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서버는 어둠이었다

카오스에서 온톨로지까지

by 김경훈


그리스인들은 태초에 카오스(Chaos)가 있었다고 말한다. 모양도, 소리도, 빛도 없는 무한한 상태. 사람들은 이를 '공허'나 '혼란'으로 번역하지만, 정보학적 관점에서 카오스는 '비정형 데이터(Unstructured Data)'의 바다다.

아직 분류되지 않았고, 태그(Tag)가 붙지 않았으며, 메타데이터가 정의되지 않았을 뿐, 그 안에는 우주의 모든 가능성이 잠재되어 있다. 이것은 시각장애인인 내가 매일 아침 눈을 뜰 때 마주하는 세계와 닮았다.

나의 시야는 암흑이다. 하지만 그 어둠은 '비어 있는 것(Empty)'이 아니다. 소리, 냄새, 온도가 뒤섞여 있는 거대한 정보의 덩어리다. 정안인들이 빛(시각)을 통해 대상을 즉각적으로 분리(식별)한다면, 나는 이 카오스 속에서 청각과 촉각을 통해 질서를 하나씩 조립해 나간다. 그러므로 카오스는 공포가 아니라, 모든 창조가 시작되는 '초기화(Initialization)' 상태다.



카오스에서 가이아(대지)가 태어나고, 곧이어 에로스(사랑)가 등장한다. 신화는 에로스를 남녀 간의 사랑으로 묘사하지만, 철학적으로 에로스는 '관계 맺음(Connection)'의 원리다.

정보학에서 데이터(Data)가 정보(Information)가 되기 위해서는 개체 간의 '연결'이 필요하다. 가이아라는 '플랫폼' 위에 에로스라는 '링크(Link)'가 생겨나면서 고립되어 있던 존재들은 서로를 인지하고 상호작용하기 시작한다. 에로스는 우주라는 거대한 웹(Web)을 짜기 위해 가장 먼저 인스톨된 '하이퍼링크 프로토콜'인 셈이다.



가이아가 낳은 우라노스(하늘)는 어머니를 덮어버렸다. 하늘과 땅이 빈틈없이 붙어 있는 상태. 이것은 정보학적으로 '과적합(Overfitting)'이자 '노이즈(Noise)'의 상태다. 여백(Space)이 없으면 생명은 숨 쉴 수 없고, 데이터는 유통될 수 없다. 우라노스의 폭정은 곧 '공간의 부재'가 낳은 비극이었다.

크로노스가 낫을 들어 아버지 우라노스의 성기를 자르고 밀어 올린 사건은 단순한 패륜이 아니다. 그것은 하늘과 땅 사이에 '공간(Gap)'을 만든 혁명적 사건이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존재가 드러나기 위해서는 '트임(Lichtung)'이 필요하다고 했다. 크로노스의 낫질로 인해 하늘은 위로, 땅은 아래로 나뉘었다. 이 벌어진 틈 사이로 비로소 시간(크로노스)이 흐르고, 생명이 자라며, 이야기가 기록될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즉, 이 사건은 우주라는 시스템의 '인터페이스(Interface)'가 구축된 순간이다.



크로노스가 휘두른 '낫'은 문헌정보학의 핵심 도구인 '분류(Classification)'를 상징한다.

'결정하다(Decide)'라는 단어의 어원은 '잘라내다(De-caedere)'이다. 정보는 연속된 세계를 끊어내고 구획 짓는 행위에서 발생한다. 이것은 하늘이고, 저것은 땅이라고 가르는 행위. 0과 1을 명확히 구분하는 행위.


시각장애인인 나 역시 매 순간 낫을 휘두른다. 지팡이 끝에 닿는 감각이 '보도블록'인지 '차도'인지를 끊임없이 잘라내어(구분하여) 머릿속 지도를 그린다. 모호함을 견딜 수 없는 정보 처리 과정에서 '자름'은 잔인하지만 필수적인 생존 기술이다. 우라노스의 고통은 질서가 탄생하기 위해 치러야 했던 엔트로피의 비용(Cost)이었다.



우라노스는 물러가며 "너도 자식에게 당할 것"이라는 저주를 남겼다. 이것은 신화적 비극이자, 동시에 '패러다임의 전환(Paradigm Shift)'을 예고하는 법칙이다.

새로운 질서(크로노스)는 언젠가 낡은 것이 되고(우라노스화), 또 다른 혁명(제우스)에 의해 대체된다. 정보의 세계에서도 오늘의 최신 이론은 내일의 고전이 되어 서가 구석으로 밀려난다.


정보학자인 나는 이 거대한 순환을 기록하고 보존하는 사관(史官)이다.

우리는 카오스에서 태어나, 에로스로 연결되고, 크로노스의 낫으로 구획된 세상에서 산다.

눈이 보이지 않는 나는 때로 저 캄캄한 카오스가 그립기도 하다. 그곳은 아직 하늘과 땅이 나뉘지 않아, 내가 굳이 애써 구분하지 않아도 모든 것이 하나였던 평온한 모태의 공간이었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낫을 든다. 살기 위해, 알기 위해, 그리고 나만의 우주를 짓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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