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밖의 살의

by 김경훈

도진은 미간을 찌푸렸다. 목덜미의 솜털이 곤두서는 느낌. 그건 20년 차 강력계 형사의 ‘촉’이자, 빅데이터가 지배하는 2090년의 서울에서 유일하게 숫자로 환산되지 않는 변수였다.


“팀장님, 시스템 오류 아닙니까?”


후배 형사 민우가 증강현실(AR) 고글을 쓴 채 물었다.


“이 구역은 ‘범죄 청정 구역(Green Zone)’입니다. 살인 사건 발생 확률이 0.0001%라고요. 알고리즘이 예측한 바로는 이건 100% 자살입니다.”


현장은 강남의 최고급 오피스텔이었다. 바닥에는 남자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고, 옆에는 흉기가 떨어져 있었다. 외부 침입 흔적은 제로. CCTV 사각지대 없음. 스마트 홈 시스템 로그에도 출입 기록은 없었다. 모든 데이터가 ‘밀실 자살’을 가리키고 있었다.


하지만 도진의 ‘육감’은 달랐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설 때부터 느껴지는 비릿한 공기. 너무 잘 정돈된 거실. 그리고 시신의 손끝이 미세하게 꺾여 있는 각도.


데이터는 보지 못하는 ‘부조화’가 도진의 뇌를 때렸다.


“아니. 타살이야.”


도진은 단호하게 말했다. 민우는 답답하다는 듯 고글을 벗었다.


“팀장님, 제발 그 놈의 ‘감’ 좀 그만 믿으세요. 국과수 부검 결과도 나오기 전이잖아요. 범죄 예측 AI ‘테미스’가 실수한 적 있습니까? 지난 5년 동안 범죄율 0%를 기록한 시스템이라고요.”


“기계는 인간의 악의를 몰라. 패턴만 알지.”


도진은 시신 곁으로 다가갔다. 그는 장갑 낀 손으로 바닥의 카펫을 훑었다.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다. 너무 깨끗했다. 마치 누군가 강박적으로 청소한 것처럼.


그때, 도진의 시선이 베란다 창문에 꽂혔다. 창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스마트 잠금장치는 ‘잠금’ 상태였다.


하지만 도진은 느꼈다. 저 창문 너머에서 누군가 보고 있다는 시선을.


“옆집. 누가 살지?”


민우가 허공에 손짓해 데이터를 띄웠다.


“304호요? 박동훈 씨. 35세, 대기업 회계사. 신용 등급 1등급, 사회 공헌 지수 만점. 범죄 위험도 ‘안전’. 테미스 분류상 ‘시민 A급’입니다. 조사할 가치도 없어요.”


“가보자.”


“아니, 영장도 없이 어떻게…”


도진은 무시하고 304호 초인종을 눌렀다.


딩동.


잠시 후 문이 열렸다. 훤칠한 키에 안경을 쓴 남자가 나왔다. 박동훈이었다. 그는 갓 샤워를 마친 듯 머리가 젖어 있었고, 은은한 보디워시 향기가 났다.


“무슨 일이시죠?” 남자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민우의 AR 고글에는 남자의 머리 위로 [위험도: 없음 / 상태: 평온 / 심박수: 정상]이라는 녹색 태그가 떴을 것이다.


하지만 도진의 본능은 경보를 울리고 있었다. 붉은색 사이렌이 머릿속에서 윙윙거렸다.


남자의 미소는 입꼬리만 올라가 있었다.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문을 잡고 있는 남자의 손가락 마디가 미세하게 하얗게 질려 있었다. 긴장하고 있다는 증거다.


결정적으로 냄새가 났다. 보디워시 향기 밑에 깔린, 아주 릿한 쇠 냄새. 피를 씻어내기 위해 피부가 벗겨질 정도로 문대 씻었을 때 나는 그 냄새.


“옆집에서 사고가 있었습니다. 혹시 들은 소리 없습니까?”


도진이 물었다.


“아뇨. 방음이 워낙 잘 돼서요. 안타깝네요.”


남자는 너무 침착했다. 보통 옆집 사람이 죽었다고 하면 놀라거나 당황해야 정상이다. 하지만 그는 ‘안타깝네요’라는 말을 날씨 이야기하듯 했다.


데이터상으로는 완벽한 시민. 하지만 도진의 육감은 그를 ‘포식자’로 분류했다.


“잠시 들어가서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영장이 있으신가요?” 남자가 되물었다. 목소리에 날이 섰다.


“없습니다. 하지만 커피 한 잔 정도는 얻어마실 수 있지 않나요? 시민 A급이시라면 경찰 협조도 잘해주실 텐데.”


남자는 잠시 도진을 응시했다. 그 찰나의 순간, 도진은 남자의 동공이 수축하는 것을 보았다. 살의(殺意). 아주 순도 높은 악의가 스쳐 지나갔다.


“들어오세요.”


남자가 길을 비켜주었다.


도진은 집 안으로 들어섰다. 거실은 모델하우스처럼 깔끔했다. 하지만 도진의 촉수는 거실 한구석에 놓인 ‘공기청정기’를 향했다.


공기청정기가 ‘강풍’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창문도 닫혀 있고, 요리도 하지 않은 집에서 왜?


“냄새가 나는군요.” 도진이 중얼거렸다.


“네? 무슨 냄새요?”


“공포 냄새요.”


도진은 순식간에 공기청정기 뚜껑을 열었다. 필터 사이에 끼어 있는 아주 작은 핏방울 하나. 그리고 머리카락 한 올.


남자의 표정이 무너졌다. [상태: 평온]이었던 민우의 고글 데이터가 순식간에 [위험도: 극도로 높음]으로 바뀌며 붉은색 경고등이 번쩍였다.


“테미스! 304호 긴급 체포! 지원 요청해!” 민우가 비명을 질렀다.


남자가 식탁 위의 과도를 집어 들고 달려들었다. 하지만 도진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몸을 비틀어 남자의 팔을 꺾고 제압했다. 우당탕. 남자가 바닥에 처박혔다.


“어떻게… 어떻게 알았어?”


남자가 바닥에 얼굴이 눌린 채 헐떡였다.


“데이터에는 안 나오거든. 네가 샤워를 하고 나왔는데도, 손톱 밑에 낀 아주 미세한 혈흔을 지우지 못했다는 건.”


사실 손톱 밑 혈흔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그냥 던져본 말이었다. 하지만 범인은 그 말에 스스로 무너졌다.


도진은 수갑을 채우며 생각했다.


알고리즘은 인간의 행동을 예측하지만, 인간의 ‘실수’와 ‘충동’은 계산하지 못한다. 완벽해 보이는 범죄 뒤에는 항상 인간적인 허점이 숨어 있다. 그걸 찾아내는 건 고성능 카메라가 아니라, 수많은 범죄 현장을 뒹굴며 쌓인 형사의 낡고 투박한 ‘촉’이었다.


상황이 종료되고, 민우가 멍한 표정으로 물었다.


“팀장님, 진짜 손톱 밑에 피가 있었습니까?”


도진은 담배를 입에 물었다.


“아니. 그냥 느낌이 쎄하더라고.”


민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데이터 시대에 무속인도 아니고… 참.”


도진은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연기 속으로 [범죄 예방 성공률 99.9%]라는 전광판 문구가 흐릿하게 보였다.


나머지 0.1%. 그 오차 범위 안에 진짜 악마들이 숨어 있다. 그리고 그들을 잡는 건, 여전히 냄새를 맡고 소름이 돋는 인간의 동물적인 감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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