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우드 침향, 상처가 빚어낸 가장 고귀한 향

by 김경훈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기 시작했을 때, 가장 큰 스트레스 중 하나는 말투에 밴 경상도 사투리였다.

표준어를 쓰는 동기들 사이에서 억센 억양은 주눅이 들게 하는 꼬리표 같았다.

그 ‘촌스러움’을 지우기 위해 필사적으로 말투를 교정하려 애썼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런데 몇 해 전, 한 지역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그토록 숨기고 싶었던 사투리는 예상치 못한 자산이 되었다.

현장의 어르신들은 낯선 서울말 대신 구수한 사투리를 쓰는 연구자에게 훨씬 더 쉽게 마음을 열어주셨고, 덕분에 다른 이들은 듣지 못했던 깊은 이야기를 채록할 수 있었다.

부끄러운 상처라고만 여겼던 것이 가장 강력한 소통의 무기가 된 순간이었다.


이 부끄러웠던 사투리의 역사는 나무의 상처가 만들어내는 가장 고귀한 향, ‘오우드(Oud)’의 본질과 맞닿아 있다.

침향(沈香)이라고도 불리는 오우드는 동양과 중동에서 수천 년간 최고의 향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그 향은 건강한 나무에서는 결코 나지 않는다.

침향나무가 곰팡이나 세균에 감염되었을 때, 나무가 스스로를 보호하고 치유하기 위해 분비하는 상처의 진물, 즉 수지(樹脂)가 바로 오우드이다.

이 병원성(Pathogenesis) 과정 없이는 침향나무는 그저 평범한 나무에 불과하다.

가장 깊은 상처와 질병이 역설적으로 가장 고귀한 가치를 탄생시키는 것이다.


수천 년간 동양의 왕과 귀족, 종교의식의 전유물이던 이 향은 2000년대에 들어서야 서양 향수계에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이는 규제로 인해 기존의 향 고정제들을 쓸 수 없게 된 서양 향수 업계가 새로운 대안을 찾던 중, 오우드의 강력한 지속력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급성장하는 중동의 럭셔리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기도 했다.

이처럼 오우드의 서양행은 세계화(Globalization)의 물결 속에서, 규제와 자본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일어난 현상이다.


하지만 폭발적인 수요는 곧바로 자원의 고갈로 이어졌다.

야생 침향나무는 무분별한 벌채로 멸종 위기에 처했고, 결국 CITES(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종의 국제 거래에 관한 협약)에 의해 국제 거래가 엄격히 통제된다.

자연이 수백 년에 걸쳐 우연히 빚어내던 상처의 향기는 이제 거의 사라졌다.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플랜테이션 농장에서 인위적으로 감염시켜 키운 침향나무와, 실험실에서 탄생한 정교한 합성 향료이다.


흥미로운 지점은 바로 여기다.

이제 조향사들은 기술을 통해 과거 특정 지역의 야생 오우드가 가졌던 고유의 향을 ‘재현’해낸다.

예를 들어, ‘인도식 오우드’는 마구간의 거름 냄새 같은 강렬한 동물적 향과 가죽 향을, ‘캄보디아식 오우드’는 달콤한 과일과 꿀의 향을 특징으로 한다.

이는 일종의 ‘만들어진 전통(Invented Tradition)’이다.

사라진 원본의 기억을 더듬어, 기술로 그 유령을 불러내는 것.

우리는 이제 자연 그 자체가 아닌, 자연에 대한 정교한 시뮬레이션을 소비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인도식 오우드의 ‘거름 냄새’가 어떻게 아름다운 향이 될 수 있는지 의아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후각은 지극히 맥락적인 감각이다.

소리와 촉각, 향기로 세상을 재구성해야 할 때, 단일 감각 정보의 ‘좋고 나쁨’은 무의미해진다.

중요한 것은 다른 요소와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전체적인 ‘구조’와 ‘조화’이다.

거름의 쿰쿰함은 가죽과 스모키 한 향을 만나 고상함으로 변모하고, 물파스 같은 싸한 향(보르네오식)은 바닐라의 부드러움을 만나 청량한 깊이가 된다.

이는 곧바로 불쾌하게 느껴지는 감각 속에서 숨겨진 질서와 아름다움을 발견해 내는 고도의 감각적 훈련이기도 하다.


오우드는 하나의 향에 담긴 복합적인 세계를 보여준다.

자연의 상처가 빚어낸 경이 인간의 욕망이 초래한 생태학적 비극, 잃어버린 과거를 기술로 복원하려는 현대 자본주의의 초상.

그 모든 것이 이 깊고 어두운 향기 속에 응축되어 있다.

상처를 끌어안고 자신만의 고유한 향을 만들어낸 침향나무처럼, 어쩌면 우리 역시 부끄러운 상처라 여겼던 것들을 통해 비로소 가장 깊고 진실한 자기 자신을 완성해 가는지도 모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샌달우드 백단향, 사라진 향기를 찾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