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프로익 10년

Laphroaig 10 Years Old

by 김경훈


왕이 사랑한 돌팔이 의사



오늘 만난 인물은 위스키라기보다는 재난에 가깝다.

문을 열고 들어오기도 전에 냄새가 먼저 도착했다.

짙은 소독약 냄새, 불에 타버린 나무 냄새, 그리고 젖은 해초 비린내.

이건 분명 병원 응급실에 화재가 났거나, 누군가 바닷가에서 타이어를 태우고 있는 현장의 냄새다.


자신을 '라프로익'이라 소개한 10살짜리 꼬마는 아일라 섬 출신이다.

'넓은 해변의 아름다운 움푹한 곳'이라는 낭만적인 이름뜻을 가졌다는데, 냄새만 맡아서는 '넓은 병원의 냄새나는 구석'이 더 어울린다.

첫인상부터 코를 찌르는 강렬한 요오드 향 탓에 미간이 절로 찌푸려진다.


그의 무용담은 황당하기 짝이 없다.

미국에서 술을 금지했던 금주법 시대에, 자신은 당당하게 약국에서 '의약품(Medical Spirit)'으로 팔렸다고 자랑한다.

술 냄새가 아니라 약 냄새가 너무 독해서, 단속반원들조차 "이걸 마시고 취할 리가 없다, 이건 약이다"라고 혀를 내둘렀다는 것이다.

결국 합법적인 마약상 노릇을 했다는 소리인데, 이걸 자랑이라고 떠드는 꼴이 영락없는 돌팔이 의사다.


더 기가 막힌 건 인맥 자랑이다.

영국의 찰스 왕세자(현 국왕)가 자신을 너무 사랑해서 직접 증류소까지 찾아왔고, 왕실 보증서(Royal Warrant)까지 하사했다며 가슴에 박힌 문장을 들이민다.

이 지독한 병원 냄새를 왕족이 사랑한다니, 왕실의 취향이 독특한 건지 아니면 이 친구의 허언증이 도진 건지 알 수가 없다.


속는 셈 치고 이 돌팔이의 처방전을 받아 마셔본다.

혀에 닿는 순간, 소금물 젖은 붕대를 씹는 듯한 충격이 전해진다.

"으악!" 비명이 나오려는 찰나, 기묘한 반전이 일어난다.

그 끔찍한 짠맛과 스모키함 뒤로, 놀랍도록 달콤한 바닐라와 과일 맛이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

거친 바다 사나이인 줄 알았는데, 주머니에 사탕을 한 움큼 숨기고 있었다.


목을 넘긴 뒤에도 그는 쉽게 떠나지 않는다.

타다 남은 모닥불의 연기처럼 입안 가득 훈연 향을 피워 올리며 끈질기게 자기 존재를 과시한다.


라프로익 10년.

그는 "나를 사랑하거나, 증오하거나(Love it or hate it)" 둘 중 하나라며 배짱을 부린다.

중간은 없다.

처음엔 도망치고 싶었지만, 이상하게도 돌아서면 그 지독한 소독약 냄새 속에 숨겨진 달콤함이 자꾸 생각난다.

왕세자가 왜 이 괴짜 의사에게 홀렸는지,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은 위험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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