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순이 달팽이의 데이터 정제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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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트러스 작가님의 여행기를 읽으며 나는 공간의 메타데이터와 자아의 상관관계에 대해 깊은 학술적 고뇌(를 빙자한 딴짓)에 빠지고 만다. 집이라는 이름의 완벽하게 최적화된 로컬 서버를 벗어나기 싫어하는 '집순이 달팽이'가 낯선 환경이라는 클라우드 시스템에 접속하기까지의 과정은 그 자체로 한 편의 거대한 시스템 마이그레이션 보고서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로컬 호스트를 떠나는 데이터 이전의 공포
달팽이에게 집은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역사와 습관이 촘촘하게 인덱싱된 최적화된 데이터베이스이다. 이를 억지로 떼어내어 낯선 곳으로 옮기는 행위는 데이터 관리자 입장에서 볼 때 비인가 시스템 이전과 같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유발하기 마련이다.
어린 시절 아빠와 오빠를 따라나서며 서커스단 입단을 걱정했던 작가님의 고백은 초기 발달 단계에서의 정보 해석 오류가 얼마나 창의적인 데이터 노이즈를 만들어내는지 보여주는 아주 귀여운 사례이다. 낯선 풍경이라는 가공되지 않은 로우 데이터(Raw Data)가 입력될 때, 아이의 뇌는 '집으로의 경로 소실'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연산해낸 것이라 볼 수 있다. 사실 우리 연구자들도 가끔 새로운 연구 주제라는 낯선 정글에 던져질 때, "이러다 서커스단 대신 인력시장 가는 거 아닐까?" 하는 공포를 느끼곤 하지 않는가. 천리길도 캐리어 쇼핑부터 시작한다는 작가님의 통찰은 역시 하드웨어(장비)가 갖춰져야 소프트웨어(연구 의지)도 구동된다는 IT 업계의 불변의 진리를 관통하고 있어 실소를 자아낸다.
조식 뷔페라는 강력한 인센티브 알고리즘
철저한 계획형(J) 남편이 엑셀 파일로 데이트 일정을 짜왔다는 대목에서 나는 동질감 어린 학술적 경외감을 느낀다. 구조화된 데이터(Structured Data)를 사랑하는 남편과 비정형의 일상을 선호하는 작가님의 만남은 시스템 통합(SI) 과정에서의 치열한 조율 과정과도 같다.
여기서 조식 뷔페라는 매개체는 시스템 저항을 최소화하는 최적의 보상 알고리즘으로 기능한다. 집 밖으로 나가기 싫어하는 이용자를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거창한 여행의 철학이 아니라, '내일 아침 남이 차려준 무엇을 먹을 것인가'라는 생존 직결형 데이터라는 점이 실로 유쾌하다. 아이 셋의 짐을 챙기는 행위가 거의 소규모 이사에 가깝다는 비유는 다중 접속 환경에서의 트래픽 과부하를 연상시키며, 다자녀 가구의 여행이 왜 고도의 로그 관리 기술을 요하는지 절감하게 만든다. 그 짐 속에는 아마도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한 수만 개의 백업 데이터들이 들어있을 것이다.
인코그니토 모드 : 사연이 거세된 공간의 미학
김영하 작가님의 『여행의 이유』를 인용하며 상처를 흡수한 물건들로부터의 도피를 언급한 부분은 이 글의 학술적 정점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물건들에는 온갖 사연과 감정이라는 부수적인 메타데이터가 덕지덕지 붙어 있기 마련이다. 컵 하나를 봐도 과거의 갈등이나 마감의 고통이 호출된다면 그것은 이미 순수한 객체가 아니다.
호텔 방이 매력적인 이유는 그 공간에 나의 과거 로그(Log)가 전혀 남아있지 않은 클린 캐시(Clean Cache) 상태이기 때문이다. 누가 썼는지 따지지 않아도 되는 정갈한 물컵과 아무 사연 없는 하얀 침구는 이용자로 하여금 아무 맥락 없는 존재로 리셋될 수 있는 자유를 선사한다. 이는 정보학에서 말하는 데이터 익명화가 개인의 정신 건강에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를 시사한다. 우리 집순이들이 가끔씩 비밀번호 없는 와이파이처럼 세상에 자신을 던지고 싶어 하는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완벽한 인코그니토 모드(비밀 모드)를 통해 자신을 보호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여행지의 미술관에서 찍힌 강력한 잉크의 스탬프처럼, 우리 삶은 때때로 일상의 궤도를 벗어난 강렬한 입력값을 필요로 한다. 비록 집으로 돌아오면 다시 집을 등에 이고 사는 연약한 달팽이가 되겠지만, 그 등껍질 안에는 여행지에서 수집한 반짝이는 데이터 조각들이 소중히 보관되어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언젠가 이 좁은 연구실이라는 등껍질을 벗어나, 탱고의 코끝을 믿고 낯선 호텔 방의 클린 캐시를 즐길 수 있기를 소망한다. 물론 그 마이그레이션의 시작은 당연히 새로운 캐리어를 검색하는 쇼핑 단계부터일 것이며, 그 비용은 '지적 자산 취득비'로 분류하여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질 생각이다. 인생이라는 데이터베이스에 가끔은 이런 사치스러운 인덱스를 추가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