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년의 실험을 종료합니다

맛없는 칵테일과 어느 과학자의 우아한 퇴장

by 김경훈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삶이라는 긴 논문을 써 내려가는 연구자이다. 하지만 그 논문의 마지막 장을 본인이 직접 '마침표'로 끝낼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은 의외로 드물다. 대부분은 신체라는 시스템이 오류를 일으켜 강제 종료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처지이다. 이런 관점에서 2018년 스위스에서 자신의 생을 스스로 마감한 104세의 식물학자 데이비드 구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꽤나 묵직하고도 유쾌한 질문을 던진다.



104년의 데이터 축적, 그리고 시스템 종료 선언


데이비드 구들은 호주가 자랑하는 생태학의 거장이었다. 100세가 넘어서도 논문을 심사하고 연구실로 출근하던 그는 전형적인 '호모 사피엔스'의 지적 열망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스티글러가 말한 것처럼 인간은 결국 '보철적 존재'이다. 아무리 뛰어난 지성을 가졌더라도 시력이 퇴화하고 청력이 나빠지며, 혼자서 외출조차 할 수 없게 되면 정보에 대한 접근성은 급격히 무너진다.


구들이 안락사를 결심한 이유는 고통스러운 불치병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단지 "더 이상 좋아하는 연구를 할 수 없고, 극장에 갈 수 없으며,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없는 상태"를 견딜 수 없었다. 연구자에게 정보를 탐색하고 세상을 관찰하는 능력이 박탈당하는 것은 하광속계의 육신이 살아있더라도 이미 '지적 사망'을 선고받은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삶이라는 시스템이 더 이상 가소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고착되었다고 판단한 순간, 스스로 전원을 끄기로 결심한다.



슬러지를 뚫고 스위스로 향한 마지막 여행


그의 마지막 여정은 선스타인이 말한 '슬러지'와의 싸움이기도 했다. 호주의 법률은 건강한(?) 노인의 자발적인 죽음을 허용하지 않았다. 이 행정적인 진창을 피해 그는 굳이 스위스라는 넛지를 찾아 먼 길을 떠난다. 104세의 노인이 휠체어에 몸을 싣고 대륙을 건너는 광경은 그 자체로 자신의 실존을 스스로 결정하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다.


스위스의 클리닉에서 그는 의사가 건네는 주사 버튼을 직접 눌렀다. 과학자답게 그는 기계의 작동 원리를 완벽히 이해했고, 자신이 피험자이자 실험 설계자가 되어 인생의 마지막 실험을 집행했다.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가 흐르는 가운데, 그는 슬픔에 잠긴 사람들을 향해 인류 역사상 가장 위트 있는 유언을 남긴다. "이 칵테일 정말 맛없군. 다음에는 이거 주문하지 마."



칵테일 한 잔의 철학과 우아한 냉소


이 농담은 르 봉이 말한 군중심리의 전염성을 단번에 끊어내는 고도의 기술이다. 죽음이라는 엄숙한 군중심리에 매몰되어 흐느끼던 사람들을 향해, 그는 '칵테일 맛이 없다'는 지극히 개인적이고도 감각적인 평론을 던짐으로써 현장의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이는 자신의 죽음마저도 하나의 관찰 대상으로 객관화할 수 있는 자만이 부릴 수 있는 여유이다.


그에게 인생은 이미 충분히 마신 한 잔의 칵테일이었다. 비록 마지막 모금은 조금 쓰고 맛이 없었을지언정, 그는 잔을 비우는 순간까지 품위를 잃지 않았다. 그가 남긴 웃음은 죽음이라는 거대한 공포 앞에서 인간이 부릴 수 있는 최후의 허세이자, 가장 인간다운 저항이다.



데이비드 구들의 퇴장은 우리에게 '삶의 질'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단순히 숨을 쉬고 심장이 뛰는 하광속계의 물리적 존속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가 원하는 정보를 탐색하고, 타인과 시선을 공유하며, 세상을 향해 유쾌한 농담을 던질 수 있는 '접근성'이 보장될 때 비로소 삶은 의미를 갖는다.


안내견 탱고와 함께 걷는 나의 산책이 소중한 이유는 그것이 내 생존을 10퍼센트 늘려주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 시간 동안 내가 주체적으로 세상을 느끼고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들의 맛없는 칵테일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오늘 내가 마시는 정보의 칵테일이 얼마나 달콤한지 새삼 느껴본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다음 잔을 주문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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