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가 본질을 결정한다
프랑스의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는 "구조란 요소와 요소 간의 관계로 이루어진 전체"라고 정의했다. 그는 개별적인 현상(나무)에 집착하지 않고, 그 현상을 만들어내는 기저의 시스템(숲)을 보려 했다.
시각장애인들이 자주 듣는 우화가 있다. '장님과 코끼리' 이야기다. 다리를 만진 이는 기둥이라 하고, 코를 만진 이는 뱀이라 한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시각장애인의 무지를 비웃지만, 정보학적 관점에서 이 우화는 '구조적 사고'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부분(Part)만 만져서는 결코 전체(Whole)를 알 수 없다. 코끼리라는 본질은 다리와 코, 꼬리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관계의 망(Network of Relations)'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나는 눈이 보이지 않기에, 역설적으로 눈앞의 현상보다 그 이면에 숨겨진 구조를 파악하려 더 애쓰게 된다.
레비스트로스는 '교차 사촌혼'을 근친상간이라는 야만적 행위(개별 현상)가 아니라, 집단 간의 결속을 다지는 고도의 교환 시스템(구조)으로 해석했다. 이 관점의 전환은 장애학(Disability Studies)에서도 혁명적으로 적용된다.
과거에는 장애를 개인의 신체적 결함(의료적 모델)으로 보았다. "네 눈이 안 보이니까 문제야." 이는 나무만 보는 시각이다.
하지만 구조주의적 관점, 즉 '사회적 모델(Social Model)'은 다르게 말한다. "개인의 손상은 문제가 아니다. 손상 입은 개인을 배제하는 사회적 구조(계단, 점자 없는 키오스크)가 문제다."
레비스트로스가 미개 풍습에서 합리성을 찾아냈듯, 구조주의는 장애를 '치료해야 할 질병'에서 '해결해야 할 사회적 관계의 불일치'로 재정의한다.
텍스트 속 Q&A에서 "빈곤은 단순히 돈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일할 수 없는 사회적 환경의 문제"라고 지적한 부분은 나의 연구 분야인 '정보 빈곤'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많은 정책 입안자들은 정보 격차 해소를 위해 시각장애인에게 최신형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를 무료로 보급한다(금전적 지원). 이것은 부분만 보는 처방이다.
기기가 있어도 그것을 사용할 수 있는 '정보 리터러시(내부 역량)'가 없거나, 애초에 그 기기에서 돌아가는 앱들이 '접근성(외부 구조)'을 갖추지 않았다면, 기기는 비싼 벽돌에 불과하다.
정보 빈곤은 기기의 부재가 아니라, '기술-사용자-교육-환경'으로 이어지는 생태계(구조)의 단절에서 온다. 따라서 근본적인 해결책은 물량 공세가 아니라, 시스템 전체를 재설계하는 리터러시 교육과 접근성 법제화에 있다.
문헌정보학은 본질적으로 구조주의 학문이다.
도서관에 책이 아무리 많아도, '분류(Classification)'라는 구조가 없으면 그곳은 지식의 창고가 아니라 쓰레기장이다.
멜빌 듀이가 만든 십진분류법(DDC)이나, 현대의 시맨틱 웹(Semantic Web)은 모두 개별 정보(요소)들을 의미 있는 관계(구조)로 엮어내려는 시도다.
정보 서비스 연구자인 내가 하는 일은 이용자가 던진 단편적인 질문(나무) 뒤에 숨겨진 거대한 정보 욕구(숲)를 파악하는 것이다.
"스크린리더 쓰는 법 알려주세요"라는 질문은 단순히 기능적 매뉴얼을 달라는 것이 아니다. "나도 디지털 사회의 시민으로 참여하고 싶다"는 구조적 욕망의 표현이다.
우리는 종종 눈에 보이는 현상에 매몰된다. 스마트폰을 못 쓰는 노인을 보며 "배우지 않아서 그래"라고 개인 탓을 하거나, 휠체어가 못 가는 식당을 보며 "운이 없네"라고 넘긴다.
하지만 레비스트로스는 말한다. "전체 구조로 눈을 돌려라."
노인이 못 쓰는 것은 인터페이스가 불친절하기 때문이고, 휠체어가 못 가는 것은 도시에 경사로가 없기 때문이다.
정보학은 데이터를 다루지만, 그 데이터들이 맺고 있는 관계망을 통해 세상을 본다.
나는 시각장애인으로서 그리고 연구자로서 이 사회의 '구조'를 더듬어 나갈 것이다.
단절된 곳은 잇고(Network), 막힌 곳은 뚫으며(Access), 개별적인 점들이 서로 연결되어 아름다운 선이 되는 그날까지.
결국 본질은 '나'라는 점이 아니라, 우리를 연결하는 '선' 속에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