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은 불법으로 구한 수면 동기화 패치를 관자놀이에 붙였다. 타인의 꿈에 접속하는 기술은 삼 년 전 전면 금지되었다. 무의식을 해킹해 범죄에 악용하는 사례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진은 어둠의 브로커에게 거액을 주고 민호의 뇌파 주파수를 샀다.
민호는 유진의 직장 사수였다. 다정하고 완벽한 그를 유진은 오랫동안 짝사랑해 왔다. 현실에서 고백할 용기가 없었던 유진은 민호의 꿈속에 들어가 자신의 잔상을 남기기로 했다. 꿈속에서 반복적으로 마주치면 무의식적인 호감이 현실로 이어진다는 불법 업체의 광고를 맹신한 것이다.
패치의 전원을 켜고 눈을 감았다. 깊은 수렁으로 빠져드는 기분과 함께 시야가 밝아졌다.
눈을 뜬 곳은 끝없이 이어진 하얀 복도였다. 민호의 무의식 공간이었다. 유진은 설레는 마음으로 복도를 걸었다. 민호의 꿈은 그의 단정한 외모처럼 깔끔하고 고요했다. 복도 양옆에는 여러 개의 문이 있었다. 유진은 그중 가장 화려한 장식이 있는 문을 열었다. 민호의 낭만적인 환상이나 비밀스러운 취향이 담긴 방일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문 너머의 풍경은 유진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방 안은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지하실이었다. 차가운 금속 테이블 위에는 훼손된 마네킹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유진은 숨을 헉 들이켰다. 마네킹들의 얼굴은 모두 유진이 아는 사람들이었다. 회사에서 민호에게 호감을 보였던 여직원들 그리고 유진과 친하게 지내던 동기들의 얼굴이 기괴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이곳은 민호의 억눌린 폭력성과 지독한 통제욕이 배설되는 쓰레기장이었다. 현실에서 보여주던 다정함은 이 끔찍한 무의식을 감추기 위한 가면일 뿐이었다.
공포에 질린 유진이 뒷걸음질 쳤다. 빨리 접속을 끊고 현실로 돌아가야 했다. 패치를 떼어내기 위해 손을 들어 올리려 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어둠 속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민호가 미소를 지으며 걸어오고 있었다. 현실에서의 그 다정한 미소 그대로였다. 하지만 그의 손에는 피 묻은 칼이 들려 있었다.
민호가 유진에게 이곳은 어떻게 알고 들어왔냐며 다정하게 물었다. 소름 끼치도록 차분한 목소리였다. 그는 자각몽을 꾸는 자였다. 자신의 꿈에 누군가 침입했다는 사실을 완벽하게 인지하고 통제하고 있었다. 유진은 그제야 브로커가 민호의 주파수를 너무 쉽게 구해다 준 이유를 깨달았다. 민호는 일부러 자신의 꿈을 열어두고 있었다. 자신을 훔쳐보려는 어리석은 먹잇감들이 제 발로 찾아오도록 함정을 파놓고 기다린 것이다.
유진은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꿈속에서는 방의 주인이 허락하지 않으면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민호가 유진의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꿈에서 죽는다고 현실에서 진짜로 죽지는 않지만 뇌 신경이 끔찍한 고통을 영원히 기억하게 될 것이라고 그가 속삭였다. 매일 밤 잠드는 게 두려워 미쳐버릴 때까지 그 고통을 새겨주겠다고 했다.
민호가 칼을 높이 치켜들었다. 유진의 시야가 시뻘건 핏빛으로 물들었다. 현실의 침대 위에 누운 유진의 몸이 발작하듯 튕겨 올랐다. 식은땀이 온몸을 적셨지만 관자놀이에 붙은 패치는 떨어지지 않았고 굳게 감긴 눈은 떠지지 않았다.
완벽한 짝사랑의 대상은 꿈이라는 사각지대에 숨어 타인의 영혼을 사냥하는 포식자였다. 유진은 영원히 깨어날 수 없는 악몽의 감옥에 갇히고 말았다.