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창의 지평과 사서의 지평

우리는 도서관에서 매일 '융합'한다

by 김경훈


도서관 현장에서 사서들이 가장 많이 겪는 어려움은 "책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용자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용자는 "좋은 소설 있어요?"라고 묻는다. 사서에게 '좋은'의 기준은 문학상 수상작일 수도 있고, 대출 빈도가 높은 베스트셀러일 수도 있다. 반면 이용자의 마음속(지평)에 있는 '좋은'은 '어제 본 드라마 원작'일 수도 있다.

가다머는 사람마다 각자의 선입견과 경험으로 이루어진 '지평(Horizon)'이 있다고 했다. 도서관 안내 데스크는 바로 이 이용자의 지평(자연어, 일상 경험)과 사서의 지평(통제어, 분류 체계)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최전선이다. 검색이 실패하는 이유는 시스템의 오류가 아니라, 이 두 지평이 만나지 못하고 평행선을 달리기 때문이다.



가다머는 이해를 위해 '대화(Dialogue)'가 필수적이라고 했다. 문헌정보학에서는 이 과정을 '레퍼런스 인터뷰(Reference Interview)'라고 부른다.

"좋은 소설 있어요?"라는 질문에 사서는 즉시 검색하지 않는다. 대신 되묻는다. "최근에 재밌게 읽으신 책이 뭔가요?", "어떤 장르를 선호하시나요?"

이 대화는 단순한 스무고개가 아니다. 사서가 자신의 전문가적 지평을 잠시 내려놓고, 이용자의 지평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해석학적 과정이다.

마침내 이용자가 "사실은 제가 요즘 좀 우울해서 위로가 되는 책을 찾아요"라고 고백할 때, 사서와 이용자의 지평은 하나로 포개진다(지평 융합). 이때 사서가 건네는 책은 단순한 검색 결과(Output)가 아니라, 두 세계가 만나 탄생시킨 제3의 해답(Solution)이 된다.



가다머는 '역사성'을 강조했다. 우리는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존재다.

도서관이 오래된 장서를 쉽사리 폐기하지 않고 보존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1970년대의 신문 기사, 50년 전의 낡은 잡지는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촌스럽거나 차별적인 내용(과거의 지평)을 담고 있을 수 있다.

작가의 텍스트 속 Q&A에서 "차별하는 사람의 과거를 이해해 보자"는 대목은 문헌정보학적 아카이빙의 윤리와 맞닿아 있다. 우리는 과거의 차별적인 텍스트를 검열하거나 삭제하지 않는다. 대신 그것을 보존함으로써, "그 시대에는 왜 그런 생각이 통용되었는가?"를 후대가 해석할 수 있게 한다.

과거의 텍스트와 현재의 독자가 만날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 사회가 얼마나 진보했는지를 깨닫는 '역사적 지평 융합'을 경험하게 된다. 정보학에서 '보존'은 과거의 박제가 아니라, 미래의 해석을 위한 준비다.



나의 정체성인 시각장애인 연구자의 입장에서도 이 개념은 유효하다.

웹사이트를 만드는 비장애인 개발자의 지평에는 '마우스'와 '화려한 그래픽'만 존재한다. 반면 나의 지평에는 '키보드'와 '음성 안내'만 존재한다.

두 지평이 만나지 않으면, 나는 그 사이트를 평생 이용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개발자들을 만나 끊임없이 대화(인터뷰)한다. "당신의 눈에는 이게 편하겠지만, 나의 귀에는 이것이 소음입니다."

이 지루한 설득 과정 끝에 개발자가 대체 텍스트 한 줄을 넣어줄 때, 그것은 단순한 코딩 수정이 아니다. 비장애인의 세계와 장애인의 세계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섞이는 거대한 철학적 사건이다.



요즘 AI 검색이 발달하여 사서가 필요 없다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AI는 키워드를 매칭(Matching)할 뿐, 지평을 융합(Fusion) 하지는 못한다. AI에게는 '역사성'이 없고,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려는 '선입견의 수정'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진정한 정보 서비스는 "A를 찾아줘"라는 말에 A를 던져주는 것이 아니다.

A를 찾고 싶어 하는 그 사람의 떨리는 목소리, 그가 살아온 맥락, 그리고 그 질문 뒤에 숨겨진 삶의 무게를 이해하고, 그와 함께 더 넓은 지평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도서관에 가거든 사서에게 말을 걸어보라. 검색 키오스크는 1초 만에 답을 주겠지만, 사서와의 대화는 당신을 전혀 새로운 지식의 세계로 이끌어 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가장 고등한 정보활동, '해석'과 '융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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