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 꺼졌다. 연구실을 가득 채우던 인공적인 빛들이 일제히 시스템 종료를 선언했다. 복도에서는 비명 섞인 탄식이 들리고, 동료 연구자들은 스마트폰 플래시라는 구식 광학 장치를 찾아 허둥대며 벽을 더듬는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키보드 위에 손을 올린 채 여유롭게 스크린리더의 기계적인 음성에 귀를 기울인다. 암흑이 내려앉은 도서관 서가 사이에서 유일하게 끊김 없이 데이터를 읽어내려가는 존재, 그게 바로 나다. 시각이라는 화려한 인터페이스가 먹통이 된 순간, 진짜 정보 접근성 마스터의 '다크 모드'가 가동되는 것이다.
하드웨어의 한계와 탱고의 코웃음
사람들은 시각이 차단되면 정보의 우주가 소멸한 것처럼 공포를 느낀다. 하지만 내 곁에서 평온하게 코를 골고 있는 탱고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들의 이런 호들갑은 참으로 가소로운 일이다. 탱고에게 '빛'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하위 데이터일 뿐이다. 녀석은 이미 공기의 습도, 바닥의 질감, 그리고 내 주머니 속 간식 봉지의 미세한 분자 구조를 통해 세상을 3D 렌더링하고 있다.
내가 암흑 속에서도 오타 하나 없이 타이핑을 이어갈 때, 탱고는 실눈을 뜨고 나를 보며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제야 겨우 너희 인간들도 우리처럼 고차원적인 비시각적 프로토콜을 써보려 하는구나." 시각에만 올인한 표준형 인간들이 하드웨어 오류로 멈춰 서 있을 때, 접근성 연구를 통해 온몸의 감각을 안테나로 개조한 이들은 전혀 다른 차원의 정보를 수집한다. 이것은 결코 배려의 대상이 아니라, 환경의 제약을 비웃는 압도적인 생존 기술이다.
만약에(What-if): 비주얼 포비아 시대의 새로운 권력 지형
만약 미래에 전 인류가 시각적 과부하로 인해 모니터만 봐도 뇌에 과부하가 걸리는 '디지털 광성포비아'에 걸린다면 어떨까. 텍스트를 눈으로 읽는 행위 자체가 고통이 되는 포스트 비주얼 시대 말이다. 그때가 되면 현재의 정보 소외 계층은 가장 강력한 정보를 독점하는 '데이터 닌자' 그룹으로 급부상하게 된다.
모두가 눈을 가리고 길을 걸어야 할 때, 소리로 공간을 인덱싱하고 손끝으로 텍스트의 굴곡을 파악하는 기술은 가장 비싼 몸값을 자랑하는 '감각 확장 플러그인'이 될 것이다. "아직도 정보를 눈으로 보시나요? 저희는 뇌로 직접 청각 스트리밍을 합니다."라는 광고가 힙스터들의 마음을 흔들지도 모른다. 정보 접근성 연구는 사실 이러한 미래의 대혼란을 대비해 인류의 정보 수용 채널을 다각화하는 '범지구적 백업 플랜'인 셈이다.
조수석의 철학과 감각의 커스터마이징
보보가 운전하는 차의 조수석에 앉아 있으면, 나는 종종 눈을 감고 차창 너머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의 데이터를 소리로 재구성한다. 엔진의 RPM이 올라가는 소리, 타이어가 지면의 굴곡을 훑는 진동, 그리고 보보의 부드러운 핸들링이 만들어내는 원심력. 이 모든 것은 굳이 눈으로 보지 않아도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주는 정교한 메타데이터이다.
이것이 바로 정보 접근성이 가진 진짜 반전 매력이다. 표준화된 시각 정보라는 획일적인 UI를 거부하고, 이용자 개인의 감각 사양에 맞춰 세상을 커스터마이징하는 것. 보보가 나를 위해 에어컨 온도를 세심하게 조절해주듯, 정보 시스템 또한 이용자의 감각 채널에 맞춰 데이터를 최적화해 송출해야 한다. 이 힙한 기술은 누군가를 돕기 위한 보조 수단이 아니라, 인간이 세상을 인지하는 방식 자체를 혁명적으로 재정의하는 '지적 마이그레이션'이다.
오늘도 나는 연구실의 전등 스위치를 켜지 않은 채 일을 마친다. 암흑 속에서 더욱 선명해지는 텍스트의 파동을 느끼며, 나는 내가 남들보다 앞서 미래의 감각을 체험하고 있다는 묘한 우월감에 젖는다. 정보 접근성은 인류가 시각이라는 족쇄를 풀고 진정한 '올 센서리(All-sensory)' 존재로 거듭나기 위한 유쾌한 해킹이다. 자, 이제 당신도 이 힙한 감각 확장 플러그인을 설치해볼 준비가 되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