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한 연구 프로젝트에서 치명적인 오류 데이터를 발견한 적이 있다.
몇 달간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그 데이터는 전체 가설을 뒤엎는 엉뚱한 값이었고, 동료들은 ‘오염된 샘플’이라며 폐기하길 권했다.
하지만 차마 버리지 못하고 ‘실패의 기록’이라는 이름으로 폴더 깊숙한 곳에 묵혀두었다.
그리고 긴 시간이 흐른 뒤, 우연히 그 파일을 다시 열어보게 되었다.
놀랍게도 그 ‘오류’는 오류가 아니었다.
그것은 기존의 이론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새로운 현상의 첫 신호, 즉 실패가 아닌 발견의 씨앗이었던 것이다.
폐기 직전의 데이터 덩어리가 가장 가치 있는 보물이 된 그 순간의 전율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이 쓸모없어 보이던 데이터의 역전극은 바다의 로또라 불리는 ‘앰버그리스(Ambergris)’의 탄생 서사와 놀랍도록 닮아 있다.
동양에서는 그 기원을 몰라 ‘용의 침이 굳은 것’이라는 뜻의 ‘용연향(龍涎香)’이라 부르며 신비화했다.
서양에서는 흑사병이 돌 때 이 향을 지니고 다니면 더러운 공기를 정화해 병을 막아준다고 믿었는데, 이는 질병이 나쁜 공기로 전파된다는 중세의 ‘독기설(Miasma Theory)’에 기반한 믿음이었다.
이처럼 신화와 미신에 싸여 있던 앰버그리스의 실체는 용의 침이 아닌 향유고래의 고통스러운 병리학적(pathological) 분비물이다.
향유고래가 먹이인 대왕오징어를 삼키면, 소화되지 않는 오징어의 날카로운 부리가 장에 상처를 낼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 고래의 몸은 특별한 물질을 분비해 이 날카로운 이물질을 감싸 둥글게 만드는데, 이것이 바로 앰버그리스의 시작이다.
대부분 배출되지만, 간혹 너무 커져 장을 막으면 고래는 죽음에 이른다.
이 고통의 결정체는 고래의 사체에서 떨어져 나와 수십 년간 망망대해를 떠다닌다.
강렬한 분변 냄새를 풍기던 검고 끈적한 덩어리는 오랜 시간 파도에 씻기고 햇볕에 구워지는 승화(Sublimation)의 과정을 거치며 점차 가벼운 회백색의 돌멩이로 변모한다.
그 지독했던 악취는 사라지고, 바다의 짠 내음과 부드러운 흙냄새, 은은한 꽃향기와 동물적인 온기가 뒤섞인,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신비로운 향기를 품게 되는 것이다.
고통으로 잉태되어 시간으로 숙성된 이 향기는 조향사들에게 마법과도 같은 재료였다.
겔랑의 3대 조향사 자크 겔랑의 말처럼, 앰버그리스 자체는 거의 향이 없는 듯 느껴지지만, 향수에 들어가면 제멋대로인 각각의 향들을 부드럽게 감싸 하나로 묶어주고 전체적인 구조를 안정시키는 놀라운 역할을 한다.
이는 마치 실패한 데이터가 전체 연구의 방향을 잡아주는 결정적 통찰이 되는 것과 같다.
하지만 오늘날, 천연 앰버그리스는 ‘떠다니는 금’이라 불릴 만큼 희귀하고 비싸며, 향유고래 보호를 위해 거래가 금지된 곳이 많다.
그 로맨틱한 서사는 박물관에 남고, 현실의 조향사들은 그 자리를 완벽한 대체재로 채웠다.
1950년에 발명된 합성향료 ‘앰브록 산(Ambroxan)’이 바로 그것이다.
이제 우리가 ‘앰버그리스 향’이라고 인식하는 대부분의 향은 사실 앰브록산의 향이다.
이는 원본(앰버그리스)을 모방한 미메시스(Mimesis)의 산물이 이제는 원본의 자리를 차지하고 스스로 현실이 되어버린 시뮬라크르(Simulacrum)의 세계를 보여준다.
앰버그리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두 가지 상반된 진실을 속삭인다.
하나는 가장 위대한 가치는 때로 가장 깊은 상처와 고통 속에서 태어난다는 것.
실패하고 버려진 것들이 시간의 연금술을 거쳐 누구도 예상치 못한 보물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의 서사이다.
다른 하나는 그토록 갈망하던 신비로운 원본의 시대는 저물고, 우리는 이제 그 본질을 완벽하게 재현한 아름답고 효율적인 복제품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현실이다.
고래의 고통이 빚어낸 자연의 경이와, 인간의 지성이 만들어낸 과학의 승리.
그 사이의 어디쯤에서, 우리는 오늘도 보이지 않는 향기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사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