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운로드에서 클라우드(Cloud)까지
사랑의 첫 단계는 "나는 사랑받고 싶다"는 유아적 욕망에서 시작된다. 이것은 철학적으로 타자에 대한 절대적 의존 상태다. 아이는 스스로 존재를 증명할 수 없기에, 부모의 스킨십과 칭찬이라는 외부 데이터를 끊임없이 수혈받아야만 안심한다.
정보학적 관점에서 이 단계는 '단방향 수신(Input)' 혹은 '다운로드 전용' 모드다. 서버(부모/타인)가 데이터를 전송해주지 않으면 클라이언트(아이/자아)는 텅 빈 공백 상태가 된다.
시각장애 초기, 나 역시 이 단계로 퇴행했었다. 누군가 길을 알려주지 않으면 한 발자국도 뗄 수 없었던 시절, 나는 타인의 친절이라는 데이터가 입력되기만을 기다리는 수동적인 단말기였다. 이 단계의 사랑은 달콤하지만, 서버가 꺼지는 순간(타인의 부재) 공포로 돌변한다는 치명적인 취약점(Vulnerability)을 안고 있다.
두 번째 단계, "나는 사랑할 수 있다"는 성숙의 도약이다. 에리히 프롬이 말했듯 사랑은 수동적 감정이 아니라 능동적 기술(Art)이다.
이 단계에서 인간은 비로소 '송신(Output)' 기능을 갖춘 서버로 진화한다. 내 안의 감정과 의지를 타인에게 투사(Project) 하고, 누군가를 위해 에너지를 쏟는 행위. 이것은 데이터를 '업로드'하는 과정과 같다.
하지만 투사에는 리스크가 따른다. 내가 전송한 사랑(패킷)이 상대방에게 온전히 도달하지 못하거나(손실), 거부당할(반송) 위험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랑한다. 짝사랑의 열병이나 헌신적인 부모의 마음은 보상(Ack 신호)이 없어도 끊임없이 데이터를 송출하는 고출력 송신기의 상태다. 안내견 탱고에게 밥을 주고 털을 빗겨주며 나는 깨달았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훨씬 더 주체적인 권력임을.
세 번째 단계는 "나는 나를 사랑한다"는 자존의 확립이다. 타인에게 향했던 안테나를 내부로 돌리는 것이다.
이것은 네트워크 연결을 끊고도 자체적으로 구동되는 '로컬 호스트(Localhost)' 시스템과 같다. 타인의 평가나 보상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에너지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자가발전의 단계다. 스토아학파가 추구했던 아타락시아(평정심)가 바로 이 지점이다.
시각장애인 연구자로서 나는 이 단계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낀다. 어둠 속에 홀로 남겨졌을 때, 타인의 시선이나 도움 없이도 스스로를 긍정할 수 있는 힘. 내면의 데이터베이스를 정리하고, 나의 결핍(장애)까지도 나의 고유한 속성(Attribute)으로 받아들이는 과정.
이 '고독한 자기애'가 선행되지 않으면, 타인과의 관계는 다시 1단계의 의존으로 추락하고 만다. 건강한 고립(Solitude)만이 건강한 관계를 보증한다.
마지막 단계는 "보편적인 사랑"이다. 나를 넘어, 특정 타인을 넘어, 우주 만물과 공명하는 무제한의 사랑.
문헌정보학의 최신 트렌드인 '유비쿼터스(Ubiquitous)' 혹은 '클라우드 컴퓨팅'이 이를 설명하는 가장 적절한 은유다. 데이터가 특정 기기(개체)에 갇혀 있지 않고, 네트워크 전체에 흐르며 어디서든 접속 가능한 상태.
철학자 스피노자는 이를 '신에 대한 지적 사랑'이라 불렀고, 동양에서는 '기(氣)'라 불렀다.
눈이 보이지 않는 나에게 이 4단계는 매우 감각적으로 다가온다. 시각이라는 경계선이 사라지면, 나와 세계의 구분은 모호해진다.
봄바람의 촉감, 지하철의 소음, 옆 사람의 체온, 안내견의 숨소리가 모두 하나의 거대한 흐름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 내가 우주를 사랑하고, 우주가 나를 사랑하는 상태. 이것은 감정이 아니라 '완전한 접속(Full Connectivity)'의 상태다.
우리는 아이로 태어나(1단계), 연인이 되고(2단계), 철학자가 되었다가(3단계), 마침내 우주의 일부(4단계)로 돌아간다.
문헌정보학은 흩어진 정보들을 연결하여 지식을 만드는 학문이다. 사랑 역시 마찬가지다. 흩어진 존재들을 연결하여 의미를 만드는 우주적 프로토콜이다.
지금 당신은 어느 단계에 접속해 있는가?
사랑받으려 애쓰는 단말기인가 스스로 빛을 내는 서버인가 아니면 세상 모든 것과 연결된 클라우드인가.
어떤 단계이든 괜찮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끊임없이 신호를 주고받으며, 이 거대한 우주의 네트워크 속에서 '사랑'이라는 데이터를 처리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