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라는 점토는 아직 굳지 않았다

말라부의 가소성

by 김경훈

우리는 흔히 사물을 이미 완성된 결론으로 대한다. 책상은 다리가 네 개여야 하고, 책은 종이 뭉치여야 하며, 나의 인생은 어느 정도 정해진 궤도를 달리고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카트린 말라부는 '가소성(Plasticity)'이라는 개념을 통해 이 견고한 믿음에 균열을 낸다. 가소성은 단순히 유연하게 변하는 능력을 넘어, 외부의 힘을 받아 새로운 형태를 만들고 그 형태를 유지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가소성은 고무공의 탄력성과는 다르다. 고무공은 외부 압력이 사라지면 원래의 둥근 모습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점토는 다르다. 한 번 가해진 손길에 따라 형태가 변하면, 점토는 결코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은 채 새로운 존재가 된다. 이는 인간의 삶과도 닮았다. 우리가 겪는 사건과 지식은 우리를 변화시키고, 변화된 우리는 결코 어제의 나로 회귀할 수 없다. 우리는 매 순간 '폭발적인' 변화를 수용하며 새로운 형태를 부여받는 존재다.


말라부는 이 개념을 뇌과학에 투영한다. 우리의 뇌는 고정된 기계가 아니다. 새로운 정보를 학습하고 환경에 적응하며 끊임없이 신경 회로를 재구성한다. 문헌정보학 연구자로서 내가 매일 접하는 수많은 데이터와 리터러시 교육의 방법론들도 결국 인간의 뇌가 가진 이 가소성을 어떻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자극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귀결된다. 기술은 보철로서 우리를 보완하지만, 우리의 뇌는 그 기술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가소적으로 변모한다.


우리가 완성형이라고 믿는 주변의 사물들을 가소성의 관점으로 다시 바라보자. 다리가 네 개 달린 책상은 그저 지금 이 순간의 잠정적인 형태일 뿐이다. 중력을 극복하는 기술이 더해진다면 책상은 드론처럼 허공에 떠 있을 수도 있고, 사용자의 체형에 맞춰 액체처럼 변할 수도 있다. 사물을 '결정된 것'이 아니라 '결정되어 가는 것'으로 인식할 때, 혁신은 비로소 시작된다. 완성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리는 순간, 모든 사물은 새로운 가능성을 품은 원재료로 돌아간다.


나의 박사 학위 논문 주제가 공간 접근성에서 정보 리터러시 교육으로 바뀐 것 또한 연구자로서 나의 가소성이 발휘된 결과다. 고정된 주제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사회적 요구와 학문적 자극에 반응하여 형태를 바꾼 셈이다. 내 곁의 탱고 역시 매일 새로운 길을 익히고 나의 보폭에 적응하며 자신만의 안내 가소성을 발휘한다.


우리는 완성된 조각상이 아니다. 끊임없이 외부와 상호작용하며 스스로에게 새로운 형태를 부여하는 예술가이자, 그 자체로 예술품이다. 오늘 나를 누르는 압박이 있다면, 그것이 나를 찌그러뜨리는 시련이 아니라 나를 더 정교한 형태로 빚어내는 조각가의 손길이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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