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젠 라비슈의 희극 페리숑 씨의 여행은 인간의 심연에 숨겨진 옹졸하면서도 지극히 현실적인 기제를 아주 날카롭게 포착하고 있다. 생명의 은인을 미워하고, 내가 구해준 이를 사랑하게 된다는 이 역설적인 '페리숑 씨의 콤플렉스'는 정보의 비대칭성과 자존감의 상관관계를 연구하는 학자의 관점에서도 매우 흥미로운 텍스트가 아닐 수 없다.
인지 부조화와 기억의 재구성 : 생명의 은인이 불편한 이유
아르망이 낭떠러지에서 페리숑 씨를 구했을 때, 페리숑 씨의 뇌내 알고리즘은 즉각적인 인지 부조화에 빠지게 된다. 자신이 무력하게 죽어갈 뻔했다는 사실은 평생 구축해온 '유능한 부르주아'라는 데이터베이스에 치명적인 오류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여기서 페리숑 씨는 아르망에게 고마워하기보다, 아르망이 없었어도 자신은 전나무를 잡고 살아남았을 것이라는 식으로 과거의 로그(Log)를 조작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일종의 방어 기제로서 타인에게 갚을 수 없는 큰 빚을 졌을 때 느끼는 심리적 하중을 견디지 못해 발생하는 현상이다. 은혜가 너무 크면 그것은 보답해야 할 선물이 아니라, 평생을 짊어지고 가야 할 무거운 '부채'가 된다. 결국 페리숑 씨는 그 부채감을 상쇄하기 위해 은인의 가치를 과소평가하고, 나아가 은인을 미워함으로써 심리적 파산 상태를 면하려 애쓰는 셈이다.
베냐민적 산책자와 다니엘의 전략 : 영웅 서사라는 달콤한 데이터
반면 다니엘의 경우는 전혀 다르다. 페리숑 씨가 다니엘을 구했을 때, 다니엘은 "당신이 아니었다면 나는 죽었을 것"이라며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 다니엘은 페리숑 씨의 자존감에 아주 정교하고 달콤한 긍정적 메타데이터를 입력해준 것이다. 페리숑 씨 입장에서 다니엘은 단순한 청년이 아니라, 자신의 영웅성을 증명해주는 살아있는 증거이자 훌륭한 큐레이터가 된다.
우리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푼 사람보다, 우리가 은혜를 베푼 사람을 더 신뢰하고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 흔히 벤자민 프랭클린 효과라고도 부르는데, 내가 누군가를 도와주면 나의 뇌는 "내가 저 사람을 도와주는 이유는 저 사람이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야"라고 스스로를 설득하기 때문이다. 다니엘은 페리숑 씨가 자신의 자존감을 마음껏 뽐낼 수 있는 무대를 제공함으로써, 아르망보다 훨씬 강력한 정서적 연결 고리를 확보하는 데 성공한다.
정보 리터러시와 감정의 손익계산서
정보학 연구자로서 나는 이 희극에서 지식의 공유와 수용의 관계를 떠올린다. 누군가에게 지식을 배울 때, 그 지식이 너무나 압도적이면 배우는 이는 오히려 열등감을 느끼고 가르쳐준 이를 시기하기도 한다. 반대로 자신이 아는 것을 누군가에게 설명하고 그가 감탄할 때, 우리는 형언할 수 없는 지적 유희를 느낀다.
페리숑 씨의 콤플렉스는 결국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인색한 가계부와 같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빚진 상태로 남고 싶어 하지 않으면서도, 누군가가 나에게 영원히 빚진 상태로 있기를 은근히 기대한다. 이 묘한 비대칭성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이라는 복잡한 데이터를 읽어내는 진정한 리터러시의 시작이 아닐까 싶다.
페리숑 씨는 아마도 평생 아르망을 피하며 다니엘의 찬사에 취해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어른이란 자신의 무력함을 인정하고 기꺼이 은혜를 입을 줄 아는 사람, 그리고 그 부채감을 성장의 동력으로 삼을 줄 아는 사람이다. 오늘 나는 누군가에게 아르망이었는지, 아니면 여우 같은 다니엘이었는지, 혹은 옹졸한 페리숑 씨였는지 곰곰이 되짚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