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의 알고리즘

흰 지팡이는 먼저 배신하지 않는다

by 김경훈


1979년, 로버트 액설로드의 컴퓨터 토너먼트에서 우승한 프로그램은 가장 복잡하고 교활한 코드가 아니었다. 단 네 줄의 코드로 이루어진 래퍼포트 교수의 '팃포탯(Tit for Tat)'이었다.

알고리즘은 단순하다.


1. 무조건 먼저 협동(Cooperation)한다.

2. 상대가 배신하면 즉시 응징(Reciprocity)한다.

3. 상대가 뉘우치면 즉시 용서(Forgiveness)하고 다시 협동한다.

이것은 도덕 교과서가 아니라, 냉혹한 컴퓨터 시뮬레이션의 결과다. 가장 이기적인 생존을 원한다면, 역설적이게도 가장 신사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것. 경제학에서는 이를 '계몽된 이기심(Enlightened Self-Interest)'이라 부른다. 나는 이 알고리즘이 시각장애인인 내가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과 소름 끼치도록 닮아 있음을 발견한다.



시각장애인이 집 밖을 나서는 순간, 우리는 세상에 거대한 '협동'을 제안한다. 내가 짚는 흰 지팡이는 단순한 보행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타인에게 보내는 신호(Signal)다.

"나는 당신을 공격할 의사가 없으며, 당신의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나를 배려해 주십시오."

정보 비대칭 상황에서 나는 언제나 '약자'다. 내가 먼저 세상을 의심하고 적대적으로 대한다면(배신), 나는 문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다. 따라서 나의 기본값(Default Setting)은 언제나 '신뢰'와 '협동'이다. 나는 버스 기사가 정류장에 정확히 서줄 것이라고 믿고, 행인이 나를 치고 가지 않을 것이라 믿으며 지팡이를 내민다. 이것은 내가 착해서가 아니다. 그것이 내 생존에 가장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은 항상 친절하지 않다. 누군가는 지팡이를 발로 차고, 키오스크는 음성 지원을 제공하지 않으며, 점자 블록 위에는 불법 주정차 차량이 막고 서 있다. 이것은 명백한 사회의 '배신'이다.

이때 팃포탯 전략은 '응징'을 요구한다. 여기서 응징은 폭력이 아니다. 그것은 '정확한 피드백(Feedback)'이다. 접근성이 갖춰지지 않은 웹사이트에 민원을 넣고, 장애인 차별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 이것은 투정이 아니라, 게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상호성의 원칙이다.

내가 침묵하면(배신을 용인하면), 상대방(사회)은 계속해서 배신하는 전략이 이익이라고 착각하게 된다. 따라서 나의 '까칠한' 컴플레인은 사회가 올바른 협동의 길로 돌아오게 만드는 필수적인 교정 데이터다.



팃포탯의 위대함은 '응징'이 아니라 그 뒤에 오는 '용서'에 있다. 상대가 협동으로 돌아서면, 즉시 과거를 잊고 다시 협동해야 한다.

장애인으로 살다 보면 마음에 생채기가 나는 일이 잦다. 택시 승차 거부를 당하거나, 무례한 질문을 받을 때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하지만 그 분노를 계속 품고 있으면(용서하지 않으면), 손해를 보는 것은 결국 나다.

분노는 내 메모리(RAM)를 잡아먹는 악성 프로세스다. 다음 사람을 만날 때, 이전 사람에게 받은 상처 때문에 방어적으로 대한다면, 나는 새로운 협동의 기회를 날려버리게 된다.

그래서 나는 매일 밤 '용서' 버튼을 누른다. 그것은 상대를 위한 자비가 아니라, 내일 다시 지팡이를 짚고 나가야 하는 나 자신을 위한 '시스템 리셋(System Reset)'이다. 로그 파일을 비워야 새로운 데이터가 들어오기 때문이다.



도서관 시스템 역시 이 거대한 팃포탯의 원리로 돌아간다. '상호 대차(Interlibrary Loan)'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내 도서관에 없는 책을 다른 도서관에서 빌려오는 이 시스템은 모든 도서관이 서로를 믿고 자원을 공유(협동)할 때만 작동한다. 책을 먹튀(배신)하는 도서관은 네트워크에서 퇴출당한다.

우리는 모두 거대한 네트워크의 노드(Node)다. 혼자서 모든 점수를 독식하려는 프로그램은 결국 고립되어 소멸했다.

승리한 것은 똑똑한 독재자가 아니라, 먼저 손을 내밀고, 뺨을 맞으면 화를 내되, 사과하면 쿨하게 털어버리는 '상식적인 이웃'이었다.


나는 오늘도 흰 지팡이를 툭, 하고 던지며 세상에 첫 번째 코드를 입력한다.

`Print("안녕하세요, 협동합시다.");`

이제 세상이 응답할 차례다. 나는 당신이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아니, 배신하더라도 결국은 다시 협동하러 돌아올 것임을, 나는 데이터로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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