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랜드 파크 12년

설교단 밑에 숨은 바이킹

by 김경훈

지난번 만났던 소독약 냄새 진동하는 돌팔이 의사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에는 스코틀랜드 최북단, 바람 거친 오크니 제도에서 온 손님을 맞이했다.

스스로를 '바이킹의 후예'라 칭하는 12살, '하이랜드 파크'.

이름만 들으면 거친 전사가 연상되는데, 막상 마주한 향기는 의외로 점잖고 향긋하다.



그의 출생 비화는 한 편의 기막힌 부조리극이다.

자신을 만든 조상 '매그너스 은손'은 낮에는 경건하게 교회를 지키는 관리인이었고, 밤에는 몰래 술을 빚어 파는 밀수꾼이었다고 한다.

단속반이 들이닥치면 위스키 통을 설교단 밑에 숨기거나, 관 속에 넣어 장례식 치르는 척 위장했다니, 신성모독도 이만하면 예술의 경지다.

낮에는 성직자, 밤에는 범법자.

이 얼마나 매력적인 위선인가.



이 이중적인 인물의 속내를 확인해 본다.

잔을 기울이자, 가장 먼저 달콤한 '헤더 꿀'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힌다.

영락없는 성직자의 온화한 미소다.

그러나 방심하는 순간, 그 뒤로 스모키한 피트 향이 훅 치고 들어온다.

지난번 의사의 지독한 소독약 냄새와는 결이 다르다.

은은하게 타오르는 모닥불 냄새, 혹은 야생의 들판 냄새에 가깝다.

성직자의 옷자락 사이로 슬쩍 보이는 바이킹의 도끼 같다.



입안에서는 그 이중성이 절묘한 화음을 이룬다.

꿀과 과일의 달콤함이 혀를 안심시키는가 싶더니, 곧이어 쌉쌀한 스모크와 오크 향이 무게를 잡는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기가 막힌 균형감각이다.

세상은 그를 두고 '가장 완벽한 올라운더(All-rounder)'라 부른다는데, 그 칭호가 아깝지 않다.



하이랜드 파크 12년.

그는 선과 악, 달콤함과 거침을 한 몸에 품고 사는 능청스러운 연기자다.

설교단 밑에 술을 숨겨놓고 태연하게 찬송가를 부르던 그의 조상처럼, 이 술은 꿀 같은 미소 뒤에 화끈한 한 방을 숨기고 있다.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을 믿지 말라지만, 이토록 맛있는 위선이라면 언제든 환영이다.

참으로 괘씸하고, 사랑스러운 이중생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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