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가 홀로그램이라면

내 논문 오타도 우주의 섭리일까

by 김경훈

연구실 구석에서 쏟아지는 데이터와 씨름하다 보면 가끔 세상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는데, 물리학자 데이비드 봄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게 단순히 기분 탓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우주가 거대한 홀로그램이라고 주장했으니까.



조각 속에 전체가 있다: 정보학적 백업의 끝판왕


홀로그램의 가장 황당한 점은 필름을 갈갈이 찢어도 그 작은 파편 하나에 전체 상이 다 들어있다는 것이다. 봄은 우주도 그렇다고 봤다.


정보학을 연구하는 내 관점에서 이건 정말 소름 돋는 '전체 백업' 시스템이다. 도서관이 불타서 책 한 페이지, 아니 종이 조각 하나만 남았는데 거기서 인류의 모든 지식을 복구할 수 있다고 상상해 봐라. 효율성 측면에서는 끝판왕이지만, 데이터 관리자로서는 좀 피곤한 일이다. 내가 무심코 남긴 사소한 기록이나 검색어 하나에도 사실 나의 전 생애와 우주의 모든 맥락이 인덱싱되어 있다는 뜻이니 말이다. 내 논문의 치명적인 오타 한 자도 사실 우주의 홀로그램적 완성도를 위한 필연적인 파편이었을까? 그렇다면 교수님께 "이건 오타가 아니라 우주의 위상입니다"라고 우겨볼 수도 있겠군.



비번 없는 우주 와이파이: 총체적 의식이라는 클라우드


봄은 인류에게 '총체적인 의식'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정신과 물질을 나누는 건 무의미하고, 우리는 모두 같은 광원에서 나오는 빛의 변주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우주는 이미 초고속 기가 와이파이로 촘촘하게 연결된 거대한 클라우드 서비스다.


문제는 우리가 그 비번을 잊어버렸거나, 접속하는 법을 몰라서 각자 오프라인 섬처럼 살고 있다는 점이다. 봄은 양자 역학과 명상이 그 접속 단말기라고 생각했다. 연구실에서 논문이 안 풀려 멍하니 있을 때, 사실 그건 내 지능의 한계가 아니라 우주 서버의 일시적인 렉(Lag)이거나 동기화 오류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타인과 공감하고 소통하는 것도 결국 동일한 클라우드 데이터를 공유하고 있다는 증거 아닐까? 링크드인이나 페이스북 같은 SNS가 없어도 우리는 이미 우주적으로 엮인 '깐부'였던 셈이다.



죽음은 채널 변경일 뿐: 에너지 위상의 변화


가장 유쾌하면서도 철학적인 대목은 죽음에 대한 해석이다. 봄에게 죽음은 소멸이 아니라 '에너지 위상의 변화'였다. 라디오 주파수를 돌리면 소리가 안 들리는 것 같지만 사실 다른 방송이 나오고 있듯이 우리도 삶이라는 주파수에서 죽음이라는 주파수로 채널만 바꾸는 거다.


봄은 1992년에 직접 그 채널을 돌렸다. 사람들은 그가 떠났다고 말하지만, 홀로그램 우주론에 따르면 그는 지금도 우주라는 필름의 어딘가에 전체의 정보를 간직한 채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인생이라는 빔프로젝터가 잠시 꺼졌다고 해서 영화 자체가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나중에 나도 채널을 돌릴 때가 오면, "칵테일 맛 참 없네"라고 농담 한마디 던지고 쿨하게 다른 위상으로 넘어가고 싶다.



데이비드 봄은 과학계의 보수적인 시선을 피해 힌두교와 도교의 지혜를 빌려와 우주를 설명했다. 덕분에 우리는 세상을 훨씬 더 입체적으로 볼 수 있게 됐다.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복잡한 텍스트와 데이터들도 사실은 거대한 홀로그램의 파편들이다. 오늘 일이 좀 꼬였다고, 혹은 내 연구가 정체되어 있다고 너무 괴로워할 필요는 없다. 나는 지금 우주라는 거대한 영화의 한 프레임을 지나고 있을 뿐이고, 내 안에는 이미 우주 전체의 지도가 들어있으니까. 자, 이제 내 인생이라는 홀로그램에 어떤 레이저를 쏘아 올릴지 결정하는 건 결국 나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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