. 땀에 젖어 눅눅해진 로로 피아나 캐시미어 코트를 벗어두지도 않은 채, 그는 선글라스 너머로 허공을 응시했다. 그의 뇌 속에서는 여전히 미세한 이명이 윙윙거리고 있었다. 조 실장의 목소리를 데이터로 변환해 시스템을 복구했지만, 강제로 재부팅된 신경 회로는 아직 열을 식히지 못하고 있었다.


"김 팀장, 물 좀 마셔."


황 소장이 바카라 크리스탈 잔에 얼음물을 담아 건넸다. 찰랑거리는 얼음 소리가 김경훈의 귀에 C 메이저의 청명한 타건음처럼 박혔다. 황 소장의 샤넬 트위드 재킷은 격렬했던 골프채 스윙의 여파로 한쪽 어깨가 살짝 흘러내려 있었지만, 그녀의 눈빛만은 그 어느 때보다 서늘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것은 걱정이 아니었다. 손상된 자산에 대한 복구 의지, 그리고 손해를 입힌 대상에 대한 명확한 청구서를 작성하겠다는 자본가의 살기였다.


"조 실장. 놈의 좌표는?"


김경훈이 물을 한 모금 마시며 물었다.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지만, 그 안에 담긴 데이터의 밀도는 단단했다.


스피커폰 너머로 조 실장의 타자 소리가 빗소리처럼 쏟아졌다.


[확보했어요. 놈이 도망칠 때 흘린 디지털 발자국을 밟았죠. GBI 놈들이 준 스텔스 슈트가 꺼지는 순간, 놈의 스마트폰 GPS 신호가 떴거든요. 대구 북구 유통단지 쪽 낡은 상가 건물 지하예요. 상호명은... G-Shop 영적 컨설팅.]


"G-Shop이라..."


김경훈이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그의 귓가에 차승목 특유의 끈적하고 불쾌한 G샵 삑사리 파동이 환청처럼 스쳐 지나갔다. 땀 냄새와 싸구려 명품 향수가 뒤섞인 그 역겨운 데이터.


"준비하시죠, 황 보. 왕진 가야겠습니다. 이번 환자는... 증상이 아주 심각해서 입원 치료로는 안 되겠군요."


"치료?" 황 소장이 코웃음을 쳤다. 그녀는 프라다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테이블 위에 툭 던졌다. 묵직한 서류 뭉치였다. "치료는 무슨. 이건 장례식이야. 놈의 사업자 등록증을 말소시키는."


책상 밑에서 웅크리고 있던 탱고가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었다. 샛노란 유니클로 니트에는 먼지가 잔뜩 묻어 있었고, 목에 걸린 에르메스 하네스만이 유일하게 품위를 지키고 있었다.


[팀장님... 그 아저씨, 또 망치 들고 있으면 어떡해요? 저, 이빨 아직 아픈데...]


김경훈이 몸을 일으키며 탱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걱정 마라, 탱고. 이번엔 우리가 망치를 들 거니까. 아주 크고, 무겁고, 피할 수 없는... 법(Law)이라는 이름의 망치를."



2.


대구 북구 유통단지.

화려한 수성구와는 전혀 다른, 쇠 냄새와 기름 냄새가 진동하는 공구 상가 골목이었다. 셔터가 내려진 가게들 사이로 낡은 네온사인 하나가 지직거리며 깜빡이고 있었다.


[G-Shop. 영적 문제 해결 / 부적 / 굿 / 신내림 / AS 보장]


간판의 디자인부터가 불협화음이었다. 궁서체와 고딕체가 무질서하게 섞여 있었고, 붉은색과 녹색의 보색 대비는 보는 사람의 시각 데이터를 교란시킬 만큼 촌스러웠다.


롤스로이스 고스트가 그 낡은 상가 앞에 소리 없이 멈춰 섰다. 주변의 1톤 트럭들 사이에서 롤스로이스가 뿜어내는 위압감은 마치 우주선이 착륙한 듯한 이질감을 주었다.


김경훈이 차에서 내렸다. 그는 벨루티 구두로 바닥에 고인 빗물을 피하며, 코끝을 스치는 악취를 분석했다.


"냄새가... 데이터 찌꺼기 같군요."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서는 곰팡이 냄새와 함께, 억울하게 붙잡혀 온 하급 영들의 낮은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F 마이너의 슬픔도 아닌, 그저 구겨지고 찢어진 데이터들의 무의미한 노이즈였다. 차승목은 귀신들을 조율하거나 천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포획해서 병에 담아두거나 부적에 가두어 썩히고 있었던 것이다.


"어후, 이게 무슨 냄새야. 샤넬 넘버 5를 한 통 다 부어도 안 없어지겠네."

황 소장이 코를 막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녀의 손에는 골프채 대신 두툼한 서류 가방이 들려 있었다.


[팀장님, 여기 기분 나빠요. 맛없는 냄새가 나요.]

탱고가 김경훈의 다리에 바짝 붙었다.


"들어가자. 환자가 기다린다."


