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협은 50점짜리 실패다

접근성 갈등을 '초월'하는 법

by 김경훈

평화학자 요한 갈퉁은 폭력을 다시 정의했다. 총칼을 겨누는 것만이 폭력이 아니다. 빈곤, 차별, 소외처럼 사회 시스템이 특정 집단의 잠재력을 억누르는 것, 그것이 바로 '구조적 폭력(Structural Violence)'이다.

이 정의에 따르면, 현대의 정보 사회는 가장 세련된 폭력의 현장이다.

음성 지원이 되지 않는 매끈한 터치스크린 키오스크. 그것은 비장애인에게는 '편리함'이지만, 앞이 보이지 않는 나에게는 "너는 여기서 밥을 먹을 자격이 없다"고 선언하는 거대한 벽이다. 누군가를 때리지 않아도, 시스템의 설계만으로 인간의 존엄을 짓밟을 수 있다. 정보학에서 '접근성(Accessibility)'은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이 구조적 폭력을 멈추는 평화 운동이다.



갈퉁은 갈등 해결을 위해 '타협(Compromise)'이 아닌 '초월(Transcendence)'을 주문했다.

타협은 서로 조금씩 양보하는 것이다. A는 100을 원하고 B도 100을 원할 때, 둘 다 50씩만 가져가는 것. 결과적으로 둘 다 불만족스럽다.

정보 서비스 현장에서도 이 '타협'의 비극이 자주 일어난다.


개발자(A): "화려한 그래픽과 복잡한 기능을 넣고 싶어요."

시각장애인(B): "단순하고 텍스트 위주의 페이지가 필요해요."

여기서 타협하면 어떻게 될까? 그래픽은 어정쩡해지고, 텍스트 정보도 부실한 '이도 저도 아닌 웹사이트'가 나온다. 혹은 장애인용 페이지를 따로 만드는 분리 정책(Segregation)을 쓴다. 이것은 해결이 아니라 회피다.



갈퉁의 해법은 A와 B의 목표를 모두 충족하는 차원이 다른 제3의 길을 찾는 것이다.

정보학에서 그 답은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과 '멀티모달(Multimodal) 인터페이스'에 있다.

예를 들어보자. 최근의 스마트 스피커(AI 비서)는 시각장애인을 위해 개발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것은 시각장애인에게 완벽한 접근성을 제공하면서(B의 만족), 동시에 손이 바쁜 운전자나 요리하는 주부들에게도 최고의 편리함을 준다(A의 만족).

그래픽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그 그래픽 데이터를 '소리(Sonification)'나 '진동(Haptics)'으로 변환하여 제공하는 기술. 이것은 타협이 아니다. 시각 중심의 정보 전달 방식을 초월하여, '감각의 확장'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 것이다.



갈퉁은 초월을 위해 '조정자(Mediator)'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했다. 정보 사회에서 그 역할은 누가 맡아야 할까? 바로 우리 '문헌정보학자'들이다.

우리는 기술(개발자)과 사람(이용자) 사이에 서 있다.

개발자가 "접근성을 맞추면 디자인이 망가져요"라고 불평할 때, 장애인이 "안 들려요"라고 호소할 때, 우리는 기술적 가이드라인만 들이미는 것이 아니라 창조적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이미지를 없애지 마세요. 대신 AI가 그 이미지를 시적인 묘사로 읽어주게 합시다. 그러면 비장애인도 감동하고, 장애인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갈퉁이 말한 '창조적 해결'이다.



우리 주변의 분쟁, 특히 디지털 격차로 인한 갈등은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이 아니다. 장애인이 편해지면 비장애인이 불편해지는 것이 아니다.

엘리베이터가 설치되면 휠체어만 타는가? 유모차도 타고, 무거운 짐을 든 택배 기사도 탄다.

정보 접근성을 높이는 것은 소수를 위한 배려가 아니라, 정보 생태계 전체의 '사용성(Usability)'을 높이는 진화의 과정이다.


나는 연구한다. 타협하지 않기 위해서.

장애인도 100% 만족하고, 비장애인도 100% 만족하는 그 '초월점'이 어딘가에 반드시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갈퉁의 말처럼, 아무리 작은 분쟁(불편)이라도 해결책은 있다. 우리가 그동안 '관행'이라는 이름의 타협에 머물러 있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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