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키온의 시간과 정보의 합일

초광속으로 읽는 세계의 아키텍처

by 김경훈

인간은 참으로 묘한 존재이다. 아침 지하철을 놓칠까 봐 헐떡거리며 뛰는 꼴을 보면 영락없이 빛보다 느린 브라디온의 노예이다. 그런데 입으로는 우주의 섭리와 빛의 속도를 논한다. 프랑스의 물리학자 레지스 뒤테유는 이런 인간의 가련한 실존을 세 가지 입자의 속도로 깔끔하게 정리해 주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우리는 느림보인 하광속계, 빛의 속도인 광속계, 그리고 빛보다 빠른 타키온이 지배하는 초광속계라는 세 층위의 아파트에 셋방살이를 하는 중이다.



첫 번째 층, 거북이와 뉴턴의 하광속계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하광속계는 철저히 뉴턴의 법칙이 지배하는 곳이다. 빛보다 느린 입자인 브라디온이 득실거리는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순서대로 흘러야 한다. 밥을 먹어야 배가 부르고, 한 줄 한 줄 읽어야 정보가 머리에 들어온다.


특히 나처럼 스크린리더를 통해 정보를 수용하는 사람에게 이 하광속계는 꽤나 정직하고도 가혹한 곳이다. 화면의 텍스트가 순차적으로 내 귀에 꽂히는 동안, 내 육신은 철저히 선형적인 시간의 감옥에 갇혀 있다. 아무리 마음이 급해도 브라디온의 속도를 앞지를 수 없는 것이 하광속계의 법도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층, 생각의 빛이 반짝이는 광속계


그다음 층은 아인슈타인이 주인 노릇을 하는 광속계이다. 이곳은 빛의 속도에 근접한 룩손이라는 입자들이 지배한다. 뒤테유는 우리의 일상적인 사고 과정이 바로 이 광속계의 속도에 대응한다고 보았다.


우리가 가상자산의 미래를 점치거나 2026년의 경제 전망을 훑을 때, 우리의 뇌세포는 이미 빛의 속도로 정보를 처리하며 하광속계의 느릿한 육신을 비웃는다. 하지만 문제는 이곳 역시 상대성 이론의 영향권이라는 점이다. 생각은 빠르지만 여전히 물리적인 제약 속에서 '원인'과 '결과'라는 굴레를 완전히 벗어던지지는 못한다.



세 번째 층, 모든 것이 한 점이 되는 타키온의 초광속계


뒤테유 이론의 진수는 역시 초광속계이다. 빛보다 빠른 타키온의 세계에서는 시간의 관념이 완전히 무너진다. 과거, 현재, 미래가 뷔페 접시 위의 음식들처럼 한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린다. 뒤테유는 우리가 꿈을 꾸거나 명상에 잠길 때, 혹은 깨달음의 경지에 올랐을 때 이 초의식의 세계에 발을 들인다고 주장했다.


이곳에서는 전생과 내생이 지금 이 순간의 현생과 동시에 전개된다. 지독하게 밀린 마감 기한도, 아직 오지 않은 노후의 걱정도 이곳에서는 한 점으로 융화되어 사라진다. 어쩌면 우리가 죽는 순간 의식이 육신을 빠져나가 타키온의 시공간에 합류한다는 그의 말은 평생 브라디온의 속도에 시달린 인간에게 주어지는 최후의 해방 선언일지도 모른다.



기술의 보철과 타키온을 꿈꾸는 안내견


스티글러의 말마따나 우리는 결함투성이 존재이기에 기술이라는 보철을 달고 산다. 내 곁의 안내견 탱고는 시속 5킬로미터라는 하광속계의 정직한 속도로 나를 안내한다. 하지만 가끔 산책 중에 탱고가 멈춰 서서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응시할 때면, 나는 녀석이 이미 타키온의 세계에서 내 미래의 간식을 미리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하곤 한다.


우리가 스마트폰 업데이트 속도를 따라잡으려 헉헉거리는 것은 어쩌면 하광속계의 육신을 억지로 초광속계의 속도에 맞추려는 부질없는 몸부림일지 모른다. 진정한 리터러시는 기술의 속도에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내 의식을 타키온의 영역으로 끌어올려 흩어진 정보들을 단번에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기르는 데 있다.


오늘도 나는 하광속계의 보도블록을 밟으며 초광속계의 사유를 꿈꾼다. 비록 내 귀는 스크린리더의 느릿한 목소리를 듣고 있지만, 내 영혼은 이미 과거와 미래가 하나로 만나는 타키온의 바다를 유영하고 있다. 당신의 오늘 하루는 어떤 속도의 입자가 지배하고 있는가? 혹시 너무 빠른 기술의 속도에 치여 하광속계의 소소한 기쁨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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