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값 하기 참 힘든 세상

헤라클레스의 잔혹한 열두 가지 퀘스트

by 김경훈

누군가의 이름이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말은 참으로 낭만적이지만, 그리스 신화의 영웅 헤라클레스에게는 이보다 더 잔인한 농담이 없다. 그의 이름은 그리스어로 헤라의 영광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정작 헤라 여신은 그가 태어날 때부터 죽이려 안달이 났고, 급기야 그를 미치게 만들어 제 손으로 자식들을 살해하게 했다. 원수의 이름을 평생 달고 살며 그 원수가 내린 저주를 닦아내기 위해 불가능한 과업을 수행해야 했던 남자. 헤라클레스의 인생은 그야말로 극한의 직업 정신과 처절한 속죄가 버무려진 거대한 드라마다.



첫째, 히드라의 머리와 끊이지 않는 업무 메일


헤라클레스가 마주한 과업들은 하나같이 말도 안 되는 난이도를 자랑한다. 그중에서도 레르네 늪의 히드라는 현대인의 일상과 묘하게 닮아 있다. 머리 하나를 자르면 두 개가 솟아나는 이 괴물은 마치 처리해도 끝없이 쌓이는 업무 메일이나 하나를 해결하면 두 개의 버그가 터져 나오는 코딩 작업과 같다.


관찰자의 시선으로 보자면, 히드라를 상대하는 헤라클레스의 고충은 다중 작업(Multi-tasking)에 시달리는 현대인의 피로와 맞닿아 있다. 그는 결국 머리를 자른 자리를 불로 지져버리는 극단적인 처방을 내린다. 우리에게도 히드라 같은 문제들이 닥칠 때, 단순히 하나씩 쳐내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뿌리를 지져버릴 혁신적인 방법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반복되는 문제의 연쇄를 끊어내는 것, 그것이 바로 영웅적 문제 해결의 핵심이다.



둘째, 아우게이아스의 외양간과 거대한 데이터 슬러지


다섯 번째 과업인 아우게이아스 왕의 외양간 청소는 더 가관이다. 30년 동안 한 번도 치우지 않은 3천 마리 소의 분뇨를 단 하루 만에 치워야 했다. 이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노동의 문제가 아니다. 선스타인이 말한 슬러지(Sludge)가 극대화된 상태이자, 정보학적으로 보면 맥락 없이 쌓여 썩어가는 거대한 데이터 쓰레기 더미이다.


헤라클레스는 여기서 삽질을 하는 대신 강물의 줄기를 틀어버리는 지혜를 발휘한다. 시스템 전체를 관통하는 거대한 흐름을 이용해 정체된 오물을 한 번에 쓸어버린 것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불합리한 관습이나 꽉 막힌 행정 절차 역시,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때로는 강물을 끌어오듯 시스템의 패러다임을 통째로 바꾸는 가소성 있는 사고가 필요하다. 썩은 냄새 진동하는 외양간을 향해 강물을 터뜨리는 그의 과감함은 정체된 조직과 사회에 가장 필요한 파격이다.



셋째, 저승의 문을 여는 마지막 접근성


마지막 과업인 케르베로스 생포는 생명 있는 자가 가서는 안 될 영역, 즉 저승에 대한 도전이다. 머리가 세 개 달린 괴물 개를 지상으로 끌고 오는 것은 물리적 힘을 넘어선 금기에 대한 위반이다. 헤라클레스는 이를 위해 신비 의식에 입문하며 죽음의 세계에 접근하는 법을 배운다.


이것은 우리 삶에서 가장 견고하게 닫힌 문을 여는 행위와 같다. 절대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장벽, 혹은 사회가 규정한 금기 뒤에 숨겨진 진실을 마주하려는 시도이다. 헤라클레스가 케르베로스의 목을 잡고 지상으로 나왔을 때, 그는 비로소 자신의 죄를 씻고 헤라의 영광이라는 이름의 역설을 완성한다. 가장 깊은 어둠 속에서 가장 위험한 존재를 끌어올린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해방인 셈이다.



헤라클레스의 열두 가지 위업은 단순히 힘자랑의 연대기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마주할 수 있는 온갖 부조리와 한계를 하나씩 깨부수며 나아가는 실존적 투쟁기이다. 그는 자신의 결함과 죄과를 보충하기 위해 신들이 내린 가혹한 보철들을 하나씩 장착하며 진정한 영웅으로 거듭났다.


우리의 일상 또한 매일 아침 눈을 뜨는 순간 시작되는 열두 가지 과업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는 산더미 같은 가사 노동이 네메아의 사자이고, 누군가에게는 까다로운 상사가 히드라일 것이다. 하지만 기억해야 한다. 헤라클레스가 사자의 가죽을 벗겨 자신의 갑옷으로 삼았듯, 우리를 괴롭히는 시련들 역시 결국 우리를 보호할 가장 단단한 방어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당신은 오늘 당신의 외양간을 청소하기 위해 어떤 강물을 끌어올 준비가 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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