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퍼스 콤플렉스

by 김경훈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는 한계치를 정해놓은 ‘컴퍼스’가 하나씩 살고 있다.

‘한계는 없다!’고 목청껏 외치면서도, 무의식적으로 그어놓은 자신만의 마지노선 말이다.

최고의 디자이너를 꿈꾸면서도 ‘마르첼로 간디니를 넘어서는 건 불가능해’라고 선을 긋는 것처럼.


시각 정보의 부재는 이 컴퍼스의 기본 눈금을 조금 더 빡빡하게 설정하는 경향이 있다.

사진작가 애니메이터, 외과 의사… 이런 단어들은 어느새 간디니처럼 아득히 먼 존재가 되어, 스스로 설정한 원 바깥에 놓인다.

이는 일종의 합리적인 방어기제이자,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구축한 자기 구속적 신념(self-limiting beliefs)이다.


이 ‘컴퍼스 콤플렉스’라는 녀석, 꽤나 예의는 발라서 월세를 밀리거나 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건 좀…’이라며 조용히 야망의 플러그를 뽑아버릴 뿐이다.

시각장애인에게 ‘혼자 삼겹살 구워 먹기’는 바로 그 간디니 같은 존재, 컴퍼스 바깥의 영역이었다.

뜨거운 불판과 기름 지뢰밭은 감히 넘볼 수 없는 성역이었다.


진정한 행운은 이 콤플렉스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낡은 컴퍼스의 뻑뻑한 나사에 기름칠을 해주고, 그 다리를 더 넓게 펼쳐 줄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타인의 기대가 성과에 영향을 미치는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처럼, 어떤 이들은 ‘너의 한계는 여기가 아니야’라고 말해주는 것을 넘어, 그 한계를 함께 확장시켜 준다.


보보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그녀는 ‘넌 할 수 있어!’라는 막연한 위로 대신, 이 프로젝트의 수석 연구원이 되어주었다.

소리로, 냄새로, 시간으로 고기를 구우려다 실패를 거듭하던 그 순간.

그녀는 학습자가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지만 타인의 도움으로는 도달할 수 있는 잠재적 발달 영역(Zone of Proximal Development)을 정확히 파고들었다.

“집게로 고기의 탄력을 만져보면 어때?” 이 한마디는 ‘고기 굽기는 시각의 영역’이라는 낡은 신념을 깨부수는 강력한 인지적 재구성(cognitive restructuring)의 망치였다.


그렇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공허한 응원이 아니다.

“네 컴퍼스는 이만큼 더 벌어질 수 있어”라고 그 정확한 최대치를 함께 찾아주는 인생 최고의 기술자다.

어차피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만의 간디니를 마음속에 품고 살아가는 법이다.

중요한 것은 그 간디니의 어깨에 나란히 설 수 있도록, 내 컴퍼스의 각도를 함께 넓혀줄 단 한 사람을 가졌는가 하는 것이다.



비하인드 스토리


삼겹살 독립에 성공한 VJ특공대급 감동 실화!

며칠 뒤, 의욕에 불타는 ‘인생 기술자’ 보보가 새로운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자기야, 이번엔 뜨개질 어때? 촉각이 발달했으니 분명 잘할 수 있을 거야!”

그녀는 나의 잠재적 발달 영역(ZPD)을 또 한 번 확장시켜주려 했다.

결과는? 30분 만에 실은 엉망으로 꼬이고, 대바늘 두 개는 탱고의 새로운 이쑤시개가 되었으며, 프로젝트는 공식적으로 파기되었다.

그렇다.

인생의 기술자도 때로는 엉뚱한 나사를 조이려 할 때가 있다.

피그말리온 효과도 본인의 ‘의지’라는 기름칠이 없으면 삐걱거리는 법이다.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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