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향수 설명
‘오 듀엘(Eau Duelle)’은 ‘물(Eau)’과 ‘이중성(Duelle)’의 결합을 의미한다.
이름처럼 차가움과 따뜻함, 남성성과 여성성, 스파이시함과 달콤함이라는 상반된 매력이 공존하는 향수다.
바닐라 향수라고 하면 으레 떠올리는 케이크나 사탕 같은 끈적한 달콤함이 아니다.
고대 무역로(Spice Route)에서 영감을 받아, 바닐라에 차가운 향신료와 쌉싸름한 찻잎, 그리고 스모키한 향을 더해 완성한 ‘어른을 위한 바닐라’다.
2. 노트 구성
탑 노트 (Top Notes) 핑크 페퍼, 주니퍼 베리, 카다멈
첫인상은 바닐라가 맞나 싶을 정도로 차갑고 맵싸하다. 핑크 페퍼의 톡 쏘는 향과 주니퍼 베리의 서늘한 솔잎 향이 섞여, 마치 차가운 진(Gin)이나 한약재가 보관된 서랍을 연 듯한 느낌을 준다.
미들 노트 (Middle Notes): 창포(Calamus), 블랙 티
단맛을 억제하는 쌉쌀한 허브와 홍차 향이 지나간다. 이 덕분에 바닐라가 느끼해지지 않고, 건조하고 담백한 분위기를 유지한다.
베이스 노트 (Base Notes): 버번 바닐라, 프랑킨센스(유향), 앰버
드디어 주인공인 바닐라가 등장하지만, 설탕에 절인 바닐라가 아니다. 불에 그을린 듯 스모키하고, 먼지 쌓인 듯 건조한 바닐라다. 흙냄새와 나무 향이 섞여 아주 포근하고 깊이 있는 잔향을 남긴다.
3. 전체적인 리뷰
"바닐라 향은 머리 아파서 싫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내밀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반전 카드다.
달지 않은 바닐라, 숲 냄새 나는 바닐라다.
초반의 시원한 향신료가 후반의 따뜻한 바닐라와 만나 묘한 균형을 이룬다.
한겨울 코트 자락이나 두꺼운 머플러에서 날 법한, 지적이고 차분한 향기다.
한약방 서랍 속의 바닐라, 오 듀엘의 이중생활
세상에는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이 있다.
개중에는 겉은 따뜻해 보이지만 속이 차가운 사람이 있고, 반대로 겉은 쌀쌀맞아 보이지만 속은 누구보다 따뜻한 사람이 있다.
오늘 만난 친구, 딥티크의 ‘오 듀엘’은 명백히 후자다.
‘바닐라’라는 달콤한 명찰을 달고 있지만, 첫 만남부터 "사탕 주세요" 하며 달려들었다가는 코를 쥐어박히기 십상인, 깐깐한 약제사 같은 친구다.
그와의 첫인상은 당혹스럽다.
분명 바닐라를 만나러 왔는데, 문을 열자마자 풍기는 것은 오래된 한약방 냄새다.
핑크 페퍼와 카다멈, 그리고 주니퍼 베리가 섞인 향기는 달콤하기는커녕, 코끝이 시릴 정도로 맵고 싸하다.
이것은 디저트 가게의 냄새가 아니라, 건조된 약초와 나무뿌리가 가득한 낡은 나무 서랍장의 냄새다.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쓴 법이지"라고 중얼거리는 듯한, 다소 고리타분하고 엄격한 첫인상이다.
하지만 그 차가운 약재 냄새에 익숙해질 때쯤, 기묘한 반전이 시작된다.
서늘한 향신료의 안개 속에서 아주 천천히, 그리고 은밀하게 바닐라가 고개를 든다.
그런데 이 바닐라는 우리가 아는 그 노란색 설탕 덩어리가 아니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 바짝 말라 비틀어진, 검은색 바닐라 줄기 그 자체다.
물기가 하나도 없이 건조하고(Dry), 불에 살짝 그을린 듯 스모키하다.
비판적으로 묘사하자면, 이것은 ‘다이어트 바닐라’다.
칼로리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생크림 케이크의 느끼함은 쏙 빼고, 바닐라가 가진 본연의 흙내음과 나무 냄새만을 남겨두었다.
그는 달콤한 위로를 건네지만, 결코 끈적거리지 않는다.
적당한 거리를 둔 채, 따뜻한 홍차 한 잔을 무심하게 밀어주는 츤데레(Tsundere)의 전형이다.
오 듀엘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이 ‘이중성(Duality)’이다.
차가운 숲의 바람을 맞으며 걷고 있는데, 품속에는 핫팩을 하나 품고 있는 기분이다.
겉으로는 냉철한 이성을 유지하려 애쓰지만, 속으로는 누구보다 온기를 그리워하는 고독한 현대인의 초상과 닮았다.
최종 판결.
오 듀엘은 ‘어른을 위한 동화’다.
마냥 행복하고 달콤하기만 한 디즈니 만화가 아니라, 씁쓸한 현실을 알지만 그래도 희망을 품는 그림 형제의 원작 동화 같다.
시각 정보 없이 그를 느끼면, 거칠거칠한 크라프트지(누런 포장지)의 질감이 떠오른다.
색깔은 채도가 낮은 갈색과 회색.
화려하지 않다.
하지만 춥고 지친 날, 화려한 파티장보다는 이 낡은 한약방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그가 몰래 꺼내준 말린 바닐라 줄기 냄새를 맡으며 쉬고 싶어진다.
그것이 설탕보다 더 깊은 위로가 될 때가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