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중심 잡기

정보의 항상성과 생존의 감각

by 김경훈


생물학에서 말하는 '항상성(Homeostasis)'은 문헌정보학의 '시스템 이론(System Theory)'과 완벽하게 조응한다. 모든 시스템은 외부의 혼란(Entropy)에 맞서 내부의 질서(Cosmos)를 유지하려 한다. 체온을 36.5도로 유지하려는 신체나, 쏟아지는 신간 도서를 분류 체계 안으로 편입시켜 질서를 잡으려는 도서관이나, 그 본질은 같다.

도서관이 장서를 폐기(Weeding)하고, 분류법을 개정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변화하는 지식 생태계(외부 환경)와 도서관 시스템(내부 환경) 사이의 '평형'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만약 도서관이 이 항상성을 포기한다면, 그곳은 지식의 보고가 아니라 쓰레기 하치장이 되어 사멸할 것이다. 즉, 항상성은 '정지'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동적 튜닝(Dynamic Tuning)'이다.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는 무인도라는 낯선 환경에서 인간이 어떻게 항상성을 회복하는지를 보여주는 정보학적 보고서다. 크루소는 기존의 문명사회에서 쓰던 생존 방식(Input)이 차단되자, 섬에 있는 자원만으로 새로운 생존 프로토콜(Output)을 짠다.

시각장애를 얻은 후의 내 삶도 이와 같았다. '시각'이라는 메인 채널이 끊기자, 나의 뇌는 즉각적으로 비상 모드를 가동했다. 뇌는 시각 처리에 쓰던 막대한 에너지를 청각과 촉각으로 재할당(Reallocation)했다.

사람들은 이것을 "감각이 예민해졌다"고 표현하지만, 정보학적으로는 '입력 장치의 재구성'이다. 나는 소리의 울림으로 공간의 크기를 측정하고, 발바닥의 지면 마찰계수로 길의 상태를 파악한다. 이것은 초능력이 아니다. 결핍된 정보를 다른 감각 데이터로 메워, 내 몸과 세상 사이의 평형을 맞추려는 눈물겨운 항상성의 발현이다.



하지만 이 텍스트에서 가장 섬뜩하면서도 통찰력 있는 부분은 '술꾼의 간'과 '흡연자의 폐'에 관한 대목이다. 세포는 독성 물질(알코올, 니코틴)이 들어오면, 그것을 거부하는 대신 그 독에 '적응'해 버린다. 이를 '병리적 항상성(Pathological Homeostasis)'이라 부를 수 있겠다.

정보 접근성 연구자인 나는 이 병리적 현상을 디지털 세계에서 목격한다. 많은 장애인 사용자들이 접근성이 엉망인 웹사이트나 키오스크를 만났을 때, 시스템을 고쳐달라고 요구하기보다 자신의 몸을 그 불편함에 적응시킨다.

화면 낭독기가 읽지 못하는 버튼의 위치를 통째로 외워버리거나, 비논리적인 메뉴 구조를 억지로 학습한다. 이는 흡연자의 폐가 니코틴에 적응하듯, 인간이 '나쁜 인터페이스'라는 독에 적응하는 것이다.

이것은 슬픈 생존이다. 우리는 생존하기 위해 불편함(독)을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결국 그것이 문제라는 인식조차 무뎌지게 된다.



항상성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다. 하나는 추운 날 몸을 떠는 것처럼 '내부(자신)'를 바꾸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옷을 껴입거나 난로를 켜는 것처럼 '외부(환경)'를 바꾸는 것이다.

진정한 정보 복지는 후자에 있다. 시각장애인이 청각을 극한으로 발달시켜(내부 적응) 위험을 피하는 것은 경이롭지만 고달픈 일이다. 더 나은 방법은 사회가 점자 블록을 깔고, 웹 접근성을 준수하여(외부 환경 개선) 장애인이 굳이 비상 모드를 켜지 않아도 되게 만드는 것이다.

카멜레온이 색을 바꾸는 것은 생존 전략이지만, 인간은 카멜레온과 다르다. 인간은 환경에 수동적으로 맞추는 존재가 아니라, 도구와 기술을 통해 환경을 자신에게 맞게 개조하는 존재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사막과 무인도에서 살아가고 있다. 때로는 전쟁 같은 시련이 닥치고, 때로는 알 수 없는 고통의 독이 스며든다.

우리의 세포와 정신은 그 속에서도 기어이 균형점을 찾아낼 것이다. 그것이 생명의 위대함이다.


하지만 문헌정보학자로서 나는 제안하고 싶다. 우리가 너무 가혹한 환경에만 적응하느라 에너지를 소진하지 않기를. 독에 내성이 생긴 것을 건강함이라 착각하지 않기를.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항상성은, 고통을 견디는 인내력이 아니라, 고통의 원인을 제거하고 가장 편안한 상태에서 세상과 데이터를 주고받는 '자유로운 소통의 평형'이어야 한다.

나는 오늘도 나의 신체(Internal)를 단련하는 동시에, 세상이라는 도서관(External)을 뜯어고치는 연구를 한다. 안과 밖이 모두 건강할 때, 비로소 삶은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잡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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