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티크 필로시코스(Diptyque Philosykos)

by 김경훈

1. 향수 설명

‘필로시코스(Philosykos)’는 그리스어로 ‘무화과 나무의 친구’라는 뜻이다.

딥티크의 창립자들이 그리스 펠리온 산에서 보낸 여름휴가의 추억을 담아 만들었다.

단순히 무화과 열매의 달콤함만 담은 게 아니다.

잎사귀의 풋내, 덜 익은 열매의 껍질, 나무의 진액, 그리고 뜨거운 태양 아래 달궈진 흙냄새까지, 말 그대로 ‘무화과 나무 한 그루’를 뿌리째 뽑아서 병에 담은 듯한 하이퍼 리얼리즘 향수다.

인위적인 단맛이 아니라, 식물성 지방 특유의 크리미하고 고소한 향이 특징이다.



2. 노트 구성


탑 노트 (Top Notes): 무화과 잎, 무화과 열매

첫 향은 과일이라기보다 풀 냄새에 가깝다. 커다란 무화과 잎사귀를 손으로 마구 구겨서 찢었을 때 나는 아주 진하고 쌉싸름한 초록색 즙(Green Sap) 냄새가 터져 나온다. 약간은 비릿할 정도로 생생한 풀 냄새다.


미들 노트 (Middle Notes): 코코넛, 그린 노트

이 향수의 핵심이자 호불호 포인트다. 무화과 나무줄기를 꺾으면 나오는 하얀 진액의 냄새를 표현하기 위해 코코넛 향을 사용했다. 이 때문에 아주 부드럽고, 느끼할 정도로 고소한 우유 냄새가 난다. 풋풋한 풀 향기와 섞여 묘한 중독성을 만든다.


베이스 노트 (Base Notes): 시더우드, 우디 노트, 무화과 나무

마지막은 나무껍질과 흙냄새다. 햇볕에 바짝 마른 나무의 건조하고 따뜻한 향이 코코넛의 느끼함을 잡아주며 차분하게 마무리된다.



3. 전체적인 리뷰

"나무 그늘 아래서 낮잠 자는 기분."

자연 그 자체의 향이라 힐링용으로 최고다.

하지만 ‘코코넛’ 특유의 울렁거림이나 느끼함을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자동차 방향제’나 ‘느끼한 로션’ 냄새로 느껴질 수 있다.

가장 큰 단점은 지속력이다.

뿌리고 돌아서면 사라진다고 해서 ‘현관 컷’, ‘조루시코스’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도 가지고 있다.



무화과 나무를 통째로 삼킨 소년, 필로시코스 관찰기

세상에는 과일 향수라고 하면 으레 사탕처럼 달콤하고 끈적거리는 것들뿐이다.

하지만 오늘 만난 친구, 딥티크의 ‘필로시코스’는 다르다.

그는 설탕물에 절인 과일 통조림이 아니라, 흙이 잔뜩 묻은 뿌리째 뽑혀 온 ‘진짜 나무’다.

그리스의 태양을 머금고 자랐다는 이 친구.

과연 그가 건네는 무화과가 꿀맛일지, 아니면 덜 익은 풋내일지, 미각과 후각을 총동원해 그를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겨보았다.


그와의 첫인상은 꽤나 거칠다.

“상큼한 과일이에요”라고 소개받았는데, 막상 만나보니 얼굴에 풀독이 오를 것 같은 초록색 잎사귀를 한 뭉치 던져준다.

이것은 예쁘게 포장된 과일 바구니 냄새가 아니다.

정글 탐험을 하다가 거대한 나뭇잎을 손으로 쥐어뜯었을 때 손톱 밑에 끼는 맵고 쌉싸름한 풀즙 냄새다.

덜 익은 무화과 껍질의 떫은맛과 비릿한 생명력이 코를 찌른다.

자연스럽다 못해 야생적이다.


하지만 이 거친 풀냄새가 가라앉으면, 갑자기 분위기가 180도 바뀐다.

거칠었던 소년이 갑자기 품속에서 따뜻한 우유 한 잔을 꺼내 놓는다.

바로 코코넛 향이다.

무화과 나무줄기에서 나오는 하얀 진액(Sap)을 표현했다는데, 비판적으로 맡아보면 이것은 영락없는 ‘코코넛 밀크’다.


여기서 인지부조화가 온다.

방금 전까지 그리스의 숲속이었는데, 갑자기 동남아시아의 디저트 가게로 순간 이동을 한 기분이다.

풋풋한 풀냄새와 느끼한 코코넛 향의 공존.

마치 샐러드에 생크림을 부어 먹는 듯한 이 기묘한 조합은 누군가에게는 ‘극락의 부드러움’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속이 울렁거리는 느끼함’이다.

그는 담백한 식물인 척하지만, 사실은 꽤나 기름진 녀석이다.


가장 치명적인 단점은 그의 ‘체력’이다. 이 친구, 끈기가 없다

무화과 나무 아래서 좀 쉬어볼까 하고 자리를 잡으면, 어느새 짐을 싸서 도망가고 없다.

시더우드의 흙냄새를 아주 잠깐, 정말 스치듯 보여주고는 연기처럼 사라진다.

지속력이 어찌나 짧은지, 그와 함께 있는 시간은 찰나의 꿈같다.

향을 즐기려거든 30분에 한 번씩 그를 다시 불러내야 한다.


최종 판결.

필로시코스는 ‘여름날의 짧은 낮잠’이다.

현실의 고단함을 잊게 해주는 달콤하고 편안한 휴식이지만, 눈을 뜨면 허무하게 사라지고 없는 신기루다.


시각 정보 없이 그를 느끼면, 손에는 거칠거칠한 나무껍질과 끈적한 하얀 진액이 묻어나는 듯하다.

입안에서는 톡톡 터지는 무화과 씨앗과 부드러운 과육이 씹히는 것 같다.

그는 시각보다는 촉각과 미각을 자극하는 향수다.

배고플 때 뿌리면 꼬르륵 소리가 날 수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짧고, 굵고, 그리고 맛있는 친구와의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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