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된 것은 죽은 것이다

'점토'가 된 정보, 그리고 나의 뇌

by 김경훈

우리는 흔히 '유연한 사고'를 칭송한다. 하지만 카트린 말라부는 고개를 젓는다. 유연성(Flexibility)은 탄성이다. 고무공처럼 힘을 주면 변했다가 힘을 빼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는 성질이다. 이것은 변화가 아니라 복귀다. 기업이 직원에게 요구하는 유연성은 "시키는 대로 모양을 바꾸되, 시스템은 건드리지 마라"는 복종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말라부가 제안하는 것은 '가소성(Plasticity)'이다. 점토를 보라. 한번 모양이 변하면 다시는 이전 상태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 변화는 비가역적이며, 새로운 역사를 쓴다. 더 중요한 것은 점토가 외부의 힘을 받아들이기만(수용)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형태를 부여하는(조형) 힘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변화를 받아들이되, 결코 과거로 돌아가지 않고 주체적으로 새로운 형상을 빚어내는 힘. 이것이 생명과 정보가 살아남는 방식이다.


나는 가소성의 산증인이다. 시각을 잃었을 때, 나의 뇌는 거대한 충격(파괴적 가소성)을 받았다. 하지만 뇌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시각 정보를 처리하던 후두엽은 죽지 않았다. 대신 그곳은 청각과 촉각 정보를 처리하는 새로운 기지로 리모델링 되었다. 나의 뇌는 점토처럼 스스로를 재조직하여, '소리로 보는 뇌'라는 전대미문의 구조를 만들어냈다.

이것은 단순한 적응이 아니다. 결핍이라는 외부의 힘을 받아들여, 나만의 고유한 인식 체계로 승화시킨 '창조적 가소성'이다. 인간은 미완성으로 태어나기에, 역설적으로 평생 자신을 조각할 수 있는 자유를 얻는다.


정보학적 관점에서 가소성은 '접근성(Accessibility)'의 핵심 원리다.

우리가 흔히 쓰는 PDF 문서를 보자. 이것은 종이책을 그대로 스캔한 것이다. 확대는 할 수 있지만(유연성), 글자 크기를 키우면 문단이 깨지거나 스크롤을 좌우로 왔다 갔다 해야 한다. PDF는 자신의 형태를 고집하며 사용자가 맞추기를 강요한다. 즉, 가소성이 없다.

반면, 전자책 포맷인 EPUB이나 HTML(웹)은 가소적이다.


사용자가 "글자를 20포인트로 키워줘", "배경을 검은색으로 바꿔줘"라고 힘을 가하면, 콘텐츠는 즉시 그에 맞춰 줄 바꿈을 다시 하고 레이아웃을 완전히 재구성한다. 사용자의 필요에 따라 정보의 형태가 완전히 변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접근성이다.

정보 접근성 연구의 목표는 세상의 모든 딱딱한 정보(이미지, PDF)를 말랑말랑한 점토(텍스트, 코드)로 바꿔, 누가 만지더라도 그 사람에게 맞는 형태로 변형되게 만드는 것이다.


말라부의 말처럼 사물은 영원히 정해지지 않은 상태다. 도서관의 분류 체계(DDC, KDC) 역시 마찬가지다.

과거에 '동성애'는 '변태 성욕'이나 '범죄' 항목에 분류되기도 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고 인권 의식이 성장하면서(외부의 힘), 분류표는 그 항목을 삭제하고 새로운 자리를 부여했다(가소적 변화).

만약 도서관 분류가 유연하기만 했다면, 잠시 변했다가 다시 보수적인 과거로 돌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도서관은 가소적이다. 한번 진보한 분류 체계는 다시 퇴보하지 않는다.

도서관은 완성된 지식의 성전이 아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을 수용하고, 낡은 체계를 부수며, 스스로를 재건축하는 '살아있는 가소체'다. 랑가나단이 "도서관은 성장하는 유기체"라고 했던 말은 바로 이 가소성을 예견한 것이다.


정보 리터러시 교육의 목표도 수정되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교육은 "기존 시스템에 잘 적응하는 법(유연성)"을 가르쳤다. 키오스크가 불편하면 참고 쓰는 법을, 검색 엔진이 주는 결과를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법을 가르쳤다.

하지만 진짜 리터러시는 '가소적 주체'를 기르는 것이다.

불편한 키오스크를 만나면 "이 UI를 바꿔라"고 요구하여 시스템의 형태를 변형시키는 힘. 주어진 정보를 그대로 소비하는 게 아니라, 비판적으로 재해석하여 나만의 지식으로 재조형하는 능력.


우리는 완성형이 아니다. 그리고 우리가 다루는 이 거대한 디지털 세상도 아직 '작업 중(Work in Progress)'이다.

그러니 굳어지지 말자.

딱딱한 고정관념의 PDF가 되지 말고, 언제든 새로운 형태가 될 준비가 된 말랑한 점토가 되자.

나의 뇌가 어둠 속에서 빛을 빚어냈듯이 우리도 정보의 홍수 속에서 자신만의 진실을 빚어낼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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