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들을 잡지 않는 자의 안전론

조수석에서 바라본 자동차의 형이상학

by 김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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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ST 작가님의 '자동차' 글을 읽고


시각장애인 연구자로서의 삶에서 자동차는 '내가 조종하는 기계'가 아니라, '나를 목적지로 운반해 주는 이동형 공간'에 가깝다. 직접 운전대를 잡지 않는 이에게 '크고 튼튼한 차'에 대한 맹신은 어쩌면 체험된 데이터가 아니라,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가 주입한 관념적 텍스트였을지도 모른다.



조수석의 현상학: 승차감이 곧 정보의 품질이다


운전을 하지 않는 이에게 자동차의 본질은 핸들의 조작감이 아니라 시트의 질감과 하체의 진동으로 전달된다. 작년에 우리 집 식구가 된 투싼을 떠올려 본다. 내가 직접 운전하지는 않지만, 보보가 운전하는 차의 조수석에 앉아 있을 때 내 몸이 받아들이는 정보는 명확하다. 차체가 노면의 충격을 어떻게 필터링하는지, 코너를 돌 때 원심력이 내 몸을 얼마나 부드럽게 밀어내는지가 곧 그 자동차의 '성능'이 된다.


정보학적으로 보면, 이는 '이용자 중심 인터페이스(User-Centered Interface)'의 전형이다. 운전석의 데이터가 '통제와 조작'에 집중되어 있다면, 조수석의 데이터는 '수용과 안락'에 집중된다. 큰 차가 주는 안정감은 사실 물리적 튼튼함보다는 외부의 소음과 진동이라는 '노이즈'를 얼마나 잘 차단하여 쾌적한 정보(이동 경험)만을 제공하느냐에 달려 있었던 셈이다.



깨진 범퍼가 준 교훈: 안전의 정의를 다시 쓰다


EAST 작가님의 글에서 가장 통쾌한 지점은 '큰 차=안전'이라는 공식이 주차장 후진 사고로 와장창 깨지는 순간이다. 대형차의 범퍼가 소형차와의 가벼운 접촉에도 툭 떨어져 나가는 모습은 우리가 믿어왔던 '물리적 크기'라는 데이터가 얼마나 허망한지를 보여준다.


진정한 의미의 안전은 충돌 시에 얼마나 덜 찌그러지느냐가 아니라, 사고 자체를 미연에 방지하는 유연한 제어 시스템과 효율적인 회복 탄력성에 있다. 이는 정보 보안(Information Security)의 원리와도 같다. 방화벽을 무조건 두껍게 쌓는 것보다, 위협을 유연하게 감지하고 피해를 최소화하며 빠르게 복구하는 시스템이 더 강력한 법이다. 덩치만 큰 구형 시스템보다, 작지만 기민한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더 안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범퍼의 이탈이 증명해 주었다.



이동권과 기술의 가소성


자율주행 기술의 발전은 '운전자'라는 개념 자체를 해체하고 있다. 미래에는 우리 모두가 조수석 혹은 뒷좌석의 승객이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자동차를 평가하는 기준은 '마력'이나 '토크'가 아니라, 그 안에서 얼마나 양질의 정보를 소비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느냐는 '공간 리터러시'로 바뀔 것이다.


우리가 연비 좋은 하이브리드나 전기차를 고민하는 이유는 단순히 기름값을 아끼기 위해서가 아니다. 더 조용하고, 더 깨끗하며, 더 지능적인 이동 아카이브를 소유하고 싶기 때문이다. 우리 역시 기술의 보철(자동차)을 통해 더 자유롭고 안전하게 세상을 유람할 권리가 있다. 비록 내 손이 핸들을 잡고 있지 않더라도, 나는 이 차가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지, 그리고 그 과정이 얼마나 우아한지를 온몸의 감각으로 '읽어내고' 있으니까.



자동차는 더 이상 강철의 요새가 아니라, 우리 삶의 서사를 이동시키는 부드러운 텍스트가 되어야 한다. 크고 무거운 자존심 때문에 매일의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었다면, 이제는 작고 가볍지만 나를 더 멀리, 더 안전하게 데려다줄 실용적인 파트너를 맞이할 때다.


오늘 내가 타는 차의 범퍼가 멀쩡한지보다, 그 차 안에서 내가 느끼는 평온함의 연비가 얼마나 높은지 확인해 보자. 조수석에서 느끼는 그 짧은 고요함이 때로는 우주 전체의 파동과 공명하는 홀로그램의 순간이 될 수도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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