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세탁기의 하얀 폭력
1. 향수 설명
‘블랑쉬(Blanche)’는 ‘하얀색(White)’이라는 뜻의 프랑스어다.
바이레도의 설립자 벤 고햄이 ‘순수함’과 ‘무구함’에 대한 지각을 향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박서준 향수로 유명하며, 소위 ‘비누 향’, ‘빨래 냄새’ 향수의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은은한 비누가 아니라, 세정력이 아주 강력한 고농축 세제의 향에 가깝다.
2. 노트 구성
탑 노트 (Top Notes): 화이트 로즈, 핑크 페퍼, 알데하이드(Aldehyde)
블랑쉬의 핵심은 알데하이드다. 샴페인의 거품이나 비누 거품을 연상시키는 이 화학 성분이 코를 쨍하게 울린다. ‘깨끗하다’를 넘어 ‘눈이 부시다’는 느낌을 후각적으로 전달한다.
미들 노트 (Middle Notes): 바이올렛, 네롤리, 피오니(작약)
꽃향기가 나지만, 들판의 꽃이 아니다. 세탁 세제나 섬유 유연제 뒷면에 그려진, 그래픽으로 처리된 꽃 그림 같은 향이다. 아주 전형적이고, 인공적이며, 강력한 플로럴 향이다.
베이스 노트 (Base Notes): 블론드 우드, 샌달우드, 머스크
나무 향이 깔리지만 흙냄새는 전혀 없다. 바짝 마른 나무 빨래판이나, 햇볕에 널어놓은 면 티셔츠의 뽀송한 질감만이 남는다.
3. 전체적인 리뷰
"너 오늘 씻었어?"가 아니라 "너 오늘 삶아졌어?"를 묻게 만드는 향수다.
엄청난 확산력과 지속력을 자랑하며, 주변의 모든 잡내를 잡아먹는 ‘후각적 표백제’ 역할을 한다.
깨끗하고 단정한 이미지를 주기에 최고지만, 너무 많이 뿌리면 옆 사람에게 '세제 먹는 고문'을 선사할 수도 있다.
인간 세탁기, 바이레도 블랑쉬의 하얀 폭력
앞서 만난 ‘프리지아’가 쌩얼 메이크업을 한 내숭쟁이였고, ‘플레르 드 뽀’가 안 씻은 척하는 선수였다면, 오늘 만난 바이레도의 ‘블랑쉬’는 타협을 모르는 ‘위생 검열관’이다.
그는 "깨끗한 척? 웃기지 마.
나는 그냥 '깨끗함' 그 자체야!"라고 소리치며 등장한다.
과연 이 친구가 말하는 순수함이 천사의 순수함일지, 아니면 결벽증 환자의 강박일지, 방독면을 쓰는 심정으로 그를 마주했다.
그와의 만남은 흡사 거대한 세탁기 속에 갇혀서 고속 회전을 당하는 기분이다.
뚜껑을 열자마자 알데하이드(Aldehyde) 폭탄이 터진다.
이것은 꽃향기가 아니다.
세탁소의 고압 스팀다리미가 '치이익!' 하고 뿜어내는 뜨겁고 습한 증기 냄새다.
혹은 가루 세제를 한 움큼 집어 코앞에서 훅 불었을 때의 그 맵고 칼칼한 가루 날림이다.
"더러운 것은 죄악이다!"라고 외치는 듯한, 그의 첫인상은 폭력적일 만큼 쨍하고 하얗다.
그의 세계에는 '적당히'가 없다.
화이트 로즈와 피오니가 피어있지만, 이 꽃들은 흙에서 자란 것이 아니라 표백제가 섞인 물병에 꽂혀 있다.
그는 내 몸에 있는 모든 인간적인 냄새—땀, 피지, 음식 냄새—를 용납하지 않는다.
그저 강력한 화학적 덮개로 모든 것을 덮어버린다.
이것은 향기를 입는 것이 아니라, 전신 소독을 하는 수준이다.
비판적으로 보자면, 블랑쉬는 ‘무균실’의 냄새다.
너무나 완벽하게 살균되어서 어떤 미생물도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은 삭막함이 느껴진다.
그는 순수하다.
하지만 그 순수함은 갓 태어난 아기의 보드라움이 아니라, 공장에서 갓 찍혀 나온 A4 용지의 날카로운 모서리 같은 순수함이다.
손을 대면 베일 것 같이 빳빳하게 풀 먹인 셔츠 깃.
그 꼿꼿함이 멋있긴 하지만, 안기고 싶은 포근함은 아니다.
가장 무서운 점은 그의 지배력이다.
블랑쉬를 뿌린 날은 내가 주인공이 아니다.
‘걸어 다니는 빨래 건조대’가 주인공이다.
사람들은 나를 보는 게 아니라, 내 옷에서 나는 섬유 유연제 냄새에만 집중한다.
"어머, 냄새 좋다.
무슨 세제 써?"라는 질문을 듣는 것이 최고의 칭찬이라니, 향수로서의 자존심이 상하지도 않나 보다.
최종 판결.
블랑쉬는 향수가 아니라 ‘개념’이다.
‘위생’, ‘청결’, ‘단정’이라는 사회적 규범을 액체로 구현해 놓은 것이다.
그를 느끼면, 눈앞이 하얗게 멀어버릴 것 같은 강렬한 백색 조명이 떠오른다.
질감은 빳빳하고, 온도는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미지근한 세탁물 온도다.
그는 흐트러진 꼴을 못 보는 엄격한 기숙사 사감 선생님이다.
단추를 끝까지 채우고, 티끌 하나 없이 살고 싶다면 그를 만나라.
하지만 흙탕물 튀기며 뛰어노는 즐거움은 영원히 포기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