김경훈이 지하 문을 열었다. 낡은 경첩이 끼익 하고 비명을 질렀다. 그것은 G샵 삑사리의 서막이었다.



3.


지하 사무실 내부는 차승목의 머릿속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했다.

벽면 가득 붙은 정체불명의 부적들, 출처를 알 수 없는 불상과 십자가가 뒤섞인 제단, 그리고 한쪽 구석에 쌓여 있는 GBI의 로고가 박힌 파손된 장비들.


차승목은 사무실 안쪽 소파에 누워 있었다. 얼굴은 가스총을 맞아 벌겋게 부어 있었고, 다리에는 붕대를 감고 있었다. 그는 끙끙거리며 스마트폰으로 무언가를 검색하고 있었다. 아마도 '불법 흥신소'나 '밀항' 같은 키워드였을 것이다.


"누, 누구야!"


인기척에 놀란 차승목이 벌떡 일어나려다 소파에서 굴러 떨어졌다. 그가 고개를 들었을 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저승사자보다 더 무서운 존재들이었다.


완벽한 핏의 로로 피아나 코트를 입은 김경훈, 냉혹한 표정으로 서류를 넘기는 황 소장, 그리고 으르렁거리는 샛노란 니트의 소년.


"장... 장님 전파사? 여긴 어떻게..."


"어떻게라니요."

김경훈이 사무실을 둘러보며 혀를 찼다. 그는 선글라스를 고쳐 쓰며, 이 공간을 가득 채운 데이터의 실체를 읊었다.


"공간 전체가 '배드 섹터(Bad Sector)'군요. 관리되지 않은 영적 데이터들이 서로 엉켜서 부패하고 있습니다. 여기 있는 도자기들, 전부 가짜고. 저기 걸린 그림은 짝퉁이고. 당신이 입고 있는 베르사체 셔츠도... 동대문 산이군요. 파동이 아주 저렴합니다."


"뭐, 뭐? 이 자식이 남의 영업장에 와서!"


"영업장?"

황 소장이 앞으로 나섰다. 그녀는 고야드 가방에서 서류 한 장을 꺼내 차승목의 코앞에 들이밀었다.


"여긴 이제 '압류 물건' 보관소야, 차승목 씨."


"압류? 무슨 개소리야!"


황 소장이 또박또박, 마치 판결문을 읽듯 말했다.


"오늘 새벽, 우리 법무팀이 법원에 제출한 소장이야. 죄목이 좀 많네. 주거 침입, 기물 파손, 특수 상해 미수, 영업 방해, 그리고... 산업 스파이 혐의까지."


"사... 산업 스파이?"


"그래. GBI라는 외국 기업과 공모해서 우리 회사의 핵심 기술(김경훈)을 해킹하려 했잖아. 증거는 조 실장이 다 확보해 뒀고. 청구 금액은 도합 50억 원."


"50억?!"

차승목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그의 목소리가 G샵을 넘어 하이 C까지 치솟았다가 삑사리가 났다.


"미쳤어? 내가 50억이 어디 있어!"


"없겠지. 그러니까..."

황 소장이 사무실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가압류 들어가는 거야. 지금부터 이 방에 있는 모든 물건, 그리고 당신 명의로 된 통장, 차, 전세 보증금까지 전부 동결이야. 숟가락 하나도 못 챙겨 나가."



4.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문다. 차승목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것을 깨닫자, 본연의 비열한 본성을 드러냈다.


그는 제단 밑에 숨겨두었던 무언가를 꺼냈다. 낡고 검붉은 기운이 감도는 사람 뼈로 만든 듯한 피리였다.


"이것들이 진짜... 내가 순순히 당할 줄 알아?"


김경훈의 JH 오디오 이어폰에서 날카로운 경고음이 울렸다.

[경고. 미확인 고위험 데이터 감지. 악성 코드 레벨: 트로이 목마.]


"그거 내려놓으시죠. '강령술'을 쓰기엔 당신의 '대역폭(능력)'이 너무 좁습니다."

김경훈이 경고했다.


"닥쳐! 이건 내가 중국에서 밀수해 온 '만파식적'의 짝퉁이야! 이걸 불면 여기 있는 귀신들이 몽땅 폭주한다고! 다 같이 죽자!"


차승목이 피리를 입에 물었다.

피~이익!

찢어지는 듯한 괴음이 울려 퍼졌다.

순간, G샵 사무실 구석구석에 갇혀 있던 하급 영들이 비명을 지르며 튀어나왔다. 검은 연기 같은 형체들이 회오리치며 김경훈 일행을 덮치려 했다.


황 소장이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물리적 공격에는 강하지만, 이런 비현실적인 공포 앞에서는 그녀도 어쩔 수 없는 민간인이었다.


"탱고!"

김경훈이 외쳤다.


하지만 탱고는 움직이지 못했다. 피리 소리가 저승 관리국의 주파수와 충돌하며 탱고의 시스템에 렉을 걸고 있었다.


"흐흐흐! 죽어! 다 죽어!"

차승목이 광기 어린 눈으로 피리를 더 세게 불었다.



5.


