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된 자유와 정보의 덫
캐스 선스타인은 '자유주의적 개입주의(Liberal Paternalism)'를 주창했다.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되, 더 나은 선택을 하도록 부드럽게 팔꿈치를 찌르는 것(Nudge).
하지만 오늘날 디지털 세상에서 이 '개입'은 부드러운 팔꿈치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 즉 '알고리즘'이 수행한다.
우리는 유튜브가 추천하는 영상을 '선택'해서 본다고 믿지만, 사실은 알고리즘이 설계해 놓은 '기본값(Default)'의 경로를 따라가고 있을 뿐이다. 정보학에서 이를 '선택 설계(Choice Architecture)'라 부른다.
문제는 이 설계자가 선한 의도를 가진 '현명한 부모'가 아니라,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일 때 발생한다. 그들은 우리의 건강(공중위생)이 아니라, 우리의 체류 시간(매출)을 늘리기 위해 끊임없이 넛지를 가한다.
선스타인이 말한 '슬러지(Sludge)'는 행동을 방해하는 '진창'이다. 구독 해지 버튼을 숨겨놓거나, 절차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 대표적이다. 정보학에서는 이를 '다크 패턴(Dark Pattern)'이라 부른다.
하지만 시각장애인인 나에게 이 '슬러지'는 훨씬 더 가혹한 형태로 나타난다.
비장애인에게는 단순히 '조금 귀찮은 절차'인 것이 나에게는 '통과 불가능한 장벽'이 된다.
예를 들어보자. 회원가입 마지막 단계에 등장하는 "신호등이 있는 타일을 모두 고르시오"라는 이미지 캡차(CAPTCHA). 이것은 나에게 진창 정도가 아니라, 길을 끊어버리는 낭떠러지다.
접근성을 고려하지 않은 웹사이트 설계는 그 자체로 장애인에게 거대한 슬러지다. 기업은 "보안을 위해서"라고 말하지만(넛지), 결과적으로 그것은 특정 집단의 진입을 원천 봉쇄하는 구조적 폭력이 된다.
문헌정보학의 핵심 영역 중 하나는 '정보 아키텍처(IA: Information Architecture)'다. 웹사이트의 메뉴 구조를 짜고, 정보의 흐름을 설계하는 일이다.
선스타인의 이론을 빌리자면, 정보 아키텍트는 이용자의 선택을 유도하는 '선택 설계자'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윤리를 가져야 하는가?
우리는 이용자가 정보를 찾는 과정을 매끄럽게 만드는 '좋은 넛지'를 설계해야 한다. 예를 들어, 검색창에 오타를 입력해도 올바른 결과를 보여주는 것, 시각장애인이 접속하면 자동으로 스크린리더 모드로 전환되게 하는 것.
반대로 이용자의 피로도를 높이는 '슬러지'는 제거해야 한다. 불필요한 팝업, 대체 텍스트 없는 이미지, 복잡한 인증 절차. 이것들을 걷어내는 것이야말로 정보 전문가가 수행해야 할 디지털 환경 미화 작업이다.
질문자는 "일상에서 조종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물었다. 정답은 "그렇다"이다.
우리가 클릭하는 배너, 읽고 있는 뉴스, 심지어 "프리랜서가 되기 힘들다"고 느끼게 만드는 사회적 시스템까지 모든 것이 설계된 넛지와 슬러지의 결과물이다.
여기서 다시 한번 '정보 리터러시'의 중요성이 등장한다.
진정한 리터러시는 정보를 찾는 능력이 아니다. "이 화면이 왜 이렇게 구성되었는가?", "왜 해지 버튼은 찾기 어려운가?"를 꿰뚫어 보는 '메타 인지(Meta-cognition)' 능력이다.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그 '진창(Sludge)'이 나의 무능함 때문이 아니라, 누군가 의도적으로 파놓은 함정임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수동적인 이용자에서 주체적인 감시자로 변모한다.
선스타인의 넛지는 공중위생이나 연금 가입 같은 '공익'을 위해 제안되었다.
우리는 디지털 세상의 설계자들에게도 이 '공익적 넛지'를 요구해야 한다.
"장애인도 쉽게 가입할 수 있도록 설계하라."
"해지 절차를 가입 절차만큼 쉽게 만들어라."
"알고리즘의 추천 이유를 투명하게 공개하라."
나는 연구한다. 정보의 세계에 깔린 더러운 슬러지를 걷어내고, 그 자리에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 돕는 단단한 점자블록(좋은 넛지)을 깔기 위해서.
의심하자. 그리고 요구하자.
우리는 조종당하기 위해 태어난 사용자가 아니라, 이 시스템을 이용할 권리가 있는 주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