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 벽의 그림자와 알고리즘의 환상

밀레투스에서 실리콘밸리까지

by 김경훈

기원전 6세기, 소아시아의 밀레투스에서는 인류 역사상 가장 전위적인 정보 혁명이 일어났다. 탈레스와 그의 동료들은 세상을 신화라는 모호한 텍스트로 읽기를 거부하고, 자연이라는 실체적 데이터 속에서 원리(Archê)를 찾기 시작했다. 물이나 공기, 혹은 무한자를 우주의 근본 데이터로 규정한 이들의 시도는 오늘날 데이터 과학이 방대한 정보 속에서 핵심 속성을 추출하려는 노력과 그 궤를 같이한다.



첫째, 만물의 원리에서 데이터의 최소 단위로


밀레투스 학파의 연구는 현대 정보학의 지식 조직론(Knowledge Organization) 관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그들은 복잡한 세상을 하나의 근본 원소로 환원하려 했다. 데모크리토스가 주장한 원자론은 정보학에서 다루는 정보의 원자화(Atomization)와 닮아 있다. 우주가 원자들의 우연한 충돌로 구성되듯, 현대의 거대 언어 모델 역시 수조 개의 토큰이 확률적으로 충돌하며 새로운 의미의 세계를 창조한다. 기원전의 철학자들이 물질의 최소 단위를 찾았다면, 지금의 우리는 의미의 최소 단위를 추적하고 있는 셈이다.



둘째, 동굴의 비유와 메타데이터의 함정


플라톤이 제시한 동굴의 비유는 정보학의 표현론(Representation)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담고 있다. 동굴 벽에 비친 그림자는 실제 사물이 아니라 그것을 투영한 정보의 대리물, 즉 메타데이터와 같다. 정보학자들은 이용자가 원문(Full-text)에 접근하기 쉽도록 초록이나 색인 같은 그림자를 정교하게 만들지만, 때때로 이용자들은 이 그림자를 실제 현실로 착각한다.


오늘날의 알고리즘은 현대판 동굴의 벽이다. 개인의 취향이라는 사슬에 묶인 채 추천 알고리즘이 비추는 그림자만 바라보는 사용자들은 그것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는다. 동굴 밖의 태양, 즉 객관적인 사실과 원천 데이터를 보려 하지 않는 확증 편향의 세계는 플라톤이 경고했던 지하 동굴의 모습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셋째, 햇빛을 본 자의 숙명과 정보 윤리


소크라테스는 동굴 밖으로 나가 태양을 본 자를 철학자라고 칭했다. 정보학의 관점에서 그는 필터 버블(Filter Bubble)을 깨고 나와 정보의 원천을 확인한 정보 리터러시의 선구자이다. 그러나 진실을 목격한 자의 운명은 가혹했다. 동굴 안의 사람들에게 그림자는 허상이라고 외쳤던 소크라테스가 독약을 마셔야 했던 사건은 기득권화된 정보 체계에 도전하는 행위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준다.


이는 오늘날 투명한 정보 공개를 주장하는 오픈 사이언스(Open Science) 운동이나 데이터 독점에 반대하는 활동가들이 겪는 진통과도 연결된다. 거짓된 그림자가 주는 안락함에 젖어 있는 군중에게 가공되지 않은 날것의 진실을 들이미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환영받지 못하는 일이다.



인류는 밀레투스의 과학 운동을 통해 신화의 시대에서 이성의 시대로 나아갔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동굴 안에서 고해상도의 그림자를 탐닉하며 살고 있다. 정보학 연구자로서 우리의 역할은 단순히 더 선명한 그림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사용자들이 스스로 사슬을 풀고 뒤를 돌아 불꽃의 실체를 확인하게 하며, 마침내 눈이 부시더라도 동굴 밖의 태양을 마주할 용기를 갖게 하는 것이다.


세상이 제공하는 편리한 정보의 대리물에만 만족하고 있지는 않은가. 가끔은 알고리즘의 벽에서 시선을 돌려, 저 멀리 동굴 입구에서 쏟아지는 불편한 진실의 햇빛을 응시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바로 밀레투스의 학자들이 꿈꿨던, 그리고 소크라테스가 목숨과 바꿨던 지적인 자유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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