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약의 명수 벼룩을 빈 어항에 넣고 유리판으로 입구를 막는 실험은 꽤나 잔인하면서도 명쾌한 통찰을 줍니다. 처음엔 벼룩들이 힘차게 튀어 오르다 유리판에 머리를 쾅쾅 부딪히죠. 아픔은 가장 강력한 학습 도구입니다. 한 시간쯤 지나면 벼룩들은 유리판 바로 밑까지만 도약하는 영리한 조절 능력을 갖추게 됩니다. 진짜 비극은 유리판을 치워버린 뒤에 일어납니다. 벼룩들은 이제 막는 것이 없는데도 여전히 어항 속에서만 맴돕니다. 그들의 마음속에 이미 깨지지 않는 투명한 천장이 생겨버렸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 실패가 만든 보이지 않는 감옥
우리는 경험이 우리를 지혜롭게 만든다고 믿지만 때로는 경험이 가장 견고한 창살이 되기도 합니다. 과거에 겪었던 통증과 실패의 기억은 우리 뇌에 안 된다는 코드를 새겨넣습니다. 유리판이 치워졌다는 사실을 확인하기도 전에 우리는 스스로 도약의 높이를 제한합니다. 이것이 바로 인문학적으로 경계해야 할 자기 제한적 사고의 본질입니다.
두 번째 이야기. 학습된 무력감이라는 시스템 에러
벼룩이 어항을 나가지 못하는 것은 근육의 힘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도약하면 아플 것이다라는 데이터가 시스템 전체를 장악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에도 이런 보이지 않는 유리판이 많습니다. 원래 그래 혹은 해봤자 안 돼라는 말들은 우리 사회의 도약 높이를 낮게 고정해버리는 낡은 소프트웨어와 같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낡은 설정을 초기화하고 현재의 조건을 다시 확인하는 용기입니다.
세 번째 이야기. 다시 머리를 부딪칠 각오
자유는 거저 주어지지 않습니다. 어항 밖으로 나가는 유일한 길은 다시 한번 머리를 부딪칠 각오로 최고 높이까지 뛰어오르는 것입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벽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계를 확인하는 통증조차 내가 살아있고 성장하고 있다는 강력한 신호입니다. 남들이 정해준 높이가 아니라 내가 뛸 수 있는 최고의 높이로 세상을 마주해야 합니다.
지금 당신의 머리 위를 가로막고 있는 투명한 막은 무엇인가요. 혹시 이미 사라진 지 오래인 과거의 유령 앞에서 주춤거리고 있지는 않은가요. 오늘은 평소보다 딱 10센티미터만 더 높이 뛰어보시길 권합니다. 생각보다 공기는 자유롭고 당신의 도약은 여전히 눈부시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