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티크 플레르 드 뽀

살결에 피어난 꽃? 아니, 땀 흘린 니트의 환각

by 김경훈


1. 향수 설명

‘플레르 드 뽀(Fleur de Peau)’는 ‘피부의 꽃’이라는 뜻을 가진 딥티크의 야심작이다.

고대 그리스 신화 속 프시케와 에로스의 사랑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했다.

출시되자마자 품절 대란을 일으키며 ‘살냄새 향수’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었다고 평가받는다.

하지만 이 ‘살냄새’는 방금 씻고 나온 뽀송한 비누 냄새가 아니라, 사람의 체온이 느껴지는 눅눅하고 묘한, 약간은 야릇한 냄새에 가깝다.



2. 노트 구성


탑 노트 (Top Notes): 알데하이드, 안젤리카, 베르가못, 핑크 페퍼

첫인상은 꽤 충격적이다. 부드러운 살냄새를 기대했다면 오산이다. 톡 쏘는 후추 향이 코를 강하게 찌른다. 마치 먼지 쌓인 오래된 책을 펼쳤을 때 재채기가 나오는 느낌과 비슷하다.


미들 노트 (Middle Notes): 아이리스, 터키쉬 로즈

후추의 매운맛이 사라지면, 파우더리한 아이리스 향이 올라온다. 화장품 분 냄새 같기도 하고, 당근 냄새 같기도 한 이 향이 묘한 ‘옛날 느낌’을 자아낸다.


베이스 노트 (Base Notes): 머스크, 암브레트 시드(Ambrette Seed), 앰버우드

이 향수의 핵심이다. 암브레트 시드는 식물성 머스크로, 실제 사람의 살 냄새와 가장 유사하다고 알려져 있다. 포근하면서도 어딘가 꼬릿한, 땀 냄새 섞인 살결 냄새가 길게 남는다.


3. 전체적인 리뷰

"내 살 냄새야"라고 말하기엔 조금 과감한 거짓말이다.

이건 그냥 살 냄새가 아니라, '하루 종일 두꺼운 니트를 입고 있다가 벗었을 때 나는 체온과 섬유 유연제와 약간의 땀이 섞인 냄새'다.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린다.

누군가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포근한 이불 속 냄새지만, 누군가에게는 할머니 옷장의 좀약 냄새나 후추 뿌린 화장품 냄새로 느껴진다.



후추 뿌린 니트를 입은 연인, 플레르 드 뽀의 끈적한 착각


앞서 만난 ‘프리지아’가 “나 방금 샤워했어”라며 물기를 뚝뚝 흘리는 도도한 아가씨였다면, 오늘 만난 딥티크의 ‘플레르 드 뽀’는 “나 안 씻었는데 냄새 좋지?”라고 묻는 뻔뻔하고 나른한 연인이다.

이름부터 ‘피부의 꽃’이라니, 작정하고 유혹하겠다는 심산이다.

과연 이 친구가 주장하는 살냄새가 향기로운 체취일지, 아니면 그저 씻기 귀찮은 자의 변명일지, 비판적인 코로 그를 껴안아 보았다.


그와의 포옹은 시작부터 당황스럽다.

부드러운 살결이 닿을 줄 알았는데, 난데없이 매운 후추(Pink Pepper) 가루가 코를 찌른다.

이것은 사랑의 스파크가 아니라, 그냥 재채기 유발이다.

에로스와 프시케의 사랑이라더니, 고대 그리스에서는 연인에게 후추를 뿌리는 풍습이라도 있었던 건가.

텁텁하고 매캐한 먼지 냄새가 섞여 있어, 마치 환기 안 된 다락방 문을 갑자기 연 듯한 답답함이 밀려온다.


하지만 이 매운맛을 참고 견디면, 그가 왜 ‘선수’인지 알게 된다.

후추 향이 걷히고 나면, 아이리스의 분 냄새와 암브레트(Ambrette)의 묘한 향기가 뒤섞여 올라온다.

이것은 분명 꽃향기인데, 땅에 피어 있는 꽃이 아니라 사람의 체온으로 데워진 꽃 냄새다.


비판적으로 묘사하자면, 이것은 ‘사람 냄새’를 흉내 낸 고도의 화학적 사기극이다.

깨끗하게 세탁된 옷 냄새가 아니라, 누군가 며칠 동안 입어서 체취가 푹 배어버린 두꺼운 울 니트 냄새다.

약간은 땀 냄새 같기도 하고, 오래된 종이 냄새 같기도 한 꼬릿함이 섞여 있다.

프리지아가 결벽증적인 깨끗함을 주장한다면, 이 친구는 “사람이 좀 땀도 흘리고 그래야지”라며 인간적인 척을 한다.

하지만 그 ‘인간미’조차 너무나 정교하게 계산되어 있어, 오히려 더 인공적으로 느껴진다.


가장 치명적인 점은 이 향수가 주는 ‘착각’이다.

이 향을 맡고 있으면, 왠지 옆에 누군가 있는 것 같은 혹은 누군가 나를 안아주고 있는 것 같은 환각에 빠지게 된다.

외로움을 달래주는 척하지만, 사실은 그 외로움을 증폭시키는 잔인한 친구다.

혼자 있는 방에서 이 향을 맡는 것은 헤어진 연인의 옷을 꺼내 냄새를 맡는 청승맞은 짓과 다를 바가 없다.


최종 결론.

플레르 드 뽀는 ‘나르시시즘’의 향기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향이라기보다, 자기 자신의 살 냄새에 취하고 싶은 사람들이 쓰는 향수다.


감각으로만 느끼면, 눅눅하지만 따뜻한 벨벳 이불 속에 갇혀 있는 기분이 든다.

포근하고 안락하지만, 계속 있으면 숨이 막혀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어진다.

그는 너무 가깝게 다가온다.

허락도 없이 내 피부인 척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집착 강한 애인과의 피곤한 동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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