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J)의 반지하 방은 거대한 어항 속처럼 습했다. 장판 밑에서 올라오는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고, 벽지 뒤에서는 이름 모를 벌레들이 ‘사각, 사각’ 기어 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제이는 관자놀이에 차가운 금속 단자를 꽂고 있었다. ‘틱, 틱’. 단자가 두개골에 맞물리는 소리가 신경질적으로 울렸다. 그의 직업은 ‘메모리 클리너(Memory Cleaner)’였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인간 쓰레기통’이었다. 부유층의 트라우마, 실수, 흑역사 같은 찌꺼기 기억을 돈 받고 자신의 뇌에 옮겨 담는 일이다.
“준비됐나?”
의뢰인은 50대 남성이었다. 값비싼 이탈리아산 원단을 두른 양복을 입었지만, 그에게선 지독한 담배 쩐내와 식은땀 냄새가 났다. 그는 불안한 듯 구두 뒤꿈치로 바닥을 계속 쳤다. ‘탁, 탁, 탁, 탁’. 그 불규칙하고 빠른 박자가 제이의 심장을 조여왔다. 제이의 목소리는 건조했다. “네. 입금 먼저 하시죠.” 스마트폰에서 ‘띵동-’ 하는 경쾌한 알림음이 울렸다. 500만 원. 제이의 한 달 치 생활비이자, 누군가의 양심 값이 입금되었다.
의뢰인이 맞은편 의자에 앉아 케이블을 자신의 관자놀이에 연결했다. “시작해. 깨끗하게... 아주 깨끗하게 지워줘. 찌꺼기 하나 남지 않게.” 제이는 말없이 스위치를 올렸다. ‘웅-’ 하는 중저음의 기계음이 좁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곧이어 제이의 머릿속으로 타인의 기억이 물밀듯이 밀려 들어왔다. 그것은 마치 펄펄 끓는 납물을 귓구멍에 붓는 듯한 고통이었다.
“으윽!”
제이는 이를 악물었다. 잇몸에서 비릿한 피 맛이 났다. 의뢰인의 기억은 선명했다. 비 내리는 밤이었다. 차가운 빗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끼익-’ 하는 타이어 마찰음. 그리고 ‘쿵!’ 하는 둔탁한 충돌음. 손끝에 전해지는 핸들의 미세한 진동. 깨진 유리 조각이 아스팔트에 흩어지는 소리. 그것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었다. 뺑소니였다. 쓰러진 사람을 보고도 엑셀을 밟아 도망치는 비겁한 심장 박동 소리가 제이의 가슴속에서 ‘쿵쾅, 쿵쾅’ 되살아났다. 공포, 당혹감, 그리고 이기심. 타인의 더러운 감정이 제이의 뇌세포 하나하나에 문신처럼 새겨졌다.
30분 후, 기계가 멈췄다. ‘피유우-’ 하며 전원이 꺼지는 소리가 났다. 제이는 바닥에 쓰러져 헛구역질을 했다. 위액이 넘어오는 신맛이 역했다. 그는 방금 자신이 사람을 치고 도망친 듯한 끔찍한 죄책감에 시달렸다. 손이 덜덜 떨렸다. 반면, 의뢰인은 아주 개운한 표정으로 일어났다. 그는 목을 좌우로 꺾으며 스트레칭을 했다. ‘우두둑’. 뼈 소리가 경쾌했다.
“아, 시원하네. 마치 10년 묵은 변비가 내려간 것 같아.”
그는 더 이상 떨지 않았다. 담배 냄새도, 식은땀 냄새도 사라진 듯했다. 그는 지갑에서 수표 한 장을 꺼내 제이의 면상에 던졌다. 종이가 팔락거리며 제이의 뺨을 스치고 바닥에 떨어졌다. “팁이야. 수고했어, 청년. 덕분에 오늘 밤은 두 다리 뻗고 자겠군.” 의뢰인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반지하 방을 나갔다. ‘또각, 또각’. 멀어지는 구두 소리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제이는 떨리는 손으로 수표를 집어 들었다. 죄책감은 끔찍했지만, 돈의 감촉은 달콤했다. 그때였다. ‘쾅!’ 낡은 철문이 부서질 듯 열리며 경찰들이 들이닥쳤다. 무전기 소음이 요란했다. ‘치직, 치직. 용의자 확보.’ 형사가 제이의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소름 끼쳤다.
“당신을 특수가중처벌법 위반 혐의로 긴급 체포합니다.”
“네? 제가 아니라... 방금 나간 그 남자가 범인이에요! 저는 기억만...” 제이는 억울해서 소리쳤다. 형사는 싸늘한 눈빛으로 뇌파 측정기를 제이의 머리에 갖다 댔다. ‘삐빅.’ 기계가 붉은색을 띠며 경고음을 울렸다.
[일치율 99.9%. 범행 당시의 기억, 감정, 시각 정보 완벽 일치.]
“증거가 이렇게 명백한데 무슨 헛소리야? 네 머릿속에 범행 장면이 고스란히 들어있잖아. 그날 밤의 빗소리, 공포, 도망칠 때의 흥분까지. 네 뇌가 자백하고 있다고.”
제이는 경찰에게 끌려가며 창밖을 보았다. 저 멀리, 진짜 범인인 의뢰인이 편의점 파라솔 아래 서 있었다. 그는 캔맥주를 따고 있었다. ‘치익- 꼴깍, 꼴깍’. 그는 정말로 행복해 보였다. 그에게는 ‘기억’이 없었다. 자신이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 자체를 뇌에서 파내버렸기 때문이다. 그는 이제 법적으로도, 의학적으로도, 심지어 양심적으로도 완벽한 무죄였다.
형사가 제이의 뒤통수를 탁 쳤다. “요즘 젊은 놈들은 죄를 지어놓고도 기억이 안 난다고 오리발이라니까. 쯧쯧.” 제이는 흐느꼈다. 그가 흘리는 눈물은 뜨거웠다. 하지만 그 눈물조차 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돈을 받고 산 타인의 참회였다.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위용, 위용, 위용’. 그 소리는 제이의 머릿속에 남은 뺑소니 기억과 섞여, 영원히 멈추지 않는 이명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