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조립하는 목소리

소쉬르가 설계한 도서관

by 김경훈


스위스의 언어학자 소쉬르는 언어를 '기호(Signe)'로 정의하고, 이를 '기표(Signifiant, 소리 이미지)'와 '기의(Signifie, 개념)'의 결합으로 보았다. 그의 주장은 혁명적이었다. "사물이 있어서 이름이 붙은 것이 아니라, 이름(언어)이 사물의 개념을 비로소 존재하게 한다."

정안인(비장애인)들에게 이 말은 철학적 은유일지 모르지만, 시각장애인인 나에게 이것은 물리적 실체이자 생존의 법칙이다.

나는 눈앞에 놓인 물체를 즉각적으로 '보지' 못한다. 누군가 혹은 스크린리더가 "이것은 붉은 사과입니다"라고 말해주는 순간(Signifiant), 비로소 내 머릿속 암흑 공간에 '사과'라는 개념(Signifie)이 생성된다. 나에게 세상은 원래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가 선언될 때마다 하나씩 팝업처럼 생성되는 '언어적 가상 세계'다.



문헌정보학은 소쉬르의 이론을 가장 거대하게 구현한 학문이다. 도서관은 책을 보관하는 곳이 아니라, 세상 만물을 '언어'로 재규정하여 질서를 부여한 공간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주제명 표목(Controlled Vocabulary)'이나 '분류 기호'는 도서관이 세상을 정의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어떤 도서관이 특정 역사적 사건을 '폭동'으로 분류하느냐 '민주화 운동'으로 분류하느냐에 따라, 이용자가 접하는 정보의 세계(Signifie)는 완전히 달라진다.

정보학에서 '메타데이터(Metadata)'는 데이터에 부여된 이름표다. 이름표가 없는 데이터는 검색되지 않는다. 즉, 정보 시스템 안에서는 '이름 불리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소쉬르가 말한 "언어가 세상을 분절(Articulation)한다"는 원리와 정확히 일치한다.



소쉬르는 기표(소리)와 기의(개념)가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다고 했다. 하지만 디지털 세계에서는 이 연결이 자주 끊어진다. 바로 '접근성(Accessibility)'의 문제다.

인터넷상의 이미지에 '대체 텍스트(Alt-text)'가 없을 때, 스크린리더는 "이미지 342.jpg"라고 읽거나 침묵한다. 이때 나에게는 '이미지'라는 껍데기(기표)만 전달될 뿐, 그 안에 담긴 내용(기의)은 전달되지 않는다.

소쉬르의 관점에서 보면, 대체 텍스트가 없는 웹사이트는 '의미가 거세된 소음'일뿐이다.

최근 내가 연구하는 '정보 리터러시' 교육은 바로 이 지점에 주목한다. 단순히 기계를 쓰는 법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왜 이 이미지에 이름을 붙여야 하는가?"를 가르치는 것이다. 정확한 이름을 붙여주는 행위야말로,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세상을 '창조'해 주는 숭고한 작업임을 인지시키는 것이 내 연구의 핵심이다.



소쉬르의 영향 아래 탄생한 구조주의는 "우리가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가 우리를 사고하게 한다"고 말한다.

"이곳은 남쪽 나라다"라는 말이 우리에게 휴양지의 설렘을 주듯, "장애인", "정상인", "취약 계층"이라는 단어 선택은 우리의 무의식을 지배한다.

정보 서비스 현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용자를 '계몽의 대상'으로 보느냐, '정보 주권자'로 보느냐에 따라 서비스의 태도가 달라진다. 우리가 무심코 쓰는 행정 용어나 분류 체계 속에 차별적인 시선이 녹아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해야 한다. 언어가 세상을 만든다면, '나쁜 언어'는 '나쁜 세상'을 만들기 때문이다.



현실 세계는 언어를 통해 재인식된다.

그렇다면 정보 전문가인 우리에게는 막중한 책임이 있다. 우리는 혼란스러운 데이터의 바다(현실)에서 명확한 언어(메타데이터)를 건져 올려, 이용자들에게 올바른 세계상을 제시해야 할 의무가 있다.


특히 시각장애인에게 당신의 말 한마디, 당신이 입력한 대체 텍스트 한 줄은 그들이 딛고 설 수 있는 '땅'이 되고, 만질 수 있는 '사물'이 된다.

그러니 정확하게 말하고, 세심하게 기록하자.

우리가 붙이는 이름표 하나하나가 누군가에게는 유일한 세상의 전부가 될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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