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밤은 낮보다 시끄러웠다. 그것은 빛이 내는 소음이었다. 거대한 네온사인 변압기가 웅웅거리며 내뿜는 전기 진동음, 24시간 돌아가는 공조기의 쇠 긁는 소리, 그리고 잠들지 못한 사람들이 아스팔트 바닥을 질질 끌며 걷는 소리가 뒤엉켜 고막을 긁어댔다. 주인공 ‘이(Lee)’는 충혈된 눈을 비볐다. 눈꺼풀 안쪽에 모래알이 한 줌 들어찬 것처럼 까끌까끌했고, 눈동자는 바짝 마른 젤리처럼 뻑뻑했다. 그는 72시간째 깨어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72시간 전에 자신의 수면 시간을 팔아치웠다.
그가 서 있는 곳은 강남 뒷골목의 불법 ‘수면 거래소’였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서는 곰팡이 냄새와 락스 냄새, 그리고 사람들의 입에서 나는 단내가 섞여 역한 악취가 났다. 이의 앞에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좀비처럼 줄을 서 있었다. 모두 가난한 자들이었다. 당장 내야 할 월세와 이자를 위해, 유일하게 남은 자산인 ‘잠’을 팔러 온 것이다. 벽시계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째깍, 째깍’. 그 소리는 마치 채권자의 독촉 전화벨 소리처럼 신경을 곤두세우게 했다.
“다음.”
거래소 직원의 목소리는 건조했다. 쇠를 긁는 듯한 그 목소리에 이가 움찔했다. 그는 떨리는 팔을 내밀었다. 창구 안쪽에서는 ‘윙-’ 하고 원심분리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가난한 자들의 혈관에서 멜라토닌과 렘수면 인자를 강제로 추출해 내는 소리였다. 직원은 이의 팔뚝에 굵은 주삿바늘을 꽂았다. ‘따끔’ 하는 통증과 함께, 척추를 타고 서늘한 기운이 빠져나갔다. 그것은 단순히 피가 아니었다. 오늘 밤 그가 꿀 수 있었던 휴식과 망각이 송두리째 빨려 나가는 느낌이었다.
“상급 수면 8시간. 입금되었습니다. 다음.”
이의 주머니 속 스마트폰이 ‘징-’ 하고 짧게 울렸다. 30만 원. 이의 8시간짜리 잠의 값어치였다. 이제 그는 앞으로 24시간 동안 강제로 깨어 있어야 했다. 수면 인자가 모두 빠져나간 뇌는 각성제 10알을 삼킨 것처럼 날카롭게 곤두섰다. 심장이 불규칙하게 ‘쿵, 쿵, 쿠쿵’ 뛰었다. 그는 비틀거리며 거래소를 빠져나왔다.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정신만은 명료했다. 돈을 벌었다는 안도감보다는 오늘 밤도 뜬눈으로 지옥 같은 현실을 마주해야 한다는 피로감이 더 컸다.
같은 시각, 길 건너편 화려한 호텔 펜트하우스에서는 ‘VIP 수면 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방금 이가 판 수면 팩을 주입받은 재벌 3세, 박 전무가 최고급 거위 털 침대 위에 누웠다. 방 안에는 습도 50%의 쾌적한 공기와 은은한 라벤더 향기가 감돌았고, 클래식 음악이 아주 작게, 마치 어머니의 자장가처럼 흘러나왔다. 박 전무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다.
“아, 드디어 잘 수 있겠군. 요즘 불면증 때문에 미칠 지경이었는데. 가난한 놈들의 잠이라 그런지 좀 거칠긴 하겠지만, 뭐 어때. 내가 깨어있는 시간은 1초당 100만 원짜리지만, 자는 시간은 아까우니까 남의 걸 사서 때워야지.”
그는 이의 잠을 이용해 꿀맛 같은 휴식을 취하고, 내일 아침이면 개운하게 일어나 골프를 치러 갈 것이다. 반면, 잠을 판 이는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다. 편의점 문을 열 때 들리는 ‘띠리링-’ 소리가 날카로운 송곳처럼 이의 뇌를 찔렀다. 그는 계산대에 서서 꾸벅꾸벅 조는 시늉조차 할 수 없었다. 뇌가 강제로 각성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눈은 핏발이 섰고, 손끝은 파르르 떨렸다. 냉장고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전투기 소음처럼 크게 들렸다.
새벽 4시. 사건이 터졌다.
호텔 펜트하우스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아악! 으아악!”
잠을 샀던 박 전무가 식은땀을 비 오듯 흘리며 비명을 질렀다. 그는 침대 시트를 쥐어뜯으며 헐떡거렸다. ‘허억, 허억’. 그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호출을 받고 달려온 비서가 물었다.
“전무님, 무슨 일이십니까? 악몽이라도 꾸셨습니까?”
박 전무는 공포에 질린 눈으로 소리쳤다. 동공이 지진이 난 듯 흔들리고 있었다.
“이거 불량품이야! 당장 환불해! 잠을 잤는데... 꿈속에서 내가 하루 종일 무거운 박스를 나르고, 곰팡이 핀 빵을 억지로 먹고, 빚쟁이한테 멱살을 잡혔어! 그 끔찍한 피로감, 배고픔, 절망감이 너무 생생하게 느껴졌다고! 기분 더러워서 못 자겠네, 진짜!”
비서는 난감한 표정으로 태블릿 PC를 두드렸다. ‘타닥, 타닥’.
“죄송합니다, 전무님.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수면 팩에는 판매자의 무의식까지 포함되어 있어서... 가난한 사람의 잠을 사시면 어쩔 수 없이 그들의 ‘가난한 꿈’도 함께 꾸셔야 합니다. 육체는 회복되지만, 정신은 그들의 스트레스를 체험하게 되는 부작용이...”
“닥쳐! 내 돈 내고 내가 왜 남의 가난 체험을 해야 해? 당장 이거 빼!”
박 전무는 다시 잠들기가 무서워 벌벌 떨었다. 최고급 침대는 가시방석이 되었다. 그는 밤새도록 뜬눈으로 밤을 지새워야 했다. 돈으로 산 것은 휴식이 아니라 타인의 지옥이었다.
같은 시각, 편의점 계산대에 서 있던 이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비록 몸은 부서질 듯 아팠고 관절마디가 삐걱거렸지만, 기분은 묘하게 상쾌했다. 방금 전까지 자신의 뇌를 짓누르던 ‘월세 걱정’과 ‘미래에 대한 막막함’이 거짓말처럼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는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의 불안과 고통은 지금쯤 저 높은 펜트하우스에 누워있는 비싼 몸이 대신 겪어주고 있을 테니까. 그는 30만 원을 받고 잠만 판 게 아니었다. 자신의 짓눌린 무의식, 그 끈적하고 더러운 감정의 쓰레기를 부자에게 떠넘긴 것이다.
이는 바코드 리더기를 들어 손님이 내민 삼각김밥을 찍었다. ‘삑-’.
그 소리가 오늘따라 맑고 경쾌하게 들렸다. 불면의 도시는 여전히 시끄러웠지만, 적어도 오늘 밤만큼은 가난한 자가 가장 가벼운 머리로 밤을 보내고 있었다. 부자가 대신 꿔주는 악몽 덕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