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이의 십진법과 세헤라자드의 이야기

도서관은 숫자로 지은 미로다

by 김경훈


프랑스어의 '콩트(Conte, 이야기)'와 '콩트(Compte, 셈)'가 같은 어원을 가진다는 사실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영어의 'Count(세다)'와 'Recount(상세히 말하다)' 역시 마찬가지다. 고대 인류에게 사물을 '센다'는 행위는 곧 그것의 존재를 '기록(서사)'하는 행위와 동의어였다.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를 토판에 새기는 것이 곧 회계장부이자, 그날의 목축 일지(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정보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이 어원적 일치는 '데이터(Data, 숫자)'와 '정보(Information, 이야기)'의 불가분성을 시사한다. 우리는 흔히 이공계적 숫자와 인문계적 서사를 대립적인 것으로 보지만, 사실 숫자는 가장 압축된 형태의 이야기이며, 이야기는 가장 풍성하게 풀어진 숫자다.



도서관은 이 '숫자와 문자의 결합'이 가장 극적으로 일어나는 공간이다.

사서(Librarian)는 세상의 모든 이야기(지식)를 수집한 뒤, 그것을 '분류 기호(Classification Number)'라는 숫자로 변환한다. 멜빌 듀이가 창시한 DDC(듀이십진분류법)를 보라.

'800'이라는 숫자는 단순한 아라비아 숫자가 아니다. 그 안에는 셰익스피어의 비극과 윤동주의 시, 그리고 톨스토이의 대서사시가 모두 압축되어 있다. 문헌정보학은 결국 '문자'라는 혼돈(Chaos)을 '숫자'라는 질서(Cosmos)로 치환하여 서가에 배열하는 학문이다.

이 과정에서 사서는 '셈하는 자(Classifier)'인 동시에 '이야기하는 자(Bibliographer)'가 된다. 이용자가 "사랑에 관한 소설을 찾아요"라고 이야기(문자)로 물으면, 사서는 "813.54 서가로 가세요"라고 셈(숫자)으로 답한다. 이것은 완벽한 통역이자, 어원의 본질적 회귀다.



현대의 정보학으로 넘어오면 이 결합은 더욱 노골적이다.

우리가 화면으로 보는 화려한 영상과 감동적인 텍스트는 그 기저(Back-end)에서 오직 '0과 1'이라는 이진법의 셈(Calculation)으로 존재한다. 컴퓨터는 끊임없이 전자를 세고(Count) 있지만, 인간은 그것을 이야기(Story)로 인식한다.

철학자 피타고라스는 "만물은 수(Number)다"라고 했고, 문학가들은 "태초에 말씀(Logos)이 있었다"라고 했다. 디지털 시대는 이 두 명제가 싸우지 않고 하나로 융합된 시대다. 코딩(Coding)이야말로 숫자로 시를 쓰고, 논리로 서사를 구축하는 현대판 연금술이 아닐까.



시각장애인인 나에게 숫자와 문자의 일치는 더욱 물리적인 감각으로 다가온다.

내가 사용하는 '점자'는 6개의 점으로 이루어진 좌표(Matrix) 시스템이다. 1번 점, 4번 점... 점의 위치와 개수를 파악하는 행위는 기하학적이고 수학적인 '셈'의 영역이다. 하지만 내 손끝이 그 점들의 배열을 스치고 지나가는 순간, 그 차가운 숫자의 조합은 뜨거운 '이야기'로 변환되어 내 뇌로 흘러들어온다.

점자는 숫자이면서 동시에 문자다. 나는 손끝으로 점을 세면서(Counting), 동시에 세상의 이야기를 듣는다(Recounting). 어둠 속에서 나는 매일 이 언어의 기원적 결합을 몸소 체험하는 셈이다.



현대 사회는 데이터를 맹신하는 경향이 있다. 모든 것을 수치화하고, 통계로 증명하려 든다. 반대로 어떤 이들은 숫자를 차가운 것이라 배척하며 인문학적 감성만을 강조한다.

하지만 어원은 말해준다. 셈하는 것과 이야기하는 것은 본래 하나였다고.

문헌정보학자로서 나는 주장한다. 좋은 데이터(숫자)는 그 자체로 강력한 서사를 담고 있어야 하며, 좋은 이야기(문자)는 논리적 정합성(숫자)이라는 뼈대를 갖춰야 한다.


도서관의 청구기호 '800' 속에서 문학이 숨 쉬고, 컴퓨터의 이진법 속에서 가상현실이 펼쳐지듯, 우리의 삶도 '이성적인 계산'과 '감성적인 서사'가 조화롭게 얽힐 때 비로소 온전한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나는 오늘도 연구실에서 통계 데이터(셈)를 분석하며, 그 속에 숨겨진 장애인들의 삶(이야기)을 읽어낸다. 셈과 이야기는 결국 진실을 향해 달리는 두 바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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