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많이라는 신기루를 지나

조화라는 오아시스에 도달하는 법

by 김경훈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숫자와 사랑에 빠졌다. 경제 성장률이 오르면 사회가 건강한 것이고, 내 통장 잔고나 읽은 책의 권수가 늘어나야만 내가 발전하고 있다고 믿는다. 국가도, 기업도, 연구실의 나조차도 '더 많이'라는 팽창주의의 그늘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하지만 풍선도 계속 불면 결국 터지는 법이다. 이제는 성장의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고, 우리가 그토록 무시해왔던 '평형'과 '조화'라는 단어를 다시 꺼내 들어야 할 때가 왔다.



팽창주의라는 이름의 시스템 과부하


과거의 경제학자들에게 성장은 곧 건강의 척도였다. 하지만 무한한 성장이 가능하다는 믿음은 지구가 유한하다는 사실을 망각한 치명적인 에러다. 우리는 성장의 여력이 남아 있음에도 성장이 멈추는 순간을 마주하고 있다. 이는 실패가 아니라, 시스템이 비정상적인 확장 대신 '지속 가능한 균형'을 찾으려 하는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경제적 팽창주의는 미래가 없다. 오직 힘의 균형만이 존재할 뿐이다. 건강한 사회와 건강한 노동자는 주변 환경에 타격을 주지도, 받지도 않는다. 마치 우리 집 강아지 탱고가 산책 중에 길가에 핀 꽃을 밟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가는 것처럼, 우리도 타자와 환경에 생채기를 내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한다.



정복자에서 통합자로 : 정보 리터러시의 진화


우리는 오랫동안 자연과 우주, 심지어 방대한 정보의 바다를 '정복'의 대상으로 여겼다. 하지만 이제 정복이라는 오만한 슬로건은 폐기해야 한다. 대신 우리가 내걸어야 할 유일한 가치는 '조화'다. 외부 세계와 내부 세계가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조화롭게 스며드는 것, 그것이 진정한 통합이다.


문헌정보학을 공부하며 내가 느끼는 정보 리터러시의 본질도 이와 닮아 있다. 리터러시는 더 많은 데이터를 내 머릿속에 '쑤셔 넣는' 기술이 아니다. 내 앞에 놓인 수많은 정보와 내가 어떻게 조화롭게 공존할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떻게 폭력성을 버리고 겸허해질지를 배우는 과정이다. 자연과 기술에 대해 우월감도 열등감도 갖지 않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정보의 노예나 정복자가 아닌 평화로운 거주자가 될 수 있다.



현재라는 소박한 영토에서 살아가기


인류가 미래라는 이름의 불확실한 목표에 자신을 던지기를 멈추고, 멀리 있는 신기루를 겨냥하지 않게 되는 날. 그때 비로소 우리는 평형 상태를 맞게 될 것이다. 거창한 수식어나 화려한 성장 지표 없이도, 아주 소박하게 '현재' 속에서 살아가는 것. 그것이 가장 건전하고 강력한 생존 방식이다.


미래를 위해 오늘을 희생하는 경제학이 아니라, 오늘을 조화롭게 일궈가는 '현재의 경제학'이 필요하다. 내가 지금 쓰는 논문 한 줄, 내가 지금 걷는 이 길, 내가 지금 들이마시는 공기 속에서 조화를 발견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미 가장 부유한 성장을 이뤄낸 셈이다.



성장률이라는 숫자가 내 삶의 질을 대신 설명해주던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내가 내 주변과 얼마나 매끄럽게 어우러져 있는지가 내 건강함의 척도가 되어야 한다. 더 이상 자연을 정복하려 애쓰지 말고, 그저 그 거대한 흐름 속에 나를 부드럽게 통합시켜 보자. 조화라는 이름의 새로운 슬로건을 들고 현재라는 영토를 묵묵히 걸어갈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평온을 얻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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