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로 지은 세상의 신전
'직각삼각형의 빗변 제곱은 나머지 두 변 제곱의 합과 같다.'
학교에서 배운 이 간결한 수학 정리가 사실은 기원전 6세기 초에 살았던 한 인물의 거대한 사상 체계의 작은 입구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놀랍다. 피타고라스는 단순한 수학자가 아니었다. 그의 부모는 아폴론 신전 여사제로부터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에게 유용한 아들"이 태어날 것이라는 예언을 들었다.
그의 삶은 이 예언을 충족시키기 위한 끊임없는 '지식 투어리즘'이었다.
올림픽에 참가했던 스포츠맨. 밀레투스의 탈레스 밑에서 수학을 배웠고, 이집트 멤피스 사제들에게서 기하학과 신비 사상을 배웠다. 심지어 페르시아인들에게 바빌론으로 끌려가 10여 년을 보내며 동방의 지식까지 섭렵했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자면, 그는 이미 기원전에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인문학, 과학, 종교를 통합한 '초고도 스펙'의 구도자였던 것이다.
크로토네에 세운 피타고라스의 학교는 오늘날의 교육 시스템에 던지는 묵직한 질문이다.
교육은 네 단계로 이루어졌는데, 그 첫 번째 단계인 '준비' 과정에서 초심자들은 2년에서 5년 동안 침묵을 지켜야 했다. 말 대신 오직 가르침을 들음으로써 직관력을 기르는 방식이다.
이 디지털 시대, 하루 종일 소음과 데이터에 노출된 현대인들에게 5년간의 침묵은 가장 혁신적인 교육 방식일지도 모른다.
침묵의 단계를 통과하면 '진화' 단계에서 수(數)와 음악을 배웠다. 여기서 피타고라스의 핵심 철학이 드러난다.
"진화는 생명의 법칙이다."
"수는 우주의 법칙이다."
"통일은 신의 법칙이다."
그에게 수는 단순한 계산 도구가 아니었다. 우주를 지탱하는 질서이자, 신의 의도가 투영된 건축 재료였다. 음악은 수의 조합으로 간주되었는데, 이는 우주 전체가 조화로운 음계처럼 완벽하게 배열되어 있다는 '우주의 음악(Music of the Spheres)'이라는 개념으로 확장된다. 보이지 않는 현(絃)이 온 세상을 조율하고 있는 것이다.
피타고라스의 '완성' 단계에서 가르친 우주 이론은 당시로서는 혁명적이었다. 그는 이미 행성들이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지구를 우주의 중심에 두었던 시기에 나온 이 관점은 약 2천 년 후 코페르니쿠스에 의해 재발견될 지동설의 맹아였다.
생물학적 관점 역시 놀랍다. "동물은 인간의 친척이며 인간은 신의 친척이다." 그리고 생명체들의 변형이 대지에 의한 선택과 박해로 이루어진다고 주장했다. 이는 2천 년 후 다윈의 자연선택 이론을 예고하는 듯한 통찰이다. 보이지 않는 힘(우주의 법칙)과 이해 가능한 원칙(자연선택)의 복합적인 작용으로 진화가 이루어진다는 그의 주장은 오늘날의 생물학자들에게도 영감을 줄 만한 통합적 사고다.
마지막 '에피파니아' 단계는 '위에서 내려다본 전체적 진리'를 깨닫는 경지다. 지적 진리, 영혼의 현덕함, 육체의 순수함이라는 세 가지 완성이 요구되었다.
피타고라스 학파는 이처럼 고도의 지성과 윤리적 수양을 바탕으로 공공 활동에 참여했다. 하지만 그들의 집단적 완벽함은 외부의 시기심과 맞닥뜨렸다. 이웃 도시와의 전쟁에서 승리했음에도, 낙방한 학생의 앙심과 거짓 소문에 휘말려 학교는 습격당하고 불타버린다. 피타고라스와 제자 38명은 살해당한다.
'수(數)'로 완벽한 세상을 만들려 했던 그의 꿈은 결국 인간의 가장 비이성적이고 추악한 감정인 '시기와 질투'에 의해 파괴된 것이다. 지성과 미덕의 덧셈은 감정의 뺄셈 앞에서 허무하게 무너졌다.
피타고라스는 죽었으나, 그의 사상은 소크라테스에게 이어지며 서양 철학의 뿌리가 되었다. 그는 '너 자신을 알라, 그러면 하늘과 신들을 알게 될 것이다'라는 델포이의 금언을 가르쳤다.
오늘날, 시각장애인 연구자에게도 '진리를 발견하는 눈'은 가장 중요한 무기다. 눈으로 볼 수 있는 현상 이면에 숨겨진 수(數)의 법칙과 진화의 질서를 이해하는 직관력. 육체의 순수함(검소함)과 지적 완성(칸트 철학)을 추구하는 파트너 보보와의 관계에서도, 이 피타고라스적 통일의 법칙은 여전히 유효하다.
혼돈 속에서 조화(Cosmos)를 발견하는 것. 그것이 바로 피타고라스가 숫자로 지으려 했던 영원한 신전의 아키텍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