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향수 설명
‘테싯(Tacit)’은 ‘암묵적인’,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이라는 뜻을 가졌다.
이솝이 기존의 전통적인 코롱(Cologne)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만든 향수다.
앞서 만난 ‘휠’이 인적 없는 깊은 산속의 고목이라면, ‘테싯’은 도심 한복판, 잘 가꿔진 테라스 정원에 심어진 싱그러운 허브 화분이다.
과하게 멋을 부리지 않았지만, 세련되고 지적인 이미지를 주어 남녀노소 호불호 없이 가장 사랑받는 이솝의 대표작이다.
2. 노트 구성
탑 노트 (Top Notes): 유자(Yuzu), 시트러스
흔한 레몬이나 오렌지가 아니다. 한국인에게 익숙한 유자의 향이다. 하지만 유자차처럼 달콤하고 끈적한 향이 아니라, 유자 껍질을 손톱으로 긁었을 때 튀어 오르는 쌉쌀하고 떫은(Zesty) 향이 아주 신선하게 터진다.
미들 노트 (Middle Notes): 바질(Basil) 그랑 베르
테싯의 주인공이다. 흙 묻은 야생초가 아니라, 파스타나 샐러드에 올라가는 아주 신선하고 향긋한 바질 잎의 향이다. 맵싸하면서도 시원한 초록색 풀 냄새가 유자의 상큼함과 어우러져 ‘초록색’ 이미지를 완성한다.
베이스 노트 (Base Notes): 베티버, 클로브(정향)
마무리로 흙냄새가 나지만, ‘휠’처럼 축축하거나 어둡지 않다. 햇볕에 잘 마른 흙, 혹은 깨끗하게 세탁된 린넨 셔츠에서 날 법한 단정하고 드라이한 나무 향으로 남는다.
3. 전체적인 리뷰
"꾸안꾸(꾸민 듯 안 꾸민 듯)의 정석."
흰 셔츠에 슬랙스를 입고, 소매를 걷어붙인 스마트한 직장인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인위적인 향수 냄새를 싫어하는 사람도 부담 없이 쓸 수 있을 만큼 자연스럽다.
다만, 너무나 모범적이고 깔끔해서 ‘섹시함’이나 ‘퇴폐미’ 같은 반전 매력은 부족하다.
지속력 또한 그리 길지 않아, 수시로 뿌려줘야 하는 부지런함이 필요하다.
강남대로의 식물 애호가, 테싯의 예의 바른 초록색
세상에는 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지만, 그렇다고 촌스러워 보이는 것은 더 싫어하는 부류가 있다.
오늘 만난 친구, 이솝의 ‘테싯(Tacit)’은 바로 그런, ‘세련된 평범함’을 추구하는 현대적인 모범생이다.
앞서 만난 ‘휠’이 산속에서 도를 닦는 기인(奇人)이었다면, ‘테싯’은 매일 아침 조깅을 하고 영양제를 챙겨 먹는, 자기 관리 철저한 도시의 직장인이다.
과연 이 완벽한 모범생에게서 인간적인 매력을 찾을 수 있을지, 삐딱한 시선으로 그를 관찰해 보았다.
그와의 만남은 상쾌하다.
군더더기가 없다.
인사를 나누자마자 유자 껍질의 싱그러움이 공간을 채운다.
이것은 사탕 가게의 단내가 아니다.
칵테일 바에서 바텐더가 막 썰어낸 과일 껍질의 쌉싸름하고 떫은 향이다.
그는 "저는 겉멋 든 향수들과는 다릅니다"라고 말하지 않아도(Tacit), 온몸으로 자신의 담백함을 웅변한다.
마치 다림질이 완벽하게 된 흰색 린넨 셔츠를 입은 듯, 구김살 하나 없는 첫인상이다.
곧이어 그의 본체인 바질(Basil) 향이 올라온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것이 거친 자연의 풀냄새가 아니라는 점이다.
흙먼지 날리는 들판이 아니라, 스마트 오피스의 책상 위에 놓인, 수경 재배로 깔끔하게 키운 허브 화분의 냄새다.
혹은 최고급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갓 서빙된 샐러드의 신선함이다.
물기는 촉촉하지만 흙탕물은 튀지 않는다.
그는 자연을 사랑하지만, 벌레가 나오는 것은 질색하는 깔끔쟁이다.
비판적으로 보자면, 테싯은 ‘큐레이팅 된 자연’이다.
거칠고 위험한 야생의 요소는 모두 제거하고, 인간이 보기에 예쁘고 향긋한 부분만 남겨놓았다.
그는 예의 바르고, 스마트하며, 누구에게도 불쾌감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래서 재미가 없다.
그에게서는 일탈의 욕구나, 뜨거운 열정, 혹은 꼬질꼬질한 인간미를 전혀 느낄 수 없다.
그는 너무나 ‘안전(Safe)’하다.
면접을 보러 가거나, 학부모 모임에 가거나, 상견례를 할 때, 그는 최고의 파트너가 되어줄 것이다.
"저 사람은 참 센스 있고 단정한 사람이네"라는 평가는 보장한다.
하지만 "저 사람에게 미치도록 빠져들 것 같아"라는 치명적인 매력은 기대하기 힘들다.
그는 연인보다는, 일 잘하고 성격 좋은 직장 동료로 남고 싶은 향기다.
최종 판결.
테싯은 ‘현대인의 교복’이다.
개성을 드러내기보다는, ‘좋은 취향을 가진 사람’이라는 집단에 소속되고 싶을 때 입는 안전한 유니폼이다.
시각 정보 없이 감각으로만 그를 느끼면,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적당한 온도의 유리병, 혹은 바스락거리는 빳빳한 종이의 질감이 떠오른다.
초록색이지만 네온사인의 초록색처럼 선명하고 인공적이다.
복잡한 생각 없이 기분 전환이 필요할 때, 혹은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티 내지 않고 증명하고 싶을 때, 이 예의 바른 친구는 묵묵히 제 몫을 다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