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나에게 보내는 안부 인사

초월적 공동체의 유료 구독권

by 김경훈

우리는 흔히 '인생은 일회용'이라며 오늘만 살 것처럼 굴곤 한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정치철학자 아브너 드 샬리트는 우리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공동체는 현재라는 좁은 울타리에 갇혀 있지 않다. 그는 이를 '초월적 공동체'라 부르며, 미래는 저 멀리 있는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고 선언한다.



나라는 서사의 공동 집필자들


드 샬리트는 인간의 정체성이 생애 전체의 경험을 통해 형성되는 '자기의 통일'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통일된 자아가 그려가는 인생은 한 편의 '이야기'가 된다. 흥미로운 점은 이 이야기가 독백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공동체라는 거대한 편집실에서 타인과 함께 서사를 써 내려가는 공동 집필자이다.


문헌정보학 연구자인 나의 관점에서 볼 때, 이것은 매우 타당한 분석이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의 문장 하나, 연구실에서 분석하는 데이터 한 줄은 단순히 나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속한 공동체의 지적 자산이 되고, 내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 이야기의 흐름은 멈추지 않는다. 공동체는 나의 사후에도 내 자식과 동료, 그리고 이름 모를 후대 구성원들에 의해 계속해서 이어지기 때문이다.



초월적 공동체: 시공간을 넘는 '접근성'


드 샬리트가 말하는 초월적 공동체는 시간을 인식하는 법을 통째로 바꿔놓는다. 내가 지금 내뱉는 말 한마디, 혹은 무심코 버리는 정보의 쓰레기가 몇백 년 후의 공동체 구성원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면 등골이 서늘해진다. 미래의 윤리는 어딘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미래의 공동체 속에도 '나'의 서사가 존재한다고 믿는 순간, 현재의 모든 행동은 미래에 대한 책임감으로 직결된다.


정보 접근성을 연구하는 나에게 이는 더 큰 숙제로 다가온다. 오늘 내가 구축하는 정보 리터러시의 체계와 디지털 포용의 가이드라인은 단순히 현재의 시각장애인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초월적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연결된 미래의 누군가가 겪을 정보 장벽을 미리 허무는 작업이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이 아니라, 우리가 현재의 텍스트 속에 정성껏 심어놓은 씨앗들의 결과물인 셈이다.



안내견 탱고와 함께 걷는 미래의 지도


유쾌한 관찰자의 시선으로 보자면, 초월적 공동체는 일종의 '장기 구독 서비스'와 같다. 우리는 지금 당장의 효용뿐만 아니라, 아주 먼 훗날의 서비스 품질까지 고려해야 하는 구독자이자 공급자이다.


내가 오늘 탱고와 함께 걷는 산책로는 미래의 안내견과 시각장애인 연구자가 걸어갈 길의 초석이 된다. 우리가 길 위의 턱을 없애고 점자 블록을 정비하려 애쓰는 이유는 그 길이 초월적 공동체의 구성원인 '미래의 우리'가 걸어갈 길이기 때문이다. 내 삶의 칵테일이 비록 104년 뒤에 끝날지라도, 내가 남긴 다정한 텍스트들은 타키온의 속도로 미래 공동체의 서사에 합류할 것이 분명하다.



미래는 여기에 있다. 드 샬리트의 말처럼 우리가 미래 세대와 하나의 공동체로 묶여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우리의 일상은 한층 더 묵직하고도 우아해진다. 오늘 당신이 남긴 친절한 텍스트 한 줄이 수백 년 뒤 누군가의 인생이라는 소설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장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자, 이제 당신은 미래의 공동체를 위해 어떤 문장을 준비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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