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성당과 '스드메' 없는 준비
내년 4월, 우리의 결혼식이 열릴 장소는 대구의 유서 깊은 계산성당이다.
고풍스러운 붉은 벽돌과 스테인드글라스 사이로 들어올 봄 햇살을 상상하면 벌써 마음이 차분해진다.
성당이라는 공간이 주는 경건함 덕분인지, 우리는 결혼 준비 과정에서도 허례허식보다는 우리만의 의미를 채우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가장 큰 결심은 보보의 '노(No) 스드메' 선언이었다.
보통 결혼 준비의 필수 공식처럼 여겨지는 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 패키지를 우리는 과감히 생략하기로 했다.
보보는 단 하루를 위해 빌려 입고 반납하는 화려한 드레스 대신, 직접 발품을 팔아 드레스를 고르고 있다.
결혼식이 끝난 뒤에도 격식 있는 자리에 초대받거나 우리가 기념하고 싶은 날, 다시 꺼내 입을 수 있는 옷을 찾겠다는 보보의 생각이 참 실용적이면서도 멋지게 다가왔다.
옷장 속에 박제된 추억이 아니라, 우리 삶과 함께 나이 들어갈 옷을 고르는 셈이다.
사진(스튜디오)은 고마운 인연이 채워주기로 했다.
대기업에 다니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내가 정말 아끼는 동생 영준이가 기꺼이 카메라를 들고 와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5년 전부터 영준이는 입버릇처럼 말했었다.
바쁜 와중에도 형의 결혼을 위해 시간을 내어주는 그 마음이 어떤 전문가의 사진보다 더 따뜻하고 값지게 느껴진다.
메이크업 또한 낯선 청담동 스타일이 아니다.
성당 근처, 우리가 평소 자주 들르던 샵의 원장님께 맡기기로 했다.
우리 얼굴을 가장 잘 아는 분이니, 가장 자연스럽고 우리다운 모습을 끌어내 주시리라 믿는다.
화려한 패키지는 없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의 손길과 우리의 고민이 묻어나는 결혼식.
연구실에서 논문을 쓰며 늘 '본질'을 탐구하려 노력하는데, 결혼 준비야말로 그 본질에 가장 충실한 프로젝트가 되어가는 것 같아 뿌듯하다.
계산성당의 종소리가 울릴 그날, 우리는 가장 우리다운 모습으로 서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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