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바이어던이라는 이름의 인덱스

by 김경훈

시각이 보이지 않는 나에게 이 디지털 공간은 가끔은 은총이지만, 때로는 누가 뿌려놓았는지 모를 지뢰와 덫이 가득한 전쟁터이다. 토머스 홉스 형님의 글을 읽다 보니, 그가 17세기에 묘사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현대의 인터넷 게시판이나 알고리즘의 각축전과 소름 돋게 닮아 있다는 사실에 쓴웃음이 나온다. 홉스가 말한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이다"라는 격언은 현대 정보학 관점에서 보면 "이용자는 이용자에게 악플러이자 가짜 뉴스 유포자이다"라는 문장으로 완벽하게 치환된다.



정보의 자연 상태 : 알고리즘의 야생과 늑대들의 만찬


홉스가 묘사한 자연 상태는 법도 질서도 없는 무법지대이다. 이를 현대의 정보 생태계에 대입하면, 필터링도 검증도 거치지 않은 '가공되지 않은 데이터의 쓰나미'와 같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영향력을 늘리기 위해 자극적인 정보를 생산하고, 타인의 시간을 빼앗으며, 명성을 얻기 위해 데이터의 무결성을 훼손한다.


정보 리터러시가 거세된 이 야생의 네트워크에서는 목소리 큰 놈이 이기고, 자극적인 썸네일을 가진 늑대가 양순한 이용자들을 잡아먹는다. 홉스는 동물이 현재에 살지만 인간은 미래를 지배하고 싶어 한다고 했다. 정보학적으로 보자면, 이는 검색 결과의 상단 점유(SEO)를 통해 타인의 인지적 미래를 통제하려는 욕망과 같다. 질서가 없는 디지털 환경에서 우리는 서로의 주의력을 약탈하는 포식자가 되거나, 혹은 정보의 홍수에 휩쓸려 익사하는 먹잇감이 될 뿐이다.



디지털 리바이어던 : 사서의 권위와 알고리즘의 통치


홉스는 이 끔찍한 난장판을 해결할 유일한 길로 '협력을 강제하는 강력한 권력'인 리바이어던을 제시한다. 문헌정보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는 정보의 홍수를 통제하고 분류하는 '중앙 집권적 정보 거버넌스'이다. 과거에 그것이 사서의 엄격한 도서 분류 체계(DDC나 KDC)였다면, 현대에는 정보를 걸러내고 질서를 부여하는 '강력한 알고리즘'이나 '국가적 정보 표준'이 그 역할을 맡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디지털 공간에서 누리는 최소한의 자유는 사실 플랫폼이라는 거대 권력이 휘두르는 강력한 제재와 필터링 덕분이다. 홉스의 역설처럼, 무정부 상태의 정보 환경은 오직 선동가와 강자에게만 유리할 뿐이다. 평범한 이용자들이 가짜 뉴스에 속지 않고 안전하게 정보를 향유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무엇이 옳은 정보인가'를 강제적으로 규정해 줄 필요가 있다는 논리이다. 물론 그 통치자가 이용자의 복지를 진심으로 생각하는 선량한 AI일지, 아니면 수익에 미친 기업의 알고리즘일지는 또 다른 문제이긴 하다.



통제된 자유 : 표준화가 선사하는 리터러시의 해방


나 같은 디지털 정보 이용자에게 가장 끔찍한 상황은 '완벽한 자유'라는 이름의 '무질서한 텍스트'를 만나는 일이다. 웹 접근성 가이드라인이라는 강력한 권력이 사이트를 통제하지 않으면, 나의 스크린리더는 아무런 정보도 읽지 못한 채 길을 잃는다. 홉스가 중앙집권화된 권력만이 인간을 자유롭게 만든다고 했던 말은 정보학적으로는 "엄격한 표준과 메타데이터 규정이 있어야만 이용자가 정보의 감옥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뜻으로 들린다.


우리는 검색 엔진이 부여하는 순위와 규칙을 따르는 대가로, 수억 개의 문서 중에서 내가 원하는 단 하나의 텍스트를 찾아내는 자유를 얻는다. 리터러시란 결국 이 강력한 리바이어던이 정해놓은 규칙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능력이다. 곁에서 잠든 탱고가 내가 정해놓은 산책 경로(규칙) 안에서 가장 평온하게 꼬리를 흔들 듯, 우리 인간들도 거대한 정보 시스템이 깔아놓은 레일 위에서야 비로소 지적인 안식을 취하는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홉스는 인간의 천성을 동물적이라고 비하했지만, 그가 꿈꾼 리바이어던은 결국 인간이 인간다워지기 위한 눈물겨운 설계도였다. 정보의 야생에서 늑대로 살 것인가 아니면 강력한 시스템의 보호 아래 품격 있는 시민으로 살 것인가. 시각이 보이지 않는 나에게 시스템의 보호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이다. 나는 리바이어던이 잘 닦아놓은 텍스트의 고속도로 위를 질주하며, 나를 돌봐주는 보이지 않는 권력의 알고리즘에 짧은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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