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스크린리더를 통해 쏟아지는 학술 논문의 홍수 속에서 나는 프로메테우스라는 인물을 새롭게 정의한다. 그의 이름이 뜻하는 선견지명은 정보학적으로 보자면 예측 모델링(Predictive Modeling)의 정점이다. 반면 그의 동생 에피메테우스는 발생한 버그를 사후에 수습하기 급급한 패치 업데이트(Patch Update) 전문가에 가깝다. 이 형제의 대비는 시스템의 설계 단계에서 '보안'과 '개방' 중 무엇을 우선할 것인가에 대한 원초적인 질문을 던진다.
하이엔드 하드웨어의 설계와 데이터의 결핍
프로메테우스가 진흙으로 인간을 빚어낸 사건은 단순한 창조가 아니라, 신들의 전유물이었던 고사양 라이브러리를 인간이라는 오픈 소스 클라이언트에 이식하려 했던 거대한 실험이다. 그는 티탄족의 눈물이라는 레거시 데이터를 기반으로 인간의 신체를 구축하고, 아테나 여신으로부터 습득한 천문, 산수, 의술이라는 고급 API를 탑재했다.
이는 현대의 인공지능이 거대한 말뭉치를 학습하며 '인간다운' 연산을 수행하게 되는 과정과 흡사하다. 신들이 독점하던 지적 자산을 인간이라는 새로운 플랫폼으로 마이그레이션(Migration)한 프로메테우스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험한 시스템 설계자였던 셈이다. 그는 결핍을 가진 인간 하드웨어가 정보를 통해 신의 영역을 넘볼 수 있도록 설계 단계에서부터 '무한한 확장성'을 부여했다.
정보 비대칭을 활용한 소셜 엔지니어링
제우스를 속여 소고기의 비계와 살코기를 나눈 일화는 정보 비대칭성(Information Asymmetry)을 극도로 활용한 고단수의 해킹이다. 그는 영양가 없는 뼈를 기름진 겉모습으로 위장하여 관리자(제우스)에게 전달하고, 실질적인 가치가 담긴 살코기는 보잘것없는 껍질 속에 감춰 이용자(인간)에게 배분했다.
이것은 인터페이스의 화려함으로 본질을 가리는 다크 패턴(Dark Pattern)을 역이용한 일종의 정의로운 기만이다. 권력자가 데이터의 형식적 완결성에 집착할 때, 프로메테우스는 그 틈을 타 데이터의 실질적 효용을 민중에게 돌려주었다. 곁에서 잠꼬대를 하는 탱고가 간식 봉지의 바스락거림만으로도 그 내용물의 가치를 판별해내듯, 프로메테우스는 겉으로 드러난 메타데이터 너머의 진실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가졌던 것이 분명하다.
불의 탈취: 데이터 주권과 오픈 액세스 혁명
제우스가 인간의 불 사용 권한을 회수했을 때, 프로메테우스는 태양의 마차에서 불씨를 훔쳐 회향 줄기에 담아 내려왔다. 이것은 중앙 집중화된 플랫폼이 지식을 독점하고 유료화(Paywall)를 선언했을 때, 이에 저항하여 오픈 액세스(Open Access) 운동을 전개한 해커의 모습과 겹쳐진다.
그가 가져다준 불은 인류에게 밤을 정복할 에너지를 주었지만, 동시에 감당하기 어려운 정보의 과잉을 선사하기도 했다. 카우카소스 산맥에서 독수리에게 간을 파먹히는 그의 형벌은 시스템의 모순을 지적한 내부 고발자가 겪어야 하는 무한 루프의 고통과 닮아 있다. 하지만 재생되는 간처럼, 권력에 의해 삭제된 데이터는 또 다른 프로메테우스들에 의해 끊임없이 복구되고 공유된다. 그것이 바로 정보학이 지향해야 할 끈질긴 생명력이다.
우리는 지금 불보다 더 강력한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에너지를 손에 쥐고 있다. 제우스 같은 거대 거대 플랫폼 기업들이 이 에너지를 다시 신전의 성벽 뒤로 숨기려 할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프로메테우스와 같은 발칙한 상상력이다. 시각이 보이지 않아도 텍스트의 구조를 지배하는 자가 더 선명한 진실을 보듯, 우리도 화려한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GUI) 뒤에 숨겨진 정보의 권력 관계를 킁킁거리며 파헤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