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만 알고 가치는 모르는 이들에게
차가운 눈 위에 쓰러졌던 최가온 선수가 다시 일어나는 순간, 혹은 우리 컬링팀의 스톤이 마법처럼 상대 진영을 걷어내는 그 찰나. 그 장면을 지켜보며 우리가 동시에 내뱉는 탄성과 감동의 '데이터값'은 과연 얼마일까? 2026 밀라노 동계올림픽 중계를 특정 종합편성채널이 독점하면서 수많은 국민이 이 공유된 기억의 조각을 놓치고 말았다. 이건 단순한 채널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차원의 '경제적 손실'에 가깝다.
시장 실패와 숫자에 갇힌 정부
JTBC는 과거 SBS가 스포츠 중계로 '진짜 공중파' 반열에 올랐던 성공 공식을 재현하고 싶었을 것이다. 거액을 들여 중계권을 사 왔고, 이를 지상파 방송 3사에 되팔려 했지만 협상은 결렬됐다. 예상 광고 수익은 낮고 시차는 불리하니 지상파들은 지갑을 닫았다. 전형적인 시장 실패다.
이럴 때 정부가 개입해야 하지만, 공무원들의 머릿속에는 '직권남용'이나 '배임' 같은 무서운 단어들이 먼저 떠올랐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이 문제를 훨씬 더 '경제적'으로 봐야 한다. 우리 국민 5,000만 명이 올림픽이라는 축제를 즐기며 얻는 행복의 가치를 1인당 1만 원으로만 잡아도 5,000억 원, 10만 원이라면 무려 5조 원의 편익이 발생한다. 이 거대한 가치가 작은 채널 안에 갇혀 소멸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국가적 배임이 아닐까?
김광현의 130억 원과 박세리의 맨발
스포츠는 '가격'이 아니라 '가치'가 지배하는 시장이다. 에이스 김광현에게 130억 원을 주는 이유는 그가 단순히 몇 승을 거둘 것이라는 산술적 계산 때문만이 아니다. 그가 마운드에 올라오는 것만으로도 팬들이 저녁 시간을 기다리게 만드는 그 '가치'를 돈으로 환산한 결과다.
우리는 박세리의 US오픈 샷이나 김연아의 눈물이 우리 사회에 어떤 활력을 불어넣었는지 기억한다. 그 장면들은 국민의 마음을 들썩이게 했고, 그 들썩임은 곧 소비와 경제 활성화로 이어졌다. 경제란 결국 사람들이 만나고, 웃고, 싸우고, 즐기는 과정에서 돌아가는 엔진이다. 모두가 저축만 하고 아무런 이벤트도 없다면 경제는 멈춘다. BTS의 광화문 컴백이 경제적 재료가 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NHK 모델과 해설의 리터러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의 NHK 모델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국가적 협상팀이 단독 입찰하여 가격을 낮춘 뒤, 각 방송사가 종목별로 나누어 중계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올림픽을 보고 싶지 않은 시청자의 선택권도 보장할 수 있고, 무엇보다 중계의 '품질' 경쟁이 가능해진다.
이번 독점 중계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해설의 질이다. 스포츠 해설은 전문용어를 과시하는 기술이 아니라, 경기를 모르는 국민에게 그 장면의 의미를 인문학적으로 '번역'해 주는 서비스여야 한다. 경쟁이 사라진 중계석에서는 이런 섬세한 리터러시를 기대하기 어렵다.
당장 6월부터 열리는 미국 월드컵 중계권 역시 특정 채널이 쥐고 있다. 우리는 더 쉽고, 더 재밌고, 더 다 함께 월드컵을 보고 싶다. 예산이 없어서 혹은 법적 근거가 모호해서 못 한다는 핑계는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 그것은 오스카 와일드의 말처럼 '모든 것의 가격은 알면서 그 어떤 것의 가치도 모르는' 냉소주의자의 태도와 다름없다. 올림픽 중계를 살리는 것은 국민의 행복권을 복구하고 경제의 불씨를 살리는 가장 확실한 투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