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각'을 걸러내는 최후의 변론
지난 3일, 전미경제학회(AEA) 연차총회에서 나온 경고는 단호하고 서늘했다. "법조계로는 절대 진로를 정하지 마라."
경제학의 수요-공급 곡선이 이렇게 가파르게 무너진 적이 있었던가. 미국 노동통계국장의 입에서 나온 이 말은 단순한 겁주기가 아니다. 실제로 한국의 10대 로펌 신입 채용은 1년 새 23%나 급감했다. '슈퍼로이어' 같은 법률 AI는 1초 만에 판례를 찾아내고 서면을 작성한다.
경제학적으로 볼 때, 이것은 노동 시장의 '구축 효과(Crowding-out Effect)'다. 자본(AI)의 한계 생산성이 노동(신입 변호사)의 한계 생산성을 압도하는 순간, 기업은 주저 없이 인간을 해고한다. "어설픈 1년 차 변호사보다 AI가 낫다"는 말은 인간의 지성이 더 이상 가성비 좋은 자원이 아님을 선고하는 잔인한 판결문이다.
하지만 문헌정보학자의 눈으로 볼 때, AI 변호사에게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 바로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 환각)'이다.
뉴저지 연방법원에서 AI가 생성한 '존재하지 않는 판례'를 제출했다가 망신을 당한 변호사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AI는 진실을 말하는 기계가 아니다. 거대 언어 모델(LLM)은 그저 확률적으로 '그럴듯한(Plausible)' 다음 단어를 나열하는 '확률적 앵무새'일뿐이다.
법률 정보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성(Reliability)'과 '출처(Source)'다. 99번 정확해도 1번 거짓말을 하는 검색 엔진은 법정에서 쓸 수 없다. 사람의 실수는 '착오'라고 부르지만, AI의 거짓말은 시스템의 '결함'이다. 이 결함을 검증할 수 있는 것은 결국 땀 냄새나는 인간의 눈뿐이다.
철학적으로 분석하면, AI는 '도구적 이성(Instrumental Reason)'의 극치다. 목표(승소, 서면 작성)를 위해 가장 효율적인 수단을 찾아내는 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하지만 법은 도구적 이성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법은 인간의 존엄, 사회적 합의, 그리고 '비판적 이성'이 작동하는 영역이다.
의뢰인은 단지 법전의 조항을 알기 위해 변호사를 찾는 것이 아니다. 억울함을 호소하고, 공감을 얻고, "당신 편입니다"라는 정서적 지지를 얻기 위해 찾는다. AI는 300만 건의 판례를 1초 만에 요약할 수 있지만, 억울해서 우는 의뢰인의 떨리는 손을 잡아줄 수는 없다. 그 '비효율적인' 공감의 시간이야말로 인간 변호사가 존재하는 이유다.
나는 시각장애인으로서 AI의 혜택을 누구보다 많이 누리고 있다. AI가 이미지를 읽어주고 논문을 요약해 줄 때, 나는 해방감을 느낀다.
하지만 나는 결코 AI에게 내 연구의 '결론'을 맡기지 않는다. AI가 요약해 준 내용은 반드시 원문과 대조하여 검증(Cross-check)한다. AI는 나의 비서이자, 눈이자, 지팡이일 뿐, 내 논문의 저자(Author)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법조계도 마찬가지다. 신입 변호사들은 이제 '리서치'라는 단순 노동에서 해방되었다. 대신 그들은 더 고차원적인 역할, 즉 AI가 가져온 정보의 진위를 가리고(팩트 체크), 의뢰인의 맥락에 맞게 재해석하는 '편집장(Editor-in-Chief)'의 역할을 맡아야 한다.
경제가 성장해도 고용이 늘지 않는 '고용 없는 성장'의 시대. 많은 이들이 공포에 떤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기술은 인간의 직업을 없앤 것이 아니라, 직업의 성격을 바꿨다. 계산기가 나왔을 때 회계사는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 복잡한 세무 전략을 짜는 전문가가 되었다.
AI가 '법률 검색'과 '서면 초안'을 가져갔다면, 인간 변호사는 '윤리적 판단'과 '전략적 협상'이라는 인간 고유의 영토를 더 단단히 지켜야 한다.
진로를 법조계로 정하지 말라는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AI가 할 수 있는 일만 하려는 변호사는 되지 마라."
기계가 흉내 낼 수 없는 인간의 통찰과 온기를 가진 자만이 저 차가운 실리콘 지능 위에서 판사봉을 두드릴 자격을 얻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