김경훈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이 상황을 '영적 전쟁'이 아니라, '시스템 오류 복구' 과정으로 인식했다.


그는 주머니에서 아스텔 앤 컨 플레이어를 꺼냈다. 그리고 볼륨을 최대로 높였다. 하지만 이번엔 음악을 틀지 않았다. 대신, 앰프 출력 단자에 연결된 특수 케이블을 뽑아, 자신의 블레이드(소리굽쇠)에 접촉시켰다.


"아날로그 해킹에는... 아날로그로 답해줘야죠."


김경훈이 블레이드를 차승목을 향해 튕겼다.


피이이이이잉—!!


A-440Hz.

하지만 이번 파동은 평소와 달랐다. 김경훈이 '각성'하며 얻은 '집게'의 힘이 실려 있었다. 그것은 소음을 덮는 것이 아니라, 소음의 근원을 '절단'하는 예리한 메스였다.


김경훈의 파동이 차승목의 피리 소리를 정면으로 뚫고 들어갔다.

공기 중에서 두 파동이 충돌하며 스파크가 튀었다.


쩍!


차승목이 불던 뼈 피리에 금이 갔다.

"어? 어?"


"파동의 '밀도'가 다릅니다. 당신의 소리는 텅 빈 껍데기지만, 제 소리는 '진실'이거든요."


파창!


피리가 산산조각 나며 터져버렸다.

동시에 사무실을 휘감던 검은 연기들이 중심을 잃고 흩어졌다. 폭주하던 귀신들은 구심점을 잃자마자, 김경훈이 뿜어내는 강력한 정화의 파동에 밀려 벽 속으로, 바닥 밑으로 숨어버렸다.


"으아악! 내 피리! 1억 주고 산 건데!"

차승목이 부서진 피리 조각을 붙들고 울부짖었다.


"1억이라..."

황 소장이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다. 그녀는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차갑게 웃었다.


"그것도 장물 취득 혐의 추가네. 밀수품 소지죄도 있고."


그때, 밖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진짜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였다.


"어머, 타이밍도 딱이네. 내가 오면서 신고했거든. 여기 불법 의료 시술이랑 사기 혐의로 수배된 사람이 있다고."


경찰들이 들이닥쳤다. 차승목은 저항할 힘도 없이 수갑을 찼다. 그가 끌려나가며 김경훈을 향해 악을 썼다.


"두고 봐! 내가 나가면 가만 안 둬! GBI한테 다 꼰지를 거야!"


김경훈은 벨루티 구두 끝으로 바닥의 먼지를 털어내며 조용히 말했다.


"GBI요? 그 친구들, 이미 우리랑 '기술 제휴' 맺었습니다. 당신 같은 '바이러스'는 이제 '스팸 처리' 될 겁니다."



6.


차승목이 연행되고, 사무실엔 다시 정적이 흘렀다.

법원 집행관들이 들어와 가구와 집기들에 '빨간딱지'를 붙이기 시작했다. 가짜 불상, 가짜 롤렉스, 심지어 차승목이 아끼던 튜닝한 자동차까지 모조리 압류되었다.


"후우... 속이 다 시원하네."

황 소장이 압류 딱지가 붙은 소파에 걸터앉았다.

"이걸로 50억은 못 받아도, 이 바닥에서 '망치' 놈은 영원히 퇴출이야. 신용불량자에 전과자 됐으니, 이제 부적 한 장도 못 팔아먹을걸."


그녀는 이번 승리가 돈 그 자체보다, '시장의 질서'를 바로잡았다는 사실에 더 만족하는 듯했다. (물론 차승목의 숨겨진 비상금 통장을 찾아내면 더 좋겠지만.)


[팀장님... 여기 이제 안 무서워요.]

탱고가 김경훈의 옆에 섰다. 갇혀 있던 하급 영들이 해방되어 저승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며 꼬리를 흔들었다.


김경훈은 텅 빈 G샵 사무실을 '청진'했다.

역겨운 G샵 삑사리는 사라지고, 텅 빈 공허함만이 남아 있었다.

그것은 '포맷'된 하드디스크의 적막함과 비슷했다.


"가자. 여긴 이제 볼일 없다."


김경훈이 돌아섰다.

그의 로로 피아나 코트 자락이 낡은 상가의 먼지 속에서 우아하게 춤췄다.


차승목의 몰락. 그것은 영적인 승리이자, 완벽한 금융 치료였다.

하지만 김경훈은 알고 있었다.

이것은 '로컬 서버(한국)'의 청소일 뿐.

'글로벌 서버'의 진짜 위협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는 것을.


주머니 속 아이폰이 진동했다.

조 실장이었다.


[팀장님. '금융 치료' 잘 끝났나요? 방금 'GBI' 본사에서 데이터가 넘어왔어요.]

[놈들이... 한국에 '지부'를 설립하겠대요. 협력자는 '조 실장'이 아니라... '4대 석학' 김경훈, 당신을 지명했어요.]


김경훈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오호. '하청'을 주겠다? 재미있군요."



(에피소드 33. The End)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헬프 데스크 Ep.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