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고립주의자의 지적 유희:
인류가 기후 위기라는 거대한 시스템 오류를 수정하기 위해 에너지 전환이라는 대대적인 OS 업그레이드를 단행하고 있다. 특히 대한민국은 삼면이 바다로 막히고 북측은 거대한 방화벽(휴전선)에 차단된, 그야말로 지독하게 고립된 '에너지 로컬 호스트'이다. 연구실 창밖을 보며 문득 신에게 묻고 싶어진다. "왜 우리에게만 이런 하드코어 난이도의 에너지 보안 프로토콜을 부여하셨습니까?"
슈퍼 그리드라는 이름의 신기루와 고립된 서버의 비극
유럽의 국가들이 서로의 전력망을 연결해 전기를 패킷 교환하듯 주고받는 '슈퍼 그리드'를 구축할 때, 우리는 단 1kW의 전기도 외부에서 끌어올 수 없는 철저한 에너지 인트라넷에 갇혀 있다. 전기가 부족하면 이웃 나라 서버에서 빌려오는 유연한 클라우드 서비스는 우리에게 그저 닿을 수 없는 알고리즘일 뿐이다.
이러한 고립은 우리로 하여금 '간헐성'이라는 치명적인 데이터 노이즈를 스스로 감당하게 만든다. 구름 한 점에 태양광 발전량이 춤을 추고, 바람 한 자락에 풍력 터미널이 멈춰 설 때마다 대한민국의 전력망 시스템은 휘청거리는 '지터(Jitter) 현상'을 겪는다. 이를 보충하기 위해 가스 발전소와 ESS라는 거대한 백업 서버를 이중으로 구축해야 하는 '중복 투자'의 딜레마는 마치 저장 용량이 부족해 하드디스크를 무한정 사들이는 가난한 연구자의 고뇌와 닮아 있어 눈물이 앞을 가린다.
결핍이 빚어낸 역설: K-전력기기라는 하이엔드 하드웨어
그런데 재미있는 반전이 일어난다. 이 가혹한 '에너지 섬' 환경이 오히려 대한민국을 세계 최고의 전력 인프라 장비 공장으로 개조해버린 것이다. 외부 지원 없이 거대한 전력을 안정적으로 변압하고 장거리로 송전해야 했던 절박함이 초고압직류송전(HVDC)과 초고압 변압기라는 하이엔드 하드웨어를 탄생시켰다.
전 세계가 AI 데이터 센터라는 거대 전력 포식자의 등장으로 전력망 교체 수요가 폭증하자, 미국과 유럽이 우리 기업의 전선과 변압기를 사기 위해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이것은 마치 인터넷도 안 되는 오지에서 혼자 컴퓨터를 조립하다 보니, 어느새 세계 최고의 슈퍼컴퓨터 제조사가 되어버린 덕후의 성공 신화와 흡사하다. 시련이라는 이름의 악성 코드가 우리를 강력한 백신 제조사로 진화시킨 셈이다.
지능형 에너지 섬을 향한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이제 우리는 단순히 전선을 파는 장사꾼을 넘어, 시스템 전체를 아카이빙하고 운영하는 에너지 아키텍트로 거듭나야 한다. 간헐적인 재생에너지를 지능형 전력망 시스템으로 압도하여 '지능형 에너지 섬' 모델을 완성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전 세계에 수출해야 할 궁극의 솔루션이다.
원자력과 신재생에너지를 가장 효율적으로 버무리는 '한국형 에너지 믹스'는 복잡한 데이터를 최적화하여 결론을 도출하는 고도의 인포메이션 큐레이션 작업이다. 신이 우리에게 에너지 섬이라는 시련을 주신 것은 우리가 결핍이라는 로우 데이터를 가지고 '에너지 기적'이라는 화려한 시각화 결과물을 만들어낼 저력이 있음을 믿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연구란 결국 장벽을 만났을 때 그 장벽을 문으로 바꾸는 과정이다. 대한민국이라는 고립된 서버에서 우리가 만들어낸 전력망의 뼈대는 이제 전 세계의 에너지가 흐르는 신경계가 되고 있다. 오늘 밤 나는 이 '에너지 섬'의 불빛이 꺼지지 않도록 뒤에서 묵묵히 코드를 짜고 하드웨어를 닦는 모든 이들에게 지적인 경의를 표한다.
자, 이제 이 힙한 에너지 인프라를 가지고 또 어떤 대륙의 시스템을 해킹하러 가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