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의 자물쇠 없는 문

'접근성'이 보장된 낙원을 꿈꾸며

by 김경훈


1516년, 토머스 모어는 그리스어 'Ou(없다)'와 'Topos(장소)'를 합쳐 '유토피아(Utopia)'라는 단어를 만들었다. 어디에도 없는 곳. 하지만 발음이 같은 'Eu-topos'는 '좋은 곳'을 뜻한다.

문헌정보학자로서 나는 도서관이야말로 인류가 구현한 가장 현실적인 유토피아라고 생각한다. 그곳에는 화폐가 필요 없고(무료 열람), 지식은 누구에게나 공유되며(공공성), 신분에 상관없이 평등하게 정보를 누린다.

하지만 모어의 유토피아가 완벽하지 않았듯, 현대의 정보 유토피아 역시 치명적인 결함을 안고 있다. 물리적인 도서관 문은 열려 있지만, 디지털 세계의 문턱은 점점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없는 곳'을 '좋은 곳'으로 만드는 힘, 그것은 바로 '정보 서비스'의 질에 달려 있다.



유토피아의 집들에는 자물쇠가 없다. 누구나 들어가서 필요한 물건을 가져다 쓴다.

이것은 정보학에서 말하는 '오픈 액세스(Open Access)'의 원형이다. 지식에 대한 장벽을 허물고 누구나 자유롭게 접근하는 세상.

하지만 시각장애인인 나에게 "자물쇠가 없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문이 열려 있어도 그 문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면, 혹은 문손잡이가 너무 높이 달려 있다면, 그 '열린 문'은 나에게 '닫힌 벽'과 다름없다.

현대의 웹사이트와 키오스크는 비밀번호(자물쇠)는 없지만, '접근성(Accessibility)'이라는 보이지 않는 투명한 벽으로 막혀 있다. 대체 텍스트가 없는 이미지, 스크린리더가 읽지 못하는 버튼. 이것들은 16세기의 자물쇠보다 더 잔인하게 장애인을 배제한다. 진정한 유토피아는 '잠그지 않은 곳'이 아니라, '누구나 들어갈 수 있게 설계된 곳(Universal Design)'이어야 한다.



모어의 유토피아는 모든 집이 똑같고, 옷도 똑같으며, 10년마다 집을 바꾼다. 이 극단적인 평등은 효율적 일지는 몰라도, 정보학적 관점에서는 악몽이다.

문헌정보학의 최신 트렌드는 '획일성'이 아니라 '개인화(Personalization)'다. 이용자마다 정보 욕구(Information Need)는 다르다. 누군가는 점자책이 필요하고, 누군가는 큰 글씨가 필요하며, 누군가는 오디오북이 필요하다.

모두에게 똑같은 집(인터페이스)을 강요하는 것은 평등이 아니라 '정보 폭력'이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정보 사회는 획일화된 유토피아가 아니라, 각자의 결핍과 필요에 맞춰 최적의 정보를 제공하는 '지능형 정보 서비스(SDI)'가 구현된 사회다.



유토피아에서 범죄를 저지르거나 탈출을 시도한 자는 '노예'가 된다. 그들은 자유인의 권리를 잃고 더 많은 노동을 해야 한다.

나는 이 대목에서 현대 사회의 '정보 리터러시(Information Literacy)' 문제를 떠올린다.

오늘날 디지털 기기를 다루지 못하거나 정보를 비판적으로 해독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모어가 말한 '노예'의 상태로 전락할 위험에 처해 있다. 키오스크 앞에서 주문을 못 해 밥을 굶고, 모바일 뱅킹을 못 해 은행 창구에서 더 비싼 수수료를 내며(더 많은 노동), 가짜 뉴스에 속아 판단력을 상실한다.

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정보 활용 능력을 상실하는 것. 그것이 21세기의 범죄이자 형벌이다. 때문에 정보 리터러시 교육은 단순한 기능 전수가 아니라, 시민이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한 권리 투쟁'이다.



토머스 모어는 헨리 8세의 이혼을 반대하다 참수당했다. 그는 자신의 신념(양심)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

정보학자인 나에게도 지켜야 할 신념이 있다. 바로 "누구도 정보로부터 소외되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다.


유토피아는 지도상에 '없는 곳'이지만, 우리는 그곳을 향해 나침반을 맞춰야 한다.

기술만 보급해 놓고 "알아서 쓰라"고 방치하는 사회는 디스토피아다.

노인이든, 장애인이든, 가난한 사람이든 누구나 기술이라는 도구를 자유롭게 사용하여 자신의 삶을 경작할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것이 내가 연구하는 정보 리터러시 교육의 목표이자, 이 차가운 디지털 섬을 '사람이 사는 좋은 곳(Eu-topos)'으로 바꾸